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인니어 공부(Pelajaran)

BIP-1 과정을 마치며...

명랑쾌활 2009. 12. 16. 20:47
아베쩨데...도 모르고 와서 만으로 약간 모자라는 5개월, 이제 벙어리는 겨우 면하고 덜 덜어진 놈 정도는 된 거 같다.
처음 수업 들어갔을 때, 같은 반 사람들의 수준에 뜨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지인 교수님은 당연히 인니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나마 유치원생에게 얘기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했으나 내게는 그저 외계어로 들릴 뿐이었다.
이거 해보라, 저거 해봐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도 알아 듣고 행동한다. 난 그저 다른 사람들 하는 거 곁눈질로 눈치껏 따라하는게 전부였다.
어느 정도 빠르게 얘기해도 사람들이 알아듣는듯 하자 교수님의 말은 점점 빨라졌고, 급기야 총 3시간의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외계어는 태양계를 벗어나 게자리 성운에 다다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초급 과정을 듣는지 이해가 안갈 수준의 사람들 몇몇이 왜그리 원망스럽던지...

다른 수가 없었다.
공부의 왕도인 예습과 복습, 수업 집중 밖에는.
예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 내내 완전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복습을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낡고 용량초과인 머릿속에 남아 나질 않아, 같은 테마로 연계되는 다른 수업에 심한 지장을 초래했다.
거짓말 안보태고 1달 반 동안은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고3 때 그닥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ㅋㅋ... 왠지 초라해지는 기분? -_-;;)

다들 기본적인 실력은 있는지라 다국적 외국인들 끼리 제법 인니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그에 끼어들 수 없었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정도 실력인 사람들이 수업 중 조를 짜서 과제를 진행할 때, 나와 같은 조가 돼서 대화를 할 때는 왠지 말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얘기하면 내가 못알아 들으니 최대한 쉬운 단어를 생각해서 단순하게 얘기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못해서 답답한 것보다 더 괴로왔다.
그런 일상들이 자칫 해이해 질 수도 있는 마음에 자극제가 되었다.

아마 끝도 없이 계속 그렇게 생활했으면 결국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1달 반 쯤 지나니, ' 어느 순간' 부터 갑자기 수업이 쫓아갈만 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예습을 하지 않아도 수업은 무난히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에 따라 잡느라 바짝 버릇을 들여 놓은 덕분에, 널널해진 이후로도 복습만큼은 빼먹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아무도 통제할 사람이 없는 혼자의 생활 속에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부수적으로, 범생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착실하고 곧은 사람들과만 친분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어학연수는 그 나라를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본의 아닌 굴욕과 자극으로 나를 여기까지 기어올라 오게 한, 중급 수준 실력의 초급 수강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 남보다 나은건 몰라도 남보다 못한 건 절대로 못참는 심보를 자극시켜준 그들 덕분이다.


* 써놓고 보니 이젠 인니어 무지 잘하는 사람같아 보이는데, 절대 아니다. 그냥 학교 수업용 인니어나 조금 익숙해졌을뿐, 현지인들의 생활언어는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고작 5개월도 안됐는데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