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요즘 시국, 찌까랑 쇼핑몰 풍경

명랑쾌활 2020. 3. 30. 09:13

인니는 한국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국가이며,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을 때 막지 않은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 딱히 지역 폐쇄를 하진 않고, 한국을 벤치마킹 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연이어 발표하는 정책들을 보건데, 경제적 악역향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기조를 정한 것 같습니다.


사견입니다만, 1998년 아시아 외환 위기(IMF 사태) -> 경기 악화 -> 폭동 -> 수하르토 독재 정권 전복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에 경제 방어를 최우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인니는 인명에 대해 (한국에 비해) 경시하는 풍조가 있으며, 반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편입니다.

가령 무슨무슨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경우는 본 적 없지만, 휘발유값에 적용하는 서민 보조금 50% 깎는다고 하면 대번에 시위로 들썩들썩 하는 식입니다.


자카르타 동쪽 리뽀 찌까랑 Lippo Cikarang 은 서울에 비교하자면 남양주나 하남 정도 위치에 있는, 한국교민 밀집 지역 중 하나입니다.

한국인 외 일본인과 중국인, 인도인도 많이 살고 있는 다국적 지역이지요.

이 지역도 딱히 통제를 하진 않습니다.

다들 알아서 자제하기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평소 대비 30% 정도로 확 줄었습니다만, 분위기는 평온합니다.


달걀을 좀 사러 대형 마트에 갔습니다.

작은 상점들에서는 다 떨어져서 구하기 어렵거든요.

사재기 때문이 아니라 유통이 약간 원활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원래도 인니는 유통망이 한국에 비해 취약합니다.)

상대적으로 대형 마트는 유통망이 잘 구축되어 있어 큰 영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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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전면

지자체의 휴업 권유에 따라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아 컴컴하다.

정문을 폐쇄했기 때문에, 마트에 가려는 손님들은 건물 뒤편 후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쇼핑몰 내부 1층

강제 폐쇄가 아니기 때문에 영업을 하는 상점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옷가게나 전자제품 매장 등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물품들을 파는 업소들은 거의 대부분 닫았다.


쇼핑몰 내부 2층

차단선을 설치하긴 했지만 출입 금지는 아니고, 용무 없는 사람들은 출입을 자제하라는 정도 의미다.

차단선 너머 안쪽에 ATM 기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 용무 없이 차단선 너머 지역에서 알짱알짱 거리면 경비원에게 도둑으로 의심 받게 된다는 뜻이다.


쇼핑몰은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상품들은 흘러 넘친다.

사재기 및 4월 중순 경 시작하는 뿌아사 Puasa (금식) 대비로 재고를 확보한 모양인데, 머쓱하게 됐다.

달걀도 산처럼 쌓여있다.

작은 상점들에 납풍하지 않은 달걀들을 다 여기로 보냈나 보다.

하지만 손님들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평상시라면 일주일 중 토요일 오후가 가장 미어터지는 시간대라 사진 앵글 안에 못해도 50명 정도는 찍혔을텐데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파 가격은 심각하다.

킬로당 1만4천원 정도로 평소 대비 10배 이상 올랐다.

달걀보다 약간 큰 사이즈의 양파 한 개가 1천원이다.

이 역시 사재기 때문이 아니라 유통, 정확히는 수입 문제다.

인니 토양이 양파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 전체 소비량의 85%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해서 그렇다.


양파는 일행이 몰래 사다가 쇼핑 카트에 슬쩍 넣은 거다.

나라면 저렇게 비싼 양파 사지가 벌벌 떨려서 못산다.

양파 안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파로 그럭저럭 대체할 수 있다. (파는 인니에서도 잘 자라서 가격 변동 없음)

누가누가 더 가난했었나 배틀을 하면 제법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제법 궁핍한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없어도 큰 일 안나는 것들에 대한 단념이 어렵지 않은 나와는 달리 일행은 먹고 싶은 건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 성격이다.

그나마 양심껏 가장 작은 걸로 샀으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ㅋㅋ


계산대에 붙어 있는 현금 사용 자제 안내문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자화폐인 오포 OVO 사용을 권장하는 수작을 끼워 넣은 게 웃긴다.

리뽀 찌까랑은 인니 부동산 재벌인 리뽀 그룹이 조성한 도시 구역이고, 리뽀 그룹이 신사업으로 밀고 있는게 전자화폐 OVO 다. (https://choon666.tistory.com/1030)

리뽀 주택단지 거주민들에게 코로나 사태를 핑계로 관리비 납부를 OVO를 통해 하라고 권유하는 이메일을 보내질 않나, 아주 가관이다.

한국 같으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행태지만, 인니는 고객 불만을 표출할 통로가 없어서 조용히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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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도 사회 분위기는 차분한 편입니다만, 한국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높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정부 지침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에 비해, 인니는 뭐랄까... 낙천적이고 체념적인 심리로 인해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 같습니다.

함께 단결해서 사태를 싸워 이겨내자는 태도와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 시키는대로 따른다는 태도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작금의 한국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일익을 담당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숟가락 얹어서 으쓱 거리는 유치한 성격은 아닙니다만, 근래엔 모국에 대해 자랑스러운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오네요.

해외 교민들 한국 들어오지 말라는 국내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기분 잡치기도 하지만요. ㅋㅋ


한 가지 또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찌까랑에는 한인 마트와 일본 마트가 있는데, 한인 마트는 상품들이 동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는 반면, 일본 마트는 매대 곳곳이 텅텅 비어있는 광경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일본 본국도 올림픽 연기 결정 발표 다음날 일본 확진자 급증하자마자 사재기로 난리가 아니라고 하지요.

경제 지표 뿐 만 아니라 선진적 국민성도 이미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베가 앞으로 10년 정도만 더 집권했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 집권하면 전쟁 일으킬 위험이 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더 나라 후퇴시켰으면 좋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