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Bali] 작년 12월, 낀따마니, 참 뜬금없었다.

명랑쾌활 2012. 10. 30. 01:42

이땐 왜 갔었는지 당최 기억이 안나네요.

혼자 간건 확실한데...

뭐, 심심해서! 만만한! 발리에 갔나 봅니다. ㅎㅎ

그럼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로까하우스에 짐을 풀고, 바로 옆 사키타리우스에 갔다.

 

꼴에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빨간 털모자를 쓰고 호객을 하고 자빠져 있다.

(솔로라서 화를 내는건 절대 아니다. 예수 탄신일과 커플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키타리우스의 볶음밥은 10점 만점에 6점.

청결도는 9점 준다.

 

내가 좋아라 하는 살사재즈밴드 부에나 피에라 Buena Viera가 부다 바에서 토요일에 공연한다길레 냉큼 갔다.

 

그나마 싼 편이지만 그래봤자 과하게 비싼 바케트 샌드위치를 시키느라 사지가 벌벌 떨렸다.

 

그래서 찔끔찔끔 말려 마실 수 있는 아락 마두 Arak Madu 칵테일을 시켜 놓고 기다린다.

아락은 인니의 전통주로 소주와 비슷하다. 마두는 꿀이라는 뜻.

 

연주 실력은 여전하다.

그런데 내가 좋아라 하는 보컬 아줌마가 없다.

에너지 넘치는 아줌마였는데, 없으니 좀 허전하다.

 

둘째날 오전, 비가 오부지게 내린다.

10시 쯤 비가 그쳐, 근처 한 바퀴 드라이빙 돌고 왔다.

 

셋째날 아점은 어제 드라이빙하다 눈여겨 봐둔, 네까 미술관 건너편의 바베큐립 집에 갔다.

 

바로 요집 

 

스쿠터 타고 지나가다 요 광경을 보고 혹했다.

 

맛은 10점 만점에 10점인데, 가격이 쉣이다.

만원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한국 물가 대비하면 싼 편이겠지만, 첫 데이트하는 소녀 열 명이 먹을 만한 양이 만원이 넘다니, 장이 꼬일 지경이다.

 

그래도 손님이 미어터져서 주방이었던 곳까지 테이블로 쓴다.

그나저나 저 돼지...

 

가까이서 보니 표정이 어둡다.

뭐 그럴만도 하겠지.

치킨집 간판에 그려진 닭이 활짝 웃고 있는게 이상한 거다.

그것도 튀긴 닭다리를 들고.

 

현지인 가게가 아니라 서양 할아버지 가게인 모양이다.

 

오늘은 좀 멀리, 빠당바이 Padangbai 까지 가볼까 해서 든든히 먹어둔 거였다.

가다가 경찰들 대여섯 차례 봤는데, 모두 딴 사람을 잡고 있어서 무사통과 했다.

어차피 외국인은 잡히면 아무 문제 없어도 무조건 돈을 요구하는데, 무면허는 부르는게 값이다. ㄷㄷㄷ

 

그런데 요 철길을 제외하고 길들이 썩 재미있진 않다.

2시간 쯤 걸려서 도착한 빠당바이도 별로다.

 

온게 억울해서 어디 숨겨진 해변 없나, 해변으로 통할 것 같은 작은 길로 무작정 들어섰다.

 

요런 오르막을 지나 가보니...

 

짓고 있는 중인지, 짓다가 망한건지, 하여간 묘한 곳에 다다랐다.

 

리조트를 짓는다면 꽤 괜찮을 거 같다.

하긴, 발리에 리조트 지어서 안괜찮을 곳이 어디 있겠나.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봤더니 이렇게 길이 끝나고 왠 오토바이들이 서있다.

외국 여행하는 프로그램 보면, 이럴 때 뭔가 하고 가보면 진귀한 걸 구경하고 그러는데...

그거 다 개뻥 연출이다.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

혹시 사이좋게 인육이라고 먹고 있다 나랑 마주친다면,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닐거다.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은 인적(목격자)이 드문 곳에 사전 지식이 없으면, 가지 않는 편이 좋다.

외국인에게 신기한 꺼리이면서 보여도 될만 한 것이라면, 이미 알려졌을 경우가 훨씬 많지 않겠능가.

난 오지모험가가 아니라 그냥 불한당 여행자일 뿐이다.

 

그닥 유쾌하진 않지만 알아둬야 할 사실 하나.

아직도 인육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일이 아직도 도처에서 (오지에 국한되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는 호기심은 금물이다.

 

...너무 겁줬지만, 사실 이 오토바이들의 주인들은 저 아래 한적한 해변에서 낚시도 하고 음식도 먹고 놀고 있었다.

거기 까지 가는 길이 험하고 가파른데다, 그닥 멋져 보이는 곳도 아니었다. ㅋㅋ

 

그 유명한 세계적인 관광지인 발리의 바다마저도 이렇게 더럽다.

그러니 내가 어찌 블리뚱에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능가.

 

빠당바이를 떠나 덴파사르 방향으로 주욱 가다보니,

 

이런 발리스럽지 않은 풍경이 나온다.

하긴, 발리스럽지 않다기 보단, 발리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른 것 뿐이다.

그리고 이미지는 보고 들은 것으로 형성된다.

삶이란, 생활이란, 그 유명한 발리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아까 지나쳤던 철교에서 본 마을 모습

관광지가 아닌 이런 발리의 모습이 좋다.

빠당바이 갈 때 길을 연구해서 간게 아니라 대충 동쪽으로 동쪽으로 표지판 보면서 가는 바람에, 우붓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빠당바이 표지판은 많았는데, 우붓 표지판은 없다.

덕분에 왔던 길 되짚어 간 것은 여기까지다.

 

우붓의 지대가 높으니 오르막으로 가면 될거라는 계산이었다.

어찌어찌 가다보니 이런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도 만난다.

왔던 길이 아니라는건 확실하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발리겠지, 롬복이라도 왔겠능가.

근처에 커피 파는 곳이 없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번 롸이딩을 함께한 검둥이.

 

올라가도 너무 올라가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아궁산 Gunung Agung 이 멋지게 펼쳐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이런 곳에서 주유원으로 일하면 호연지기 팍팍 샘솟지 않을까, 주유원이 알면 기름을 쏴댈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제 완전히 시골길로 접어 들었다.

아까의 주유원도 그렇고, 이제 점점 나를 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발리의 시골마을엔 대추나무가 아니라 잭프룻 Jackfruit 나무가 보통인가 보다.

아, 잭프룻의 인니어는 낭까 Nangka 다.

 

근데 좀 뜬금없게 열린다.

저 나무 밑에서 자다가... ㄷㄷㄷ

 

그 뒤로도 이제 좀 서쪽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빠지는 길이 없어 계속 해서 북쪽으로 갔다.

가다보니 이런 광경도 보고...

 

이런 인적 드문 길도 달리다...

 

뜬금없이 산중 호수가 등장해서 무지개로 나를 반긴다. -_-;

(호수 중앙 쯤을 잘 보면 희미하게 무지개가 보인다.)

그렇다. 나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낀따마니 Kintamani 호수까지 가게 된 것이다. ㅋㅋㅋ

이 때 시간이 4시 반 쯤, 대략 3시간 남짓 달렸던 것 같다.

 

일단 좋은 뽀인트에 커피 파는 노점도 있겠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서 경치를 감상한다.

시간으로 봐서 그리 느긋할 상황은 아니건만, 뭐 어쩔건가.

발리에 식인곰이 사는 것도 아닌데.

 

다시 길을 나선다.

낀따마니 호수 변으로 멋진 산중도로가 나있었다.

저런 명당이 인심 좋게 방치되어 있고.

 

검둥이를 세워 놓고 다시 경치를 감상한다.

 

참 살기 좋은 곳일거 같다.

논도 있지, 산도 있지, 물도 있지.

나중에 며칠 묵어볼까 한다.

 

산길을 좀더 달리니, 낀따마니 마을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투어차량으로 오는 사람은 여기로 바로 올 거다.

낀따마니 근처에 경찰이 많다더니, 저녁이라 다들 들어갔나 보다.

 

낀따마니라면 우붓 가는 길은 뻔하다.

정문을 등지고 주욱 뻗어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된다.

(물론 중간에 갈림길이 두어번 있다.)

시간은 이제 5시를 넘겨 햇살이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한다.

 

저 사진 찍은 뒤로 10여 분 쯤 지나, 바로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한다.

마음은 급한데 빨리 달리려니, 헬멧 바이저에 날벌레들의 육탄돌격이 벌어진다.

에라, 뭐 향수를 뿌리고 야한 잠옷을 입고 기다리는 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럼 더더욱 늦게 들어가야 하나? ㅋㅋ), 설렁설렁 간다.

 

가다보니 현지인 야시장이 보인다.

뭐, 대부분의 여행자들이라면 바로 호기심에 난입하겠지만, 사람 많은데 싫어하는 난 패스~

야시장이 야시장이지, 인육만두를 팔 것도 아니고, 금발미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붓에 도착하니 밤 8시다.

10시간이 넘는 롸이딩에 허기는 지는데 식욕이 나지 않는다.

산중의 밤바람이 차, 몸도 식었다.

이런 날 맥주 따위 마시면 병난다.

부다 바 건너편 레스토랑에 가서 따끈한 핫초코 한 잔으로 속을 달랜다.

 

핫초코로 속을 달래며, 부다 바에서 들려오는 라이브도 훔쳐 들으며 있자니, 몸이 좀 풀린다.

문득, 발밑에 뭔가 꼼지락 거리는 것 같아 내려다 보니, 콩만한 깨꾸락지 한 마리가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발가락으로 콕콕 찔러줬더니, 무례하게도 다른 데로 가버렸다.

이제 슬슬 피곤이 올라오는듯 하여, 숙소로 복귀.

 

복귀하는 날이다.

우붓에서 12시쯤 출발할 예정이라, 남는 시간에 우붓 근처 시골길을 달려 봤다.

 

어째 날씨가 꾸물거린다.

마침 아점 먹을 때도 됐고, 논 사이로 난 길에 뜬금없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오, 식당 건물 안에 평상이!

 

영락없이 10분 내로 쏟아질 하늘이다.

 

따듯한 레모네이드를 시켰는데, 의외로 덜 달고 맛있었다.

같이 나온 끄루뿍 Krupuk (갈은 생선이나 새우가 들어간 인니 튀김과자)은 눅눅해서 패스.

 

예술의 마을 우붓 답게, 이런 허름한 식당에도 그림 한 점 쯤은 우습다. 그런데...

 

뒤에 탄 아가씨 시선과 손이 어째...

그런데 저거 그냥 단순히 웃기려고 그린게 아니라, 정말로 저런 현지인들 종종 있다. ㅋㅋㅋ

 

볶음밥 10점 만점에 7점.

위에 올린 끄루뿍은 10점 만점에 9점.

같이 나온 삼발 Sambal 양념(한국의 고추장 비슷한 거)은 10점 만점에 10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만 가격이 좀 비싼게 흠이다.

2만 루피아 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 물가로는 싸지만, 현지 감각으로는 이 정도면 30% 정도 비싼 가격이다.

아마 외국인 가격이나, 관광지 가격 적용인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시원하게 비가 쏟아진다.

 

어느 정도 그친듯 하여 숙소로 복귀했다.

 

로까하우스 뒤편 논은 이제 수확이 한창이다.

손으로 후려패서 낱알을 떨구는 재래식 알곡기다.

그러고 보니, 제작년에 왔을 때는 휴경지로 뒀었고, 그 뒤로 왔을 때는 모가 심어져 있더니, 이제 수확이다.

 

떠나는 내게, 로까 아줌마가 가면서 먹으라고 바나나를 준다.

보통 바나나랑 틀린 맛있는 바나나란다.

딱딱한 편에 덜 달아서 입맛에 맞았다.

 

로까하우스 간판도 생겼다.

그리고 들어가는 골목길에 왠 차고와 지프가 있길레 뭔가 했는데, 로까 아저씨 차였다.

인니는 길에 막 차고 만들어도 되나보다. ㅋ

 

원래 아는 택시 불러서 공항에 가려고 했는데, 로까 아저씨가 자기 차로 가자고 한다.

가격은 시세보다 5만 루피아 싼 15만 루피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로까 아저씨의 지프는 관리는 엄청 잘 되어 있지만, 핸들도 파워핸들이 아니고, 유리창 개폐장치도 수동인, 아주 오래된 차다.

덴파사르 시내에서의 운전도 그리 익숙해 보이진 않는다.

뭔가 금전적인 그늘이 느껴진다.

옛날에 했던 일 덕에, 그런 쪽으로는 촉이 빠르다.

 

어떤 곳에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돈도 모이지만, 그걸로 그 곳 사람들이 나아지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모이는 돈을 보고, 그 돈을 갖고자 더 많은 돈이 들어오고, (당분간!) 비슷한 가격에 번듯한 곳들이 생긴다.

(로까하우스와 같은 가격에 시설을 더 좋고, 위치도 썩 나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영세한 곳들은 도태되어 간다.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이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자본주의라는 마술의 신봉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그 '도태'라는 고상한 단어로 표현되는 현실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참한 것인지.

도태된 입장이면서도 그런 현상이 옳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자신보다 더 비참한 약자를 보고 비웃고, 깔아뭉개고, 동정하고, 안도하는 역겨운 인간들.

 

어쨋든 로까하우스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곳에서 난 이방인일 뿐이다.

 

그렇게 발리를 떠나,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