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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한 외국인 교수 9인 인터뷰

명랑쾌활 2009. 8. 29. 23:03

 

시사IN | 시사 | 입력 2009.08.20 10:42 | 수정 2009.08.20 11:07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역사학)

"촛불시위가 바로 민주주의다"

도널드 베이커 교수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한국연구소 소장이자 캐나다 한국학협회 회장이다. 캐나다 국경 근처 작은 마을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백발이 성성했다.

1년에 서너 번 한국을 방문한다는 그는 한국 역사에 조예가 깊어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책도 집필했고, 캐나다에서 대학생 200여 명에게 한국학을 가르친다.




"시국선언문에 서명한 이유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슬펐기 때문이다. 서명하기 전에 선언문의 모든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1961년 광주 동신중학교 영어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앰네스티 직원으로 광주를 방문했던 나는 친한 한국인 친구를 그 사건으로 잃었다. 한국 남자가 우는 모습을 광주에서 처음 봤다. 그리고 한국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됐다. 이후 한국사 연구자가 된 뒤 40여 년을 한국과 같이 했다. 1989년 캐나다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특강을 시작했다.

광주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광주를 회상할 때마다 베이커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입술을 꼭 물고 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목격자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독재를 보고 슬퍼했고 지난 10년간 눈부시게 발전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며 행복했다. 인구 1억이 넘어가는 인도네시아도 한국 같은 민주주의를 꽃피운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역행한 한국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있다. 우리 교수들도 이런 시국선언을 지금 하게 될 줄 예측하지 못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꽃 핀 10년 시간을 보며 누가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겠는가.

한국에서 일어났던 촛불시위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힘으로 누를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는 그런 시위를 허용해야 한다. 시청 앞의 전경들을 보니 그 옛날 광주에서 보았던 무장한 군인들이 플래시백처럼 떠올랐다.

현재 한국 정부가 국민과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정부가 국민에게 '이것을 해라'고만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엇을 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민주주의 정부다. '이것을 해라'고 하는데 국민과 소통할 수 있나? '무엇을 할까요?'라고 할 때 국민도 비로소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이것이 소통이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언론 통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언론은 정부와 아주 작은 협조를 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역사 차원에서 보면 아주 위험한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성균관의 유림은 왕에게 반대 상소를 올리곤 했다. 같은 시기에 미국에도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런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든 자본이든 누군가가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지금은 힘든 시기이지만 나는 한국 언론이 바로설 거라고 믿는다. 과거에도 한국 언론은 숱한 위기를 극복했다. 1974년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가 문 닫았던 일이나 전두환 시절 언론 통폐합 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 언론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 시사IN > 창간도 아주 좋은 신호 중의 하나다."

데니스 하트 (피츠버그 대학·정치학과)
"한국 교사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데니스 하트 교수는 한국의 정치, 문화, 민족주의와 정체성 문제 등을 연구한다.

"시국선언문 내용이 교수들에게 전달되고 서명되기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선언문에 서명을 한 사람이 모든 문장에 다 공감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북미 지역의 더 많은 학자가 서명에 동참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명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 저항하는 한국 교사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신념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시국선언에 서명한 북미 지역 학자들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대학까지 손을 뻗쳐 나에게 압력을 넣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선언서에 서명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에 맞선 교사들이야 말로 훨씬 더 용기 있는 분들이다.

촛불집회 같은 널리 알려진 저항과 민주적인 행동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한국인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인은 일본 통치 아래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그리고 현재 이명박 정권 등을 거치며 수십 년간 압제에 대한 강력하고 확고한 저항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자원은 정부가 아닌 바로 한국 국민이다."

마이클 셰러던 (워싱턴 대학·사회복지학)
"한국인 존경해 시국선언 참여"


마이클 셰러던 교수는 한국 관련 학문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유는 우연히 어느 한국인 동료에게 이 성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그들의 용기를 존경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크리스티나 간달바르 (채프먼 대학·현대일본사)
"계속 투쟁해 권리 지키기를…"


크리스티나 간달바르 교수는 현대 동아시아 역사와 현대 일본 역사를 가르친다.




"한국이 독재 국가에서 민주 정부로 변화해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게 감명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번 성취됐다고 그냥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싸워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며 한국 국민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계속 싸워주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부의 불평등이 민주주의 퇴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소수 부유층이 정부를 독점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이는 금권주의이다. 언론 자유는 매우 중요하다. 언론이 바르지 않으면 대중은 정부와 사회, 세계 이슈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크 크리어 (앨라배마 대학·국제정치학)
"부의 불균형 바로잡아야 한다"


마크 크리어 교수는 노동교육연구소 조교수로 학생과 조합원에게 정치 경제, 노동관계론, 집단 거래, 노동법을 강의한다.




"처음 이메일로 성명서를 읽어봤는데, 잘 쓰였고 한국 민주주의 상황을 집약해 매우 적절히 표현했다고 판단했다. 성명서 서명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수많은 이가 비정상적인 정부에 도전하다 목숨을 걸기도 하고 자신의 이력에 끼치는 위험을 감수한다.

나는 촛불시위가 시작된 초기 한국에 있었는데 매일 수많은 시민이 밤마다 나와,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확연한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에 항의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촛불집회에 관한 기억이 성명서에 서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만들었다.

한국 상황은 매우 실망스럽다. 1990년 미군 복무 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 노태우 정권 정책에 대항해 시위하는 이들을 봤다. 시위대 수천명이 시청 인근에 모여 전경의 공격을 받던 게 기억난다. 당시 경찰은 최루탄을 발포하고 몽둥이로 공격했다. 시위대는 화염병과 가구 조각을 태우며 맞섰다. 당시 내가 만난 대다수 한국인은 자신들의 나라가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것에 분노했고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지하는 미국에 화를 냈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은 나아졌다고 느꼈다. 정부의 정책은 유연해졌고 일반 시민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위대와 경찰이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맞서는 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뽑힌 이후 다시 정부 정책이 시위대를 위협하고 미국산 쇠고기 협정처럼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로 바뀐 것을 보게 됐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경찰의 폭력이나 검찰의 소환 등 권력 남용이 늘어나고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부의 불균형은 아무리 순수한 민주제라 하더라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문제는 표면상 공정한 선거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도 당면한 과제다.

외부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가혹하게 국민을 탄압하고 외면하는 정부에 맞서 싸우는 한국인들의 노력에 감명받았다. 시위, 촛불집회, 파업 그 어느 것 하나도 국제 사회에서 그냥 보아 넘기는 일은 없다. 내 제자 다수는 노조원이기도 한데 한국 노동조합의 행동력에 대단한 감명을 받는다.

나는 1980년대부터 한국을 지켜봤다. 그렇게 오랜 기간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해 희생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 권력이 있을지라도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투쟁할 것이고 결국에는 완전하고 공정한 몫을 받아내게 될 것이다."

마이클 페티드 (뉴욕 주립대학·한국학)
"독재정권 시대로 회귀하려는가"


한국학연구소 마이클 페티드 부교수는 2003년 이후 뉴욕 주립대학에서 한국 문학과 문화, 역사를 가르친다. 하와이 대학 동아시아 어문학부에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연구소 이메일 리스트에서 성명서 소식을 듣고 서명에 참여하게 됐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 와서 전두환 정권 아래 몇 년을 지냈다. 한국인에게 가혹한 시절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런 비열한 지도자가 다시는 나오지 말기를 바랐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에서 진정 기쁨을 느꼈고 1990년대 한국이 독재자 지배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2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대단한 업적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이르는 여정은 마치 석기 시대에서 현대 사회로 가는 것과 같았다. 오늘날 한국은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부에서 보여주던 개방과 정의가 지속되지 않고 있다고들 한다. 전두환이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 정부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범죄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전의 독재정권 시대로 회귀하려 하는 위험스러운 경향을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많은 걱정 가운데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현 정부가 역사를 '되쓰려'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 이전 정부가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것을 없애려 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 이전 대통령들이 이뤄낸 민주주의의 위대한 업적이 없었더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선출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1980년대 당시 신뢰할 만한 언론은 한겨레 신문 하나밖에 없었다. 요즘 언론인의 고결성을 훼손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위는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일어날 현상은 아니다."

렘세이 리엠 (보스턴 대학·심리학)
"노동자·농민 단체 억압받아 걱정"


렘세이 리엠 교수는 인권과 정치적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를 하며 한국학협회 회원이다.

"1980년대 수많은 이들의 희생에서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훌륭한 프로젝트가 요즘 흔들리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진정한 민주사회를 이루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 예로 대한민국을 거론한다.

언제나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선봉에 서왔던 노동자·농민 단체가 오늘날 억압받고 있다. 여기에는 화이트칼라 중산층도 포함되어 있다.

통일운동 단체나 인권운동 단체가 억압당하는 것도 걱정된다. 한국의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 등의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요즘 이런 기관의 임무가 손상되는 것 같아 두렵다. 정직하게 과거를 돌아볼 의지를 갖는 것보다 더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웬트워스 대학·사회과학)
"쇠고기 협상은 조공 바치는 것"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전남대 사회학과 방문교수이기도 하며 저서로 < 한국의 민주주의 > 가 있다.

"MBC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던 한 PD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검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은 미디어에 압력을 넣을 자유가 있지만, 일반 시민이 그렇게 하면 범죄가 된다. 조·중·동 불매운동을 벌이던 시민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출국금지 등 고초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이 중국보다 일본으로 향하는 모습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쇠고기 협상은 중국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 같다.

MB는 미국과 세계를 망친 조지 부시 정책을 좇았다. 부유층 세금을 줄이고, 공공 부문을 민영화하려 한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금융기관의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 그의 별명인 불도저처럼 그는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시사IN 편집국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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