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쇼핑몰 사기의 한 종류, 그리고 대처

명랑쾌활 2013. 4. 1. 09:22

혹시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싶어 미리 밝혀두는데, 인니에도 이런 대형마트가 있다.

(장담하건데, '헛! 정말 있단 말일가!' 라고 놀라는 사람 분명히 있을 거다.)

 

작년 요맘때쯤 일이다.

전자렌지를 사러 대형마트에 갔다.

어떤걸 살까 고르고 있는데, 가전제품 판매 직원 놈팽이가 따라 붙는다. (놈팽이라 불려도 싼 넘은 놈팽이로 불러야 한다.)

제품 하나 가리키며 달라고 했다.

놈팽이가 새 제품 재고를 확인하고는 계산서를 작성한다.

 

Tip.

인니의 대형마트에서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카트에 싣기 큰 제품들은 직원이 계산서만 작성해서 준다.

그 계산서를 가지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한 후, 계산원이 가르쳐 주는 제품 수취하는 곳으로 가서, 영수증을 제시하면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통은 진입구에 있는 경비원이 그 일을 담당한다.

 

놈팽이는 계산서를 작성하면서 뭔가 눈치를 보는듯 하더니 나한테 슬쩍 말을 건냈다.

" 이거 판매가격보다 더 싸게 해줄 수 있다."

" 응, 그래? 그럼 좋지."

" 30만 루피아 정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대신 수수료 10만 루피아가 든다."

" 그래도 20만 루피아 싸겠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주라."

그 직원이 뭘 신나게 적는 동안, 관심 없는척 다른 물건들을 돌아 봤다.

그러는 동안 다른 여직원이 스윽 근처로 왔다.

놈팽이가 여직원에게 순다종족어로 뭐라뭐라 얘기한다.

못 알아 듣겠지만 내용이야 뻔하다.

여직원이 나를 슬쩍 쳐다보는데 표정이 묘하다.

그냥 덤덤하게 계산서 작성하는거 기다렸다.

 

다 작성해서 내민 계산서를 보니 역시나, 내가 고른 제품의 판매대에 붙어 있던 특별 할인가가 적혀있다.

즉, 저 놈팽이가 수작질 안해도 원래 할인된 가격이란 얘기다.

만에 하나 혹시 특별 할인가에서 다시 30만 루피아 싼 가격 제시한 건가 했지만 역시나다.

이 어설픈 놈팽이는 외국인은 숫자도 제대로 못읽는줄 아나보다.

아무말 없이 계산서를 받아 들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했다.

제품 수취소에 가서 계산서와 영수증을 내미니, 가전제품 판매 구역에서 놈팽이가 전자렌지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나한테 스윽 붙어서 10만 루피아를 요구한다.

씨익 웃으며 한 마디 했다.

" 줄테니까 수수료 받았다는 영수증 줘. 이거 회사 비품이라서 뭐든 다 영수증 필요해."

놈팽이가 벙찐 표정을 짓는다.

" 문제 있으면 원래 가격으로 주던가. 어차피 내 돈 쓰는거 아니니, 비싸도 상관 없어."

놈팽이 괜찮다며 가전제품 판매 구역으로 돌아간다.

수수료 10만 루피아 문제 앞뒤가 안맞는다던가 한걸로 찔릴 법도 한데, 태연한 표정이다.

원래 인니인들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한, 소름끼칠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도 잘하고, 시치미도 잘 뗀다.

(어쩌면 같은 인니인은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인 관점에서는 전혀 티가 안난다.)

나도 별 소리 안하고, 물건만 받아서 돌아섰다.

 

인니에서 터득한 행동방식 중 하나다.

속이려는 넘한테 속인다고 뭐라고 할 필요 없다.

예전같으면 속이려는 시도 자체도 괘씸해서 박살을 내겠지만, 인니에선 나만 손해다.

어차피 말로는 이기기도 힘들고, 시시비비 가리려고 문제 커지면, 모여든 사람들의 백에 구십구는 외국인에게 적대적이다.

요는 안속으면 그만이다.

 

인니인들의 거짓말 속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숙성되면 한 번 다룰까 한다.

그냥 간단히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인니의 윤리 기준에서는 거짓말이 그렇게까지 나쁜 행동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 예의로 간주되는 성향이 있는데, 그게 자기 위기 모면의 검은 거짓말에까지 확대 적용되는게 아닌가 싶다.

설마 인니인들도 사람인데 자기 양심 찔리는 것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숨길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끔찍한 일이다.)

요컨데 거짓말이 양심에 찔리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도 아무렇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더라도, 옳고 그름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경계는 모호하다.

그걸 규정하는게 종교이고, 윤리고, 문화인데, 그에 따라 경계 언저리의 것들은 다를 수 있다.

어떤 행동이, 해도 되면 옳은 것이고, 해서 안되면 그른 것 아니겠나.

 

참고로 인니에서는, 솔직함이 실례일 경우가 많다.

흔히들 솔직함은 좋은 것으로 인식되지 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