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애초에 느낌의 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 겁니다

명랑쾌활 2020. 2. 12. 10:20


"넌 왜 진득하게 공부를 못하니. 공부 잘하는 애들은 뭐 좋아서 공부하니? 다들 놀고 싶은 거 참고 하는 거야."

공부 잘하는 애나 못하는 애나 공부 하기 싫기는 똑같은데, 못하는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예요.

애초에 공부가 싫다고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겁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성실하지가 못해. 누군 야근 특근 하고 싶어서 하나? 누군 퇴근하고 놀기 싫어서 일하냐고. 싫어도 일이니까 참고 하는 거지."

젊은 것들이나 늙은 것들이나 야근 특근 하기 싫은 정도가 똑같은데, 젊은 것들은 불성실해서 그런 거 아니예요.

퇴근해서 놀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데, 유독 젊은 것들만 그걸 못참는 게 아니예요.

애초에 야근 특근 싫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놀고 싶은 욕망의 강도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겁니다.


"가만히 좀 있어. 누군 멍청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너만 잘났냐? 불이익이 좀 있어도 받아 들일 줄 알아야지."

순응하는 사람이나 반항하는 사람이나 불합리함을 느끼는 정도가 똑같은데, 유독 반항하는 사람이 자기만 잘나서 그런 거 아니예요.

애초에 불합리함을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겁니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타는 게 누구나 똑같이 무서운데 어쩐 사람은 솔직하게 무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꾹 참고 억지로 신나는 척 하며 타는 거 아닙니다.

누구나 똑같이 매운데 어떤 사람은 엄살이 심해서 매운 거 못먹고, 어떤 사람은 꾹 참고 맛있는 척 먹는 게 아니라는 거 다들 아실 겁니다.

사람마다 외모, 성격, 시력 같은 감각이 각자 다르다면, 외부의 자극에 느끼는 정도도 각자 다 다른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롤러코스터 못탄다고 하거나 매운 음식 잘 못먹는다고 하면, '아, 너는 그렇구나'하고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누군 안무서운 줄 아냐'라거나 '누군 안매운 줄 아냐'며 윽박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게 비정상이지요.

그렇게 사람마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수긍한다면, 공부나 야근, 부조리를 참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도 외부 자극의 일종으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기준이 같아야 비교를 할 수 있고, 우열을 가릴 수 있습니다.

애초에 기준이 다른 걸 비교하며 못한다고 비난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해야만 하는 걸 강요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람마다 그에 대해 느끼는 자극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도 다를 수 있다는 걸 헤아리는 것이 사려 깊은 태도입니다.

근성이나 참을성, 혹은 성실성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척도로 상대를 낙인 찍는 태도는 마치, 쌍팔년도 축구 경기에서 정신력 따지던 거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