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햄버거 사건 - 감당하기 어려운 소비자 선택권

명랑쾌활 2013. 5. 16. 09:42

한때, 서너 달 정도 붙박이 야간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12시가 넘어 들어가면 뭘 제대로 차려놓고 먹기가 그렇죠.

다행히도 제가 사는 곳엔 맥도날드가 24시간 영업하고 있습니다.

(인니에서는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24시간 영업이 아직 드문 일입니다.)

 

거의 두 달간 빅맥이나 치킨버거를 먹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의 빈도로 빅맥의 야채가 떨어졌다고 그럽니다.

나중에 한 번 다룰까 하는 주제인데, 인니의 유통구조는 판매자 위주입니다.

물건이 떨어진다는 것은 판매자의 무능으로 간주되는 한국과는 사뭇 다릅니다.

 

야채가 떨어졌다고 팔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야채가 떨어졌는데 괜찮겠냐고 묻지요.

보통은 치킨 피스나 다른 것을 먹었는데, 어느날인가 시험삼아 야채 없어도 괜찮다고 빅맥을 시켜 봤습니다.

 

두둥~

 

두두둥~

 

야채가 없더라도 소스가 있으니 그럭저럭 먹을만 하지 않을까, 피클은 통조림으로 유통될테니 적어도 피클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빵과 치즈와 패티만 덜렁 들어있습니다.

그야말로 '야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없는데다, 야채 친구인 소스까지도 없습니다.

탓할 바는 아니지요.

분명히 괜찮겠냐고 물어봤으니까요.

 

한국 같으면 재료가 떨어졌다고 안팔겁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대신 한국 사회의 통념 상,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품질을 보장하는 거지요.

하지만 인니에서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대신 품질에 대한 보장은 없지요.

그래서인지 10원짜리 물건을 만원에 팔아도, 소비자가 샀다면 소비자 책임입니다.

 

야채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빅맥 비스무리한 것을 살 수 있는 인니가 나은 것일까요,

야채가 떨어지는 순간 빅맥을 사지 못하는 한국이 나은 것일까요?

이 점 하나는 확실합니다.

인니에서는 소비자가 좀더 긴장하고 똑똑해야 합니다.

상거래에 대한 사회적인 보호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약하거든요.

 

이런 일을 겪고서도 화가 나기 보다는 헛웃음이 나오는거 보니 저도 꽤 적응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