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인도네시아의 데모

명랑쾌활 2012. 1. 28. 11:04

2012년 1월 19일 오후 2시 경 서부 찌까랑(Cikarang Barat) 진출입로 부근 고속도로 CCTV (사진출처 : 인도웹)

역시나 데모가 터졌다.
인니는 매년 최저임금을 연말에 발표하여 1월부터 적용하기 때문에, 그 즈음에 그에 관한 데모가 빈번하다.
최저임금은 지방정부-노조연합-사측연합이 매년 후반기에 죤나게 협상...(뒤로는 로비도 ㅋㅋ)해서 결정한다.

이번 찌까랑 지역 데모는 지방정부가 결정한 최저임금에 노조연합 측이 항의하고, 이에 지방정부가 노조측 요구를 받아들여 다시 상승시킨 것에 사측연합이 불복하고 법원에 제소하면서 발생했다.
명백한 지방정부의 잘못이지만 만만한게 사업체니 항의 대상이 사측연합인 것은 뭐 그럴 수도 있겠다만, 왜 데모로 고속도로를 폐쇄하는지 모르겠다. -_-;;
이건 사업장 폐쇄를 넘어 국가 기간망에 대한 사보타주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일반 도로 점거하는 것과는 파괴력이 다르다.

서부 찌까랑 톨게이트는 삼성과 LG가 있는 자바베카 공단과 현대 공단으로 이어지는 출입구다.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주택단지 및 상가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내 숙소도 서부 찌까랑에 있다.)

인니사람들의 군중심리는 매우 위험하다.
평소에는 얌전한데 어떤 꼬투리를 잡아 군중심리가 폭팔하는 순간에는 잔인해진다.
날치기와 가방 잡고 실랑이할 때는 바로 앞에서도 그냥 멀뚱멀뚱 보고 있다가, 누군가 하나가 날치기를 제압하면, 그 때부터 갑자가 우루루 달려들어 밟고 때려 초주검을 만드는 나라다.
(직접 본건 아니고 들은 얘기임. 경찰 오면 날치기가 경찰 바짓가랑이 붙잡고 살려달라고 한다나.)
많은 수가 모였다 하면 기물파괴는 기본이고, 최소한의 법이나 질서, 명분 따위는 사라진다.
괜히 어줍잖게 ' 너네가 인간적으로 이럴 수 있냐. 우리는 상관 없잔냐.' 라고 따졌다가 목숨이 위험해 진다고 한다.
(수 틀리면 휘발유를 훽 끼얹고서 불을 붙였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도 있다.)

이번 데모도 방화나 약탈까지는 아니지만, 법이나 질서, 명분 무시하는 행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일단 자카르타-반둥 고속도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10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인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냐 하면 그건 아니다.
파업과 상관없는 회사, 노조연합에 가입도 안했고 노조도 없는 회사에도 문 때려 부수고 난입해서 다 끌고 나갔다고 한다.
(교민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니, 야간 근무조도 일을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경찰은 절대로 질서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뒤로 빠져서 관망만 한다.
(하긴, 경찰도 나서면 맞아 죽을 거다.)
회사 관리자가 가서 사정해도 '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그냥 내버려 둔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에서 데모는 천재지변에 가깝다.
우리 회사만 잘 한다고 피해를 안보는 것도 아니고, 공권력이 보호해 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직접 맞닥뜨려 본 적이 없어서, 직접 겪으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모르겠다.
일단은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이 나라의 데모가 이런 식이라면, 일단 받아 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가진 잣대로 옳고 그름을 따져 제단하는 것은 나중에 생각하자.
데모가 끝나 정체가 풀렸기를 바라며, 밤 7시 즈음 느지감치 회사를 나서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 2012.01.28(토) 추가사항

1월 28일자 (토) 일간지에 1면 탑으로 실린 찌까랑 지역 데모 기사

그제(목) 맛배기로 오후쯤에 잠깐 고속도로를 폐쇄하더니, 어제(금) 제대로 하루 종일 고속도로를 폐쇄했다.
어제는 사측연합이 제소한 최저임금 무효소송의 재판이 있던 날이다.
우히 회사 총무는 출근하다 저거에 딱 걸려서 출근 못할거 같다고 아침에 전화 왔는데, 오후5시가 넘어서도 그대로 갖혀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퇴근해봐야 움직일 수가 없으니 밤 8시에 퇴근했다.
(데모는 헤까닥 돌기 않는 이상 오후 6시에 끝난다.)
그래도 아직 정체의 여파가 남았는지 숙소에 평소보다 40여 분 늦게 도착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니인들은 어떤 명분이 합리화 되면 사회 법규나 공중 도덕, 타인에 대한 피해를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머라삐 화산이 폭팔하여 여기저기 모금활동이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어떤 대학교 앞을 지나는데 그 대학 학생들이 편도 3차선 길의 한 차선을 막아 차량 흐름을 느리게 만들고는, 두 개 차선을 느릿느릿 지나가는 차량에 모금통을 내밀던 일을 겪었었다.
뭐 그 돈이 어느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은 좋다.
하지만 차선 막고 유도봉으로 차량을 통제하던 대학생놈이나, 돈통을 내밀던 대학생놈의 그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긍지로 반짝이는 눈빛이 너무 역겨웠다. ㅋ...
자신의 정의를 타인에 강요하는 행위는 대게 반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이번 데모 역시 그렇다.
어떤 비장함이나 진지함, 절박함, 미안함 따위는 없고, 당연히 막을 거 막는거고 이건 다 사측연합 탓이라는듯 히히덕 거리는 시위자들을 보면,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이제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자를 관리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래봤자 관리노동자지만...), 노동자였을 때의 마음을 잊고 싶지는 않다.
집회 결사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집회결사는 문제를 널리 알리고 단결력을 보이기 위한 것이지, 우회로도 없는 유일한 고속도로를 폐쇄시키는 짓 따위는 좀 아니지 않나.
이건 국가 기간망에 대한 테러 협박일 뿐이다.

이에 비한다면 관련 사업장에서 파업을 하는 한국의 노조활동을 과격하다고 욕할게 아니다.
조중동이 한국 노조가 강성이라 투자를 꺼린다는 유언비어 개소리를 하지만, 인니를 봐라.
적어도 한국은 자기네 지역 최저임금 문제있다고 경부고속도로 막는 짓은 안하지 않나?
그래도 인니 역시 외국자본 투자는 잘 받고 있다.

...특근이 있어 토요일인데 출근했다.
데모도 없고 평소보다 회사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토, 일요일엔 데모 안한다. 쉬어야 하니까.
오로지 자기네 일해야 할 시간에만 데모를 하는 거다.
그래, 맞다.
어떤 비장함이나 자기 희생 없이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려고 하니, 그게 받아들여지겠나.
그러니 결국 협박을 해야 하겠지.
(깡패는 부지런하지 않다. 새벽부터 나와서 밤 늦게까지 삥 뜯는 깡패는 없다.)
한국 관점으로 보면 참 약삽하고 치졸한 행동이지만, 뭐 어떠랴. 여긴 이런 곳인데.
이런 일이 우리 회사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 잘 해야겠지.
우리 회사 애들도 어차피 여차하면 그럴 녀석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직접 겪은 적은 없으니 잘 지내고 있지만, 실제로 겪게 된다면 어떻게 이 녀석들을 보살피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꼴 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