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공급자 위주의 인니 서비스 문화] 12. 거스름돈

명랑쾌활 2020. 12. 21. 09:53

한국은 가게나 식당에서 값을 지불하는데 거스름돈이 없으면 미안해 합니다.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잔돈도 준비하지 않은 건 장사 마인드가 덜 된 거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백 원 짜리 물건 사면서 고액권 내미는 것도 실례되는 일입니다.

장사를 위해 준비한 잔돈을 쓸어감으로써 장사를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되니까요.

잔돈 준비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업종은 택시 정도일 겁니다. (택시 운전사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거 같아요. 우리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룰이라도 있는 건지... ㅋㅋ)


10여 년 산 걸로 그 나라의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 섣부른 단정은 삼가하는 편입니다만, 이 점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니인들은 '장사하는 사람이 잔돈을 준비하지 않는 건 실례다'라는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잔돈이란 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만2천 루피아 짜리 나시 고렝과 5천 루피아 짜리 음료수를 샀는데 3천 루피아 거스름돈이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손님이 준 잔돈으로 있으면 거슬러 주고, 없으면 손님에게 계산에 맞춘 돈 없냐고 묻는 데 스스럼 없습니다.

빈말로라도 '혹시 죄송하지만...'이라고 할 만도 하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잔돈 없는 게 전혀 미안함을 느낄 일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거지요.


오젝    <사진 출처 : https://www.floresa.co/>


매장이 아닌 경우는 더 심합니다.

거스름돈이 있는데도 없는 척하거나 꾸물 거리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젝 Ojek (오토바이 택시) 은 타기 전에 흥정을 하는 시스템이니, 1만, 1만5천 2만... 식으로 요금이 딱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거스름돈 시원하게 주는 걸 못봤습니다.

3만 루피아로 흥정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5만 루피아 짜리를 내밀었는데 2만 루피아 거스름돈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몇 번 겪어 봤습니다.

딱 맞춰 주면 군말 없이 받지만, 그보다 큰 단위의 돈을 주면 팁으로 뜯으려는 눈치를 보입니다.


요즘 주차 요금이 첫 1시간이 4천 루피아인데, 5천 루피아를 내밀면 잔돈이 없다며 4천 루피아 없냐고 묻는 경우도 서너 번에 한 번 정도 겪습니다.

기본 요금이 4천 루피아인데 1천 루피아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는 거죠.


피자 가격이 8만7천 루피아인데 배달원이 거스름돈 3천 루피아가 없는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인 식당의 경우 교육을 단단히 시켰는지 배달 오면서 거스름돈을 준비해 오는 편입니다. 

가령 가격이 12만7천 루피아면 7만3천 루피아를 영수증과 함께 챙겨 오는 식이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일 한지 좀 되어 닳고 닳은 직원은 꾸물거리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배달 직원이 거스름돈을 내밀었는데 구매자가 거절하며 팁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팁이라고 하길 기다리면서 꾸물거리는 거죠. ㅋㅋ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마침 옆방 에어컨을 청소하고 가스를 충전하는데 35만 루피아가 나왔습니다.

40만 루피아를 주면서 거스름돈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네요.

2만 루피아 짜리 1장, 1만 루피아 짜리 2장, 5천 루피아 짜리 2장 긁어 모아 지불했습니다. =_=



이런 일이 일상이다 보니 늘 잔돈을 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특히나 외국인이라 더 그래요.

대형 마트는 잔돈이 늘 준비가 되어 있고, 편의점 체인의 경우도 대체로 준비되어 있어서, 그런 곳에서 계산할 때 잔돈이 있어도 일부러 큰 돈으로 지불해서 챙겨 둡니다.

덕분에 지갑만 쓸 데 없이 두툼합니다. ㅎㅎ

한국은 주머니 불편한 게 싫어서 잔돈으로 계산하는데, 이 곳은 정반대인 거죠.

그리고, 소비자가 알아서 잔돈을 준비하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는 악순환은 점점 심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