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Karimunjawa] 08. 끝. 스마랑에서 하룻밤

명랑쾌활 2016. 5. 2. 11:24

아침식사를 하면서 관리인 청년에게 부두까지 데려다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언제 가려고?"

"9시 출발이라니까 표도 사고 하려면 8시에는 가야 하지 않을까?"

"11시 정도나 돼야 출발할텐데?"

"엥? 내가 시간표 본건 9시라고 하던데?"

"네가 그렇다면 뭐 난 별 상관 없어. 그럼 8시에 데려다 줄게."

 

자신의 정보나 조언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자신에 대한 불신이나 무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한국인들에 비해, 인니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더 정확하다고 애써 주장하지 않는다.

약간의 무심함이라고 할까, 감정이 부딪힐만 한 경계선까지 다가서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런 정서를 대변하는 표현이 뜨르스라 Terserah 다.

어조나 표정,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쓰이는데, 대략 '맘대로 하세요', '편하신대로', '그러시던가', '알아서 하세요' 등의 의미다.

 

아마도 관리인 청년의 말이 맞을 것 같지만 그래도 8시에 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정보가 틀려 배를 놓치는 것 보다, 차라리 부두에서 두어시간 기다리는게 더 낫다.

정보에 혼선이 있다면, 그 중 가장 이른 시간을 따르는 편이 차질이 덜하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그에 부수적으로 기다림에도 익숙해졌다.

인니에서 살거나 여행을 하려면, 느슨한 시간 관념을 받아들이고, 하릴 없이 기다리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모든 일이 예정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게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결국은 비용과 자원이 드는 일이다.

그게 필요하다면 그래야 하는 것이고, 그닥 필요하지 않다면 느슨한 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다.

그래서 발전이 더디다고 비하할 수도 있겠지만, 희생에 비해 그런 발전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미 '발전'은 그 의미를 잃는다.

발전은 더 나아진다는 뜻인데, 그게 더 나아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발전이 아니니까.

발전이든 개발이든 결국은 변화한다는 뜻이고, 변화는 무언가가 생기고 다른 무언가가 없어지는 현상이다.

내 시점에서의 발전이 상대에게도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돈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찾아 오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매일매일의 놀이터다.

 

페리 승선표는 부두 건물이 아니라, 들어가기 전 초입에서 판매한다.

그나마 가게 같아 보이는 두 가게가 있는 그곳이다.

 

예전에는 이 곳에서 까리문자와 섬 입장료를 따로 받았나 보다.

 

역시나 11시가 맞았다.

대합실을 텅텅 비어 있다.

뭐 어떠랴.

대합실 한 구석에 편하게 기대 누워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이고~

 

페리는 11시 쯤 되어 출발했다.

멀어지는 섬을 보자니, 어렵게 어렵게 온 곳을 너무 쉽게 떠나는 거 같아 좀 허망하기도 하다.

딱히 나쁜 곳 아니고, 괜찮은 곳인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즈빠라 도착

전에 봐뒀던 부스에 가서 스마랑으로 가는 교통편을 구했다.

한 30분 쯤 후에 차가 온다길레, 점심 먹으러 갔다.

 

항구 한구석 건물에 식당이 세곳 있는데, 유독 한군데만 정신없이 장사가 잘된다.

이런 곳이 회전율이 좋아서 음식이 그나마 안전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튀김과 두부, 달걀 조림만 골랐다.

음식맛은 아주 좋았다.

딱히 위생에 민감하거나 예민하지 않다면, 한국인 누구에게나 입맛에 맞을 거라 장담한다.

배탈은 책임 못지지만. ㅋㅋ

 

즈빠라에서 스마랑까지 타고 갔던 마이크로 버스

 

스마랑으로 바로 데려다 주지 않고, 즈빠라 시내의 어떤 여행사 사무실 앞에 내려 준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스마랑으로 가는 표를 끊고 돈을 지불했다.

항구에서 사무실까지 픽업해 준 셈인데, 따로 그 비용은 받지 않았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다가, 사진 속의 마이크로 버스가 도착하여 타고 드디어 스마랑으로 출발.

 

이런 형식의 교통편을 인니어로 트라플 Travel 이라고 한다.

영어 원뜻과는 약간 다르게 인니 현지어화 된 표현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운행하는 대중교통수단의 일종인데, 버스보다는 더 고급으로 친다.

행선지 지역 어지간한 곳은 그 앞까지 데려다 준다.

가끔 중간에서 차를 바꿔 타야 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니 당황할 필요 없다.

여행사끼리 연계해서 운행하는 시스템이다.

 

스마랑 기차역에서도 가까운 메트로 호텔 Metro Hotel 에 묵었다.

창밖으로 스마랑 시장이 보인다.

 

애초에 이번 여행은 롬복을 지나 숨바와 -> 플로레스 -> 꾸팡으로 인니 동쪽 끝까지 갈 계획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하루 묵으며 워노소보 Wonosobo 로 가는 트라플을 알아봤어야 하는데, 왠지 의욕이 없다.

어제 까리문자와에서의 마지막 밤부터 내내 그렇다.

곰곰히 생각해 보다 이유를 깨달았다.

난 그저 외로왔던 거다.

그동안 혼자 여행하는데 익숙해서 당연히 계속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혼자 여행하는데 거부감이 있었다가 언제부턴가 익숙해졌듯, 일행과 여행하는게 다시 그리워진거다.

외로움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감정인가 보다.

둘러싼 상황의 보호 덕에 외로움과 직접 맞닥뜨릴 일이 없었다가, 상황이 변해서 직접 마주하게 된게 아닐까 싶다.

소속을 벗어나 온전한 개인이 됐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강한 마음은 강한 체력에서 나온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온전히 홀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현기증마저 든다.

내가 몇끼를 굶어도, 어디를 가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혼란스러워 해도, 이러다 죽어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티끌이다. 그저 지나가는 외지인일 뿐이다.

나는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라는 존재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확인을 받아 안심이 든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존을 인식한다.

동질성과 객체성,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식들이 필요하다.

몇년, 몇십년을 여행하는 사람, 혹은 아예 돌아갈 근거 없이 언제까지나 떠도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그 고독감을 버틸까?

 

딱히 해야만 할 목표가 있는 여행도 아니었다.

이 고독한 감정을 굳이 극복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일단 인식했으니,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할 일이 있을 때까지 좀더 곱씹어 보면 된다.

이번 여행에서 굴러들어온 의의가 이것인듯 하다.


여행은 여기서 접기로 했다.

 

여행을 접기로 하자, 갑자기 찌레본에 사는 친구가 마구 보고 싶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분명히 인식해주는 존재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내일 바로 오라고 한다.

갑자기 모든게 홀가분해졌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지구 어딘가 티끌만한 곳, 있을 권리를 인정 받은 그 곳에 터를 잡은 존재.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그 곳을 지키며 굳건히 서있는 등대 같은 존재.

자식들이 돌아올 곳으로서 버티고 있어야 하는 존재.

정작 당신들 스스로는 힘들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존재.

새삼 부모님께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

거기 그렇게 계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걸 받는데, 도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섰다.

어쨋든 어디 가서 스마랑 가봤다고 하려면 좀 돌아다녀 보기는 해야지.

 

대체적으로 치안이 괜찮아 보여 하천길로 들어가 봤다.

보통은 하천 근처는 우범지대인 곳이 많으니 피하는 편이 낫다.

 

역시나 깊숙히 들어오니 분위기가 후덜덜 하다.

하천 한가운데 폐선이 한 척 떡하니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진 배를 굳이 해체하자니 비용이 들어서 내비둔게 아닌가 싶다.

 

하천 건너편은 가족식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식당가다.

밝은 불빛 아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비되어 어둑한 이쪽 골목이 더 고단해 보인다.

 

도교 사원

스마랑에 화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니, 곳곳에 중국풍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전형적인 중국풍의 건물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굳게 닫은 철문은 걸핏하면 약탈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1층에서 장사하고 가게 문을 닫으면 2층의 생활공간으로 올라 가고, 평생 저 곳을 지키고 살아왔을 거다.

 

거리는 전반적으로 안전한 느낌이었다.

 

큰 야시장으로 유명한 곳

7시 반인데도 벌써 파장 분위기다.

술을 팔지 않으니 저녁때끼 먹고 나면 다들 집으로 갈테고, 가게도 더 열고 있을 이유가 없다.

원래는 이 근처에 튀김에 맥주 파는 곳이 있다고 들어서 온건데,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호텔로 돌아와 룸서비스 시켜 먹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호텔은 이런 점이 좋다.

 

아침 6시 시장 풍경

아직 때가 이른지 그닥 분주한 풍경은 아니다.

나도 이제 아침을 먹고 슬슬 짐을 챙겨 친구에게 가야겠다.

친구에게 할 얘기가 많다. :)

 

 

이후로 여행은 어쩐지 일행이 없으면 좀 의욕이 안생기더군요.

스트레스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뭐 그런 거겠죠.

언젠가는 이거든 저거든 다 괜찮다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처한 상황과 자기 자신을 그저 현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렇게 보니 보통 일은 아니네요.

뭐 사람 사는게 도 닦는 거랑 다를 바 없다는 얘기가 그런 건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