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라지 포장 박스에 담겨온 미디엄 피자를 먹으며...

명랑쾌활 2013. 4. 12. 10:17

버터플라이 이펙트같은 거창한 연쇄적 꼬임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우연이 겹쳐 실제와는 다른 사람으로 이미지가 고착되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다.

가령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피자 미디엄을 시켰다.

혼자 먹기엔 한두 쪽 정도 버거운 양이다.

피자는 라지 포장박스에 담겨져 배달됐다.

그날따라 피자가게의 미디엄 피자 포장 박스가 떨어졌댄다.

시킨 사람은 음, 그렇구나 하고 먹는다.

다 먹은 피자판으 내놓는다.

친구가 그 피자판을 봤다.

이야, 돼지새끼. 라지 한 판을 혼자 다 먹나? 라고 묘한 눈빛으로 본다.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만 해명하기 애매하다.

분명 변명으로 생각할 거다.

아니 내가 뭐랬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뭘 설명하고 그래? 이해해.

그거 해명하려고 피자집까지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친구의 의식에는'피자 라지 한 판을 혼자서 다 먹는 돼지같은 넘'으로 낙인찍힌다.

오해를 풀길이 없다.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친구는 이 진귀한 사실을 주변에 널리 퍼뜨린다.

그리고 그렇게 고착된 이미지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재료가 되고, 훗날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세상일이라는게 그렇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곧 당신이다.

평판은 어쩌면, 그런 사소한 것들이 겹쳐 형성되게 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