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새로운 문화권 적응의 단계

명랑쾌활 2014. 6. 6. 09:26

그간, 이만하면 인니에 적응 깨나 했고 이대로 관록이 쌓이면 되나보다 했는데, 최근 비슷한 문화권인 말레이시아를 다녀오면서 인니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스스로도 좀 의외여서 기록으로 남겨볼까 합니다.

 

새로운 문화권을 접할 경우의 단계를 정리해 봅니다.

물론 개인적 체험을 근거로 했으므로, 당연히 신뢰성은 보장 못합니다.

많이 배운 학자들이 돈 써가면서 장기간 관찰하고, 관련 논문서적 조사한 결과물이나 신뢰하는 거겠죠. ㅎㅎ

읽어보시고 각자 잠깐 생각해 볼 꼭지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접촉 - 새로운 문화권과 접촉하는 단계

깊은 고찰이 없는 여행의 경우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섣불리 미루어 짐작하면 오류가 많아 오히려 좋지 않다.

 

2. 탐색 - 모국의 문화에 대비하여 공통점과 상이점을 찾아가는 단계

깊은 고찰을 하는 여행의 경우도 이 단계에 해당한다.

단편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피상적인 이해에 그친다.

 

 

--> 일반적으로 여행자의 입장은 대개 2단계까지 경험하는게 한계다.

 

 

3. 경험 - 새로운 문화권을 생활로서 접하고 겪는 단계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여행자 입장과는 달리, 새로운 문화권의 보다 미세하고 직접적인 부분을 대면하게 된다.

본인의 생활에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소소하면서도 보다 큰 영향을 끼친다.

소위, '여행이나 좋아 보이지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해당하는 단계다.

 

4. 충돌 - 모국의 가치관과 새로운 문화권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단계

생활 속에 소소한 차이가 축적되어가다 폭발하여, 해외 생활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단계다.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며, 향수병에 걸리는 것도 거의 이 경우다.

소위, 이 나라 것이라면 돌맹이 한 개, 풀 한 포기도 싫고, 모든 현지인이 자신을 바보취급 하는 것 같이 느끼는 상태가 된다.

 

사람마다 다른데, 대략 체류한지 6개월~1년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이 단계에 들어선다.

자기 생각만 옳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포용성이 없을수록 빨리 단계에 들어서고 오래 겪는다.

무조건적인 상명하복를 선호하고, 건의나 반론이 권위에 손상을 준다고 불쾌감을 느끼는, 권위주의적인 옛날식 직장 상사들도 대부분 이 단계에 빠져 갈등을 많이 일으킨다.

모국에서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행했던 일들'이 당연하지도 않고, 행동 전에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데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생기는 반발심이다.

회사 일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대응이 잦은 편이며, 심한 경우로 어떤 퇴역 장성이 정신병으로 귀국한 사례도 있다.

 

흔히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무의식적인 행동은 무조건반사 행동이 대부분이고 드물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인간의 상식이나 가치관, 문화를 전재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예를들면, 인니 문화에서 손아랫사람이라도 물건을 주고 받는 행위를 왼손으로 하는 것은 실례인데, 한국인은 '아무 생각 없이' 왼손으로 물건을 건네거나 받을 수도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니에 거주하는 한 인니 문화에 비추어 실례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의식적으로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무의식적으로 해도 되는 행동들을 일일히 의식하면서 행동한다는건 피곤한 일이고, 그런 소소한 것들이 스트레스로 쌓여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사고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 이방인의 입장을 견지하면 4단계 이상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해외지사 주재원, 유학 등 2~3년 이내의 한시적인 체류자는 모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발 떨어진 이방인으로서의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없다.

 

 

5. 체념과 타협 - 새로운 문화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단계

갈등 상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로, 일종의 체념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단계다.

접하는 현상이나 처한 상황에 거부감은 있지만, 자신이 잘 모를뿐 현지에서는 당연할 거라고 받아 들인다. (여긴 원래 이런가 부지~ 라는 자조적인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ㅎㅎ)

이 단계에서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둘로 갈린다.

 

한 편은 현지에서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부정적이고 현지 문화권이 미개하기 때문이라고 자기 가치관을 좀더 공고히 한다.

권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주로 '옛날식'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필요에 의해 겉으로만 수용할 뿐 실상 현지 문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다.

심한 경우, 현지인들에 대해 원한에 가까운 적개심은 숨기고, 철저히 이용할 대상으로만 대하기도 한다.

현지 언어가 잘 늘지 않으며 자기 멋대로 엉망으로 의사소통만 가능한 수준에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노사관계도 나쁘고 처우가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아무리 현지에 오래 살아도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한 편은 갈등의 원인을 외부의 불합리로 돌리기 보다, 자신의 무지 탓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앎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시작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진정한 이해의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상황을 해석하는데 자신의 기존 가치관이 작용하는 한계가 있다.

동시에, 자신의 기존 가치관이나 상식이 '과연 당연히 옳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이런 성향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후자에 해당한다 자평한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모든 괴로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걸 깨달았던 귀중한 시기였다.

가치관이 부정당하는게 존재의 부정인양,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지키려한 에고가 깨지니, 한순간에 마음이 편해졌다.

 

6. 적극적이지만 지엽적 이해 - 현지 문화권의 가치관을 내제화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단계

불합리하거나 부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데 적극성을 보이는 단계다.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해왔던 현지 문화권의 '당연한 것'들의 자료(?)가 충분히 쌓여, 접하는 현상이나 처한 상황을 그 자료들을 근거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심리라고 볼 수도 있고, 먼 모국보다 지금 살고 있는 현지가 중요하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본능적으로 작용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경험의 한계만큼 지엽적일 수 밖에 없다.

 

이 단계에 이르면 현지 생활의 즐거움 많아 진다. (물론 생활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처음 겪는 상황도 미루어 짐작하여 현지 문화와 큰 마찰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감'이 생긴다. (외국어 공부의 '입이 터지는 단계'라고 비유하겠다.)

낯선 곳에 가도 불안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

살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해도 침착하다.

현지의 룰을 침범하지 않도록 처신하기 때문에 현지인들도 대부분 호의적이다.

표현이 은근한가 적나라한가의 차이일 뿐, 어차피 사람 사는건 다 똑같고 사람 마음도 매한가지라는 이해가 생긴다.

표면적이 아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현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단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건 아니지만, 개개인에 따라 자아의 측면에서도 크게 성장하기도 한다.

기존 가치관의 굴레를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어 보다 풍부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상명하복이나 회사를 위한 자기 삶의 희생이 훌륭한 덕목이라 세뇌 당했던 주박이 깨져, 보다 당당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이 깊어진다.

특히, 회사 조직에 대한 한국적인 가치관이 깨진다는건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직장 상사나 사장이라는 대상을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로 따르지 않고, '조직 안에서 입장이 다를 뿐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긴장이나 위축 없이 처신하게 된다.

또한, 불합리한 조치나 지시의 저변에 깔린 의도를 감지하여 보다 현명한 처신을 하고, 부조리하게 강요당하는 희생을 피하거나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이 상태의 부작용은, 외국계 회사나 아주 드물게 있는 기업 마인드 제대로 된 회사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있는 회사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상명하복과 부조리에 대한 침묵, 회사를 위한 개인 삶의 희생을 성숙한 사회인의 덕목으로 당연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도 한국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 자기도 모르게 현지 문화권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두둔하는 편파성을 띄게 된다.

현지에 오래 살고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다.

눈에 띄는 행동으로, 같은 모국인(한국인)이 현지 문화를 싸잡아서 비하하는데 민감하게 반발한다.

또한 모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부분을 지적하면, 무리하게 다른 논리를 붙여 두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문제는, 스스로는 모국과 현지 문화 양쪽을 공정하게 본다고 착각하는 점이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현지 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는데 너무 얽매여, 현지 문화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공정한 거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바로 이런 착각들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된다.(자신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니까.)

 

7. 비평 - 현지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는 단계

결점이 없는 문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 단계는 현지 문화의 결점마저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상황을 애써 긍정적으로 합리화 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보는 단계다.

그렇다고 불만이나 스트레스는 크게 느끼지 않는다.

'여긴 원래 이렇다'는 수용적인 태도를 극복하여, 확장된 가치관이 비로소 제대로 선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 단계와 다른 점은, 현지 문제도 상황에 따라 아닌걸 아니라고 반박하고, 현지인도 반발하기 보다는 수긍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갈등은 이전보다 늘지만, 자연스럽고 건설적인 갈등이다.

(갈등이 없는 생활은 비정상이다.)

 

8. ??

이후의 단계는 어떨까?

어차피 인니를 모국으로 인식하는 원주민의 단계에 진입하는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