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V

[공급자 위주의 인니 서비스 문화] 1. 고객 불이익 위주의 차별 마케팅

명랑쾌활 2019. 11. 15. 10:30

한국은 인니에 비해 인건비가 매우 비싸지만, 주차장 출구 부스에서 바로 주차 요금을 지불하고 나가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인니의 어느 쇼핑몰은 주차장 출구 부스의 인력을 철수 시키고 무인 통과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인건비가 싸고 노동력 효율이 낮아서 매장 규모 대비 종업원 수가 한국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인니의 현실과 다른 현상이지요.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고객 편의나 경영 합리화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의 '카카오 페이' 같은, 인니의 전자결제 시스템인 OVO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차별 마케팅 전략' 때문입니다.


OVO는 인니의 부동산 대기업 LIPPO에서 출시한 새로운 돈놀이 전자결제 시스템입니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찌까랑 Cikarang 지역도 정식 지명은 리뽀 찌까랑 LIPPO CIKARANG 으로, LIPPO 그룹이 개발한 신도시입니다.

그 때문에 찌까랑의 대형 쇼핑몰들은 전부 LIPPO 그룹 계열입니다.

리뽀 찌까랑의 가장 유명한 쇼핑몰인 몰 리뽀 찌까랑 Mall Lippo Cikarang 역시 리뽀 그룹 계열입니다.


OVO 마케팅이 한창이던 시기에 갑자기 주차장 출구 부스를 무인 시스템으로 바꿔 버렸더군요.

운전자가 주차장 출구의 인식기에 주차 영수증에 찍힌 바코드를 찍으면 차단봉이 열리는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철저히 OVO 사용자를 위한다는 겁니다.

OVO 사용자는 스마트폰의 OVO 앱에 나오는 바코드를 찍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OVO 미사용자는 쇼핑몰 정문 로비 한구석에 있는 부스나,


주차장쪽 후문 구석에 있는 부스에 가서 주차비를 계산하고 바코드가 찍힌 영수증을 받아야 합니다.


혹시 깜빡하고 그냥 주차장 출구로 갔다가는 뒷차들 줄줄이 서있는데 후진하느라 진땀을 빼야 합니다.

저 시스템 도입한 초기 몇 달 간은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져서 난리도 아니었고, 지금도 가끔씩 처음 온 사람들이 그런 봉변을 당합니다.


리뽀 찌까랑의 또 다른 리뽀 그룹 계열 쇼핑몰인 시티 워크 City Walk 도 마찬가지입니다.


얄궂게도 주차비를 계산하는 부스 옆에 떡하니 OVO 가입 부스가 있습니다.

불편하면 OVO 가입하라는 뜻을 노골적으로 전하는 거지요.

이런 전략 덕분인지 인니의 전자 결제 시스템들 중 OVO의 점유율이 가장 높습니다.


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희안한 일입니다.

보통 '서비스 = 고객 편의'가 기본 개념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새로운 서비스를 개시할 경우,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차별화 마케팅으로 기존 서비스에 비해 더 큰 편리를 제공하는 '우대 정책'을 쓰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 서비스는 더 발전적이고 더 편리하다' 뭐 이런 거죠.

하다 못해 한국의 은행들이 직원 감축을 위해 ATM 기기를 대거 투입하고 직원 창구를 대폭 줄일 때에도, 비록 눈 가리고 아웅 식이지만 적어도 'ATM 기기를 투입하면 단위 면적당 업무 처리 창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보려는 대다수의 고객들은 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웠습니다.

(덕분에 고객들은 ATM 기기 사용법을 공부해야 했지요. 실수로 인한 사고 역시 본인이 책임지게 됐고요.)

그런데, 위의 OVO 주차비 결제 시스템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기존 서비스의 편의성 수준을 떨어뜨려 미가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가입을 유도하는 차별화 마케팅을 썼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차별'입니다.)

그렇다고 가입자의 편의성이 더 올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예요.

기껏해야 잔돈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정도입니다. (사실 큰 돈 밖에 없다 하더라도 출구 부스에 바꿔줄 잔돈만 있으면 군말 없이 바꿔 줍니다.)

바코드 찍겠다고 스마트폰 앱 켜서 바코드 화면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도 그리 편리하진 않지요.


인니에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인니는 한국과 달리 판매자와 소비자가 거의 동등한데 판매자가 약간 갑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팔 물건이 떨어져도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물건을 사러 왔는데 없어서 고객이 헛걸음하게 됐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없는 게 내 탓은 아니잖아?' 뭐 이런 거죠. (사실은 지들 탓 맞습니다. 재고 관리를 게을리 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판매자가 (약간) 갑의 위치다 보니, 고객의 불편에 대해 둔감한 편입니다.

업소의 운영 방침으로 인해 다소 불편하더라도 고객이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못받아 들이겠으면 오지 마!)

위의 OVO 차별화 시스템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에는 그나마 있던 비가입자 주차비 계산 부스 두 곳 중 후문 쪽 부스를 폐쇄했더군요.

어느 정도 가입자가 올라가 가입 증가율이 떨어지니 쥐어짜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전 고집스럽게 OVO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ㅋㅋ

더 편리하기 때문이라면 제 선택이나, 불편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마치 굴복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건 큰 이유는 아닙니다.

필요하면 하는 거고, 해야 하면 하는 거지 거기에 굴복이니 뭐니 감정 섞어서 미련 떨 건 없지요.

그보다는, 전자화폐는 소비를 둔감하게 만드는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도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인정하는 교환 매개체일 뿐 실은 허상이지만, 적어도 실물 화폐는 만지고 볼 수 있는 실체라도 있어요.

그래서 지갑에서 꺼내서 타인에게 넘길 때 '대가를 지불한다'는 느낌은 있지요.

그런데, 전자화폐는 말 그대로 허상의 숫자예요.

나 자신이 소비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지 않고, 마치 공짜로 제공 받는다는 착각이 들기까지도 합니다.

그리고 소비 행위의 최면에서 깨어나서 현자 타임이 오면 후회를 하게 되고요.

관념도 주의를 기울이면 인식할 수 있지만, 자신의 행위를 자각하려면 아무래도 실물이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실물 화폐로 계산하는 편이지요.


음... 전자 화폐에 관한 얘기는 따로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은 한국과는 다른 인니 서비스 문화의 단면을 소개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