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Lombok] 10. ~End~ 노쇠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명랑쾌활 2016. 3. 11. 10:34

 

아고다에 나온 부미 아디띠야 호텔 사진은 저 건물이다.

저긴 비싸다.

아고다 최저가는 당연히 저기가 아니다.

 

조식은 식빵에 계란, 커피다.

역시나 먹는 수준이 아니라 떼우는 수준이다.

최저가 숙박객들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비싼 방 숙박객들은 억울할듯.

 

수영장은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을 못봤다.

 

방살 항구 사거리에서 계속 직진해봤다.

예전에 왔을 때 왕복 8시간 걸렸던 스나루 폭포 Air Terjun Senaru 가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예전에 비해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오래된 나무는 그 자체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저 나무는 저 곳에서 그 세월 동안 무엇을 봐 왔을까.

 

오후 2시 경, 목적지인 스나루 폭포까지는 3분의 2 정도 왔다.

찍고 오면 승기기 도착 시간이 저녁 7시가 넘을듯 하다.

힘들기도 하다.

예전엔 도대체 무슨 깡으로 갔다 왔을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부쩍 느낀다.

노쇠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거부감이나 비감, 슬픔을 키울 필요는 없다.

무리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태어나고, 흥하고, 쇠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다 나름의 삶이 있다.

 

목적지에 가는 것도 결말이지만, 가지 못하고 되돌리는 것 또한 나름의 결말이다.

우리는 돌아 가기로 했다.

 

마을 근처도 아니고, 해변이 아름다운 곳도 아닌 길가에 뜬금없이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간단한 식사나 컵라면, 음료 등을 파는 식당이다.

한켠에는 주거 공간도 있다.

이 가게들 자체가 곧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이 형성되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모험심 많은 - 그래서 이런저런 황당한 사고도 많이 겪었던 - 친구가 사떼 이깐 Sate Ikan (물고기 꼬치구이)을 시켜 본다.

이렇게 끔직하게 비리고 맛없는 꼬치는 처음 먹어 봤다.

친구나 나나 딱 한 조각 먹어보고 내려 놨다.

7년 정도면 인니 꽤 살아 봐서 어지간한 음식은 다 먹는다는 자만심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어느 곳이든 그곳 현지인의 평범한 삶이란 다 녹록치 않다.

평범한 삶은 흔해서 평범하다 할 뿐, 쉬워서 평범한게 아니다.

한국도 장래희망이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하면 참 소박하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얼마나 평화로웠던 때였나.

현재 처지에 감사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 길이 그 길 같아도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스나루 폭포 가는 길 중에는 이 곳이 그런 곳이었다.

 

5년 전 이 곳은 이랬었다.

이 때에 비해 길도 더 좋아졌고, 목 좋은 코너에 조그마한 가게들도 들어섰다.

 

다 그렇게 변해가게 마련이다.

더 쇠락하거나, 더 발전하거나.

시간이 흐르는 이상, '그 때 그대로'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롬복 군사무소가 있는 딴중 Tanjung 의 읍내

예전에 비해 차도 많아지고, 교통량도 늘었다.

나도 그 때에 비해 겪고 아는게 많아진 만큼, 더 태연하고 침착해졌다.

현지인의 요상하다는 시선에도 예전처럼 위축되거나 들뜨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은 익숙함에서 나온다.

 

승기기 근처만 와도 한결 마음이 놓인다.

어디를 여행 가더라도 이렇게 마음 놓이는 곳이 베이스 캠프로 존재하면, 그 여행지에 더 애착이 가게 된다.

 

롬복 떠나기 전날 저녁은 추억의 알베르또 Alberto 에 갔다.

 

친구가 시킨 올리브 스파게티도 맛있고,

 

이 피자 정말 그리웠다.

기억 그대로 맛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사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서비스로 나온 피자 도우로 만든 빵

 

놀랍게도, 나이 지긋하신 지배인 아저씨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맥주를 시키자 레몬 보드카는 안마실 거냐고 묻는다.

레몬 보드카는 예전 롬복 여행 때, 예전 사장님과 몇번 와서 늘 마시던 술이다.

이젠 그냥 맥주면 족하다고 하니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더니, 피자 도우 빵을 가져다 준다.

피자 도우 빵도 예전에 왔을 때, 너무 맛있어서 남는 거 있으면 나중에 좀 챙겨주면 안되냐고 부탁했었던 거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건 마음을 따듯하게 만든다.

후손을 남기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잠시 살아갔다는 흔적은 남아 있다.

누군가가 기억한다면 사라진게 아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기 존재를 인식한다.

나를 타인으로 인식하는 존재가 있기에, 나는 나로 존재한다.

 

롬복 공항 사삭족 전통음악 공연

특이하게도 바이올린이 들어가는데, 의외로 굉장히 토속적이고 잘 어울린다.

 

아이스크림 & 에스프레소 메뉴를 시켰는데, 에스프레소가 사람 잡을 정도로 쓰다.

남는 한약 있으면 쓴 맛이 맛있다고 낼름낼름 다 마시는 내가 마시기 힘들 정도다.

 

아이스크림에 부어 마시는데도 쓰다.

반쯤 마시니 심장이 벌렁거려서 도저히 다 마실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길리 3형제 상공을 지나 자카르타로 나아간다.

이제 발리가 아닌 롬복이 내게 힘들면 떠오르고, 쉬고 싶을 때 가는 곳이 될 거 같다.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올 때까지 별 탈 없이 잘 있길 바란다.

 

자카르타에서 이틀 묵고 자카르타 공항으로 가는 길

이번 인니 여행 동안에 특이했던 점 중 하나는, 탔었던 거의 모든 택시의 기사가 졸았다는 점이다.

다들 사는게 고단한가 보다.

아니면 밤에 놀거리가 많아졌든가.

 

 

이것으로 이번 자카르타-발리-롬복 여행기를 마칩니다.

일행과 함께 하는 여행은 외롭지 않은 만큼 혼자 깊이 생각할 시간도 적더군요.

여행 스타일에 꼭 정답은 없듯, 이런 여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참 오랜만에 쓰는 여행기입니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비롯되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사건 하나를 치루기도 했네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ㅋ)

인생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 일이고, 늘 꿋꿋할 수도 없는 일이죠.

인니도 참 힘들고, 한국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네요.

힘든 시기인 만큼 다들 여러 가지로 어렵게 버텨가고 계실 겁니다.

마냥 행복할 수 만은 없듯, 마냥 힘들기만 할 리도 없습니다.

 

현생 인류가 구 인류에 비해 뛰어나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우연히' 더 적합했기 때문에 생존했다는 게 현대 고고학의 정설입니다.

환경의 변화는 무정하고, 선악도 없습니다.

힘들면 힘든대로 버텨야죠.

자기 자신을 잃지 말고요.

거대한 세상에 비해 티끌 같은 개인이 그나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어려운 시절, 다들 살아 남으셨으면 합니다.

살아 남는다면 또 웃을 날이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