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죽음 4

소유보다 일상

잠을 청하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생각해본다. 이대로로 잠들고, 다시는 깨지 않는다고. 내 책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통징 잔고도 생각해보고, 박스에 보관하지만 몇 년 간 거의 열어보지도 않은 물건들은 뭐였는지, 내 옷들은 어떻게 될지, 하던 일은 어떻게 될지. 처음엔 생각을 오래 이어가기 괴롭다. 시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현실적으로 인지하는 걸 외면한다. 괜찮다. 정말 오늘일리는 없다. 내일이라면 혹시 몰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제법 오래 생각하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한 것들,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 거의 대부분이 별 거 아니, 그보다는 그냥 흔하디 흔한 내일의 평범한 일상이 경이롭다는 사실을. 내가 사회에서 맡았던 역할들 중 나 아니면 안되는 일 따위는 없고, 그보다는 누군가의 자식..

단상 2024.01.05

그 두 사람 이야기의 끝

https://choon666.tistory.com/966 에서 4년의 터울을 건너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선배형이 갑작스럽게 귀국했다. 이미 귀국하고 나서 연락을 해와서 알게 된 거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2022년 12월 6일일 거다. 기력이 없긴 했지만, 덤덤한 말투로 사업 마무리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인니에서 평생 살기를 바랐다. 뒤늦게 발견된 대장암 말기, 다니던 회사에서 한국 본사로 발령내주고 치료도 지원한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달에 한 번 한국을 왕복하면서까지 인니에 있으려 했다. 6차까지 받으며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간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더 지체하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서둘러 떠났다고..

소오~설 2023.11.24

당신이 없어도 세상엔 별일 없더라

2018년 4월 어느 날, 리까가 죽었다. 서른 한 살인가, 서른 두 살인가. 외동딸이었고, 양친은 10여년 전에 교통 사고로 떠났다. 자식을 갖기를 두려워했다. 자신처럼 혼자 남게 될까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가끔 말했던대로,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리까 죽었다, 사흘 전에." 선배형과 둘이 저녁 먹던 자리였다. 술을 마시려 잔을 드는 내게 그가 툭하니 말을 뱉었다. 마치 누가 감기라도 걸렸다는듯. 그녀 나이를 대충 기억할 정도였으니, 그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순간엔 너무 마음 아프지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요?" 고작 이렇게 대답하고, 멈칫했던 술잔을 털어넣었다. 선배형이나 나나 30분쯤 별말 없이 간간히 안주..

소오~설 2022.12.31

[고양이 이야기 V] 2. 마음이 척박한 나라

새 직장의 파견 근무처는 빈말로라도 좋은 곳이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할 곳이었다.어지간한 인성 밑바닥은 다 봤다고 생각한 내 자만을 훌륭하게 박살내주었다.혼자 파견 나왔으니 아군은 단 한 명도 없고 모두 적이었다.매일 아침 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어디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때면, 오늘 하루는 또 얼마나 길지, 무슨 욕을 먹거나 봉변을 당할지 우울했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임신했는지 배가 빵빵하다.사방이 논밭으로 둘러 쌓여, 가장 가까운 민가가 200m 떨어진 이 공장까지 와서 자리 잡기까지 나름 사연이 있을 게다.뭐 먹을 거라도 주려나 온 거겠지만, 위로라도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나왔다.힘든 시기가 계속 되다 보니 동물에게 내 좋을..

etc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