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스포일러

Slumdog Millionair 슬럼독 밀리어네어

명랑쾌활 2009. 6. 13. 00:22
뭐 내용이야 여기저기서 원채 많이 다뤘으니... 라고는 해도 대충 얘기하자면,
무식한 주인공이 맞출 리가 없는 문제를 다 맞추고 퀴즈쇼 우승을 앞두었다.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가 우연히 문제로 다 출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내용 참 별거 아니다.
누구나 TV에서 퀴즈쇼 하는 걸 보다 보면  한 번 쯤 상상해 봤을 얘기다.
어떤 때는 초중반 몇몇 문제는 모르는 수도 있고, 또 다른 때는 다 아는데 마지막 문제를 모를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그 어려운 마지막 문제가 우연히도 본인이 생생하게 알고 있는 문제여서 의기양양하게 맞출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 내가 저 퀴즈쇼 나갔을 때, 아는 문제만 나오면 얼마나 멋질까?"
그렇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전제가 퀴즈쇼의 재미 중 하나다.

스토리는 그저 그랬다고 하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악명 높은 인도의 하층민 생활과 어린 거지강도 떼들의 가감없는 묘사가 좋았다.

점차 우리 나라에서는 사라져가는 함석 쓰렛트 지붕의 모습.
영화 시작부터 한 차례 유쾌한 추격씬으로 인도 하층민들의 삶터를 부족하지 않게 보여준다.

이슬람 사람들을 때려 잡으러 저 편에서 사람들이 몰려 온다.
주인공의 엄마도 한 방에 속절없이...
불이 붙어 거리를 미친듯 뛰는 사람이 있는데,
경찰은 관심도 없다.
그래, 내 누차 얘기하지만 사람 목숨 값은 다 똑같지 않다.

CG였을까 진짜일까?
아무래도 CG가 더 싸게 먹힐듯 한데...
기술 발전이 성가실 때도 있다.

나쁜 짓 하다 얻어 맞는 주인공.
불쌍하다며 미국인 부부가 건넨 돈은 무려 100달러.
인도 고액권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100달러라는 거액의 돈에 그려진 인물을 맞출 수 있었던 이유다.
(참고로 난 인도 지폐들에 그려진 모든 인물들을 다 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딱 1분만 투자해 인터넷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상식이란 그런 것이다. 당신의 앎의 즐거움을 위해, 가르쳐 주지 않겠다. ^_^)

멋진 광경이긴 한데... 만약 나라면 연기를 위해 저기 저렇게 걸터앉아 있을 수 있을까? 흠...

밋밋한 주인공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형의 그 다운 죽음.

주인공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선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선하다는 평면적인 인물설정은 설마 아니었을테고,
그렇다면 주인공이 선한 성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그다지 선한 인물도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형의 보살핌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선함을 위해 노력하지도, 희생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 그가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지만, 그의 열심히 산 삶의 댓가로서의 어떤 필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라는 평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원작 책 서평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웃기는 소리라고 하고 싶다.
행운은 행운일 뿐이며, 댓가로 주어지는 행운이란 건 없다.
게다가, 주인공의 지난 삶 속에는 그리 썩 훌륭하다고 간주할 미덕도 없다.
밑바닥의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주인공에게 돌아온 보상?
밑바닥의 삶을 감내했다고 주어지는 보상은 없다.
오직 밑바닥을 벗어난 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마저도 확률이 낮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
주인공이 품은 희망은 신분 상승도, 부자가 되는 것도, 세계 평화도 아니었다.
오직 어렸을 적부터 꽂혔던 여자와 같이 살고 싶다 뿐.
그렇다고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나?
그것도 아니다.
그저 도망가서 자기 먹고 살기나 바쁠뿐.
우연히 여자를 만나자 기껏 하는 얘기가 도망가서 같이 살자.
(도중에 잡혔으니 망정이지 무사히 도망갔다면 사랑으로 충만한 빈민생활을 만끽했을 것이다.)
퀴즈쇼에 나온 이유도 상금타서 여자 구하겠다 이런거 아니다.
그저 퀴즈쇼에 나오면 여자가 볼까봐.
그러니 퀴즈쇼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거나 하는 설정 따윈 없다.

마지막을 뜬금없는 집단 댄스로 장식.
전형적인 볼리우드 형식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저기 꽤 많은 상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그만한 메시지를 주었는가는 좀 의아하다.
아마 인도 하층민의 삶을 똑바로 직시하면서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게 그려낸 부분이 높게 평가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감독의 옛 작품 트레인 스포팅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영화가 무슨 도덕책이나 교양서적도 아니고, 보라고 권할 만한 영화이긴 하다.
아마도 관객에게 이런 위안을 주지 않을까?
<행운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노력없는 사람에게도 올 수 있지요. 그러니 당신도 너무 비관하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