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인니인의 인니 여권 만들기 ~공평하게 부패한 공무원~

명랑쾌활 2018. 7. 17. 10:46

인니 정부기관의 행정 서비스는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하기로 유명한데, 외국인 뿐 만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그런 모양입니다.

내국인이 여권을 만드는데도 험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필요 서류를 갖춰 찾아가면, 무슨 서류가 부족하다, 어디 가서 무슨 확인서를 받아와라 퇴짜를 놓는 일이 빈번합니다.

혼자 직접 해보겠다고 두 달 간 관청을 들락날락 하던 현지인은 결국 이건 서류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공무원들이 '발급해 주기 싫어서' 그런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브로커를 찾아 갔습니다.

대행료는 일반 여권이 80만 루피아, 전자 여권이 150만 루피아입니다.

필요 서류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혼자 만들겠다고 관청을 들락거리면서 준비했던 서류들을 브로커에게 넘기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1주일 뒤 여권이 떡하니 발급됐습니다.

두 달 간, 대여섯번을 찾아갔어도 계속 퇴짜를 맞았던 그 여권이요.


아마도 인니 공무원들은 여권을 발급하는 사람을 '돈 좀 있는 사람' 내지는, 해외 근로자처럼 '돈이 들더라도 반드시 발급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니인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 중 하나가 바로,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입니다.

이슬람의 가르침인데, '모든 부는 알라의 것이고 부자에게 잠시 맡긴 것이니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할 의무 역시 같이 부여된다' 라는, 원래는 아주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그 게 세속적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너 돈 많으니까 내가 좀 나눠 먹어도 되잖아' 라는 날강도 논리가 된 거지요.


공무원이 돈 좀 있는 사람을 상대로 공무를 처리한다는 건, 100% 돈 나올 구멍을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니 공무원들의 부패 시스템은 그야말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합니다.

자기 자리에서 뇌물 받아 먹는 멍청한 짓은 이제 하지 않아요.

공무원들에게 신원을 검증 받은 브로커를 통해서 '대행 수수료'를 나눠 먹지요.

물론, 브로커의 사업이 번창하려면,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오는 민원인들이 결국 브로커를 찾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하겠지요.

태업은 인니인 대부분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카드지만, 그 중 발군은 역시 관료주의를 앞세운 공무원입니다.

몇 번의 퇴짜를 맞은 민원인은 결국 '도움'을 줄 곳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브로커가 정의감에 미치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증거를 잡을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인니 국내 뿐 만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인니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싱가폴 주재 인니 대사관에 비자를 갱신하러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대행업체를 통해서 하면 비자 갱신 작업이 당일 완료인데, 민원인이 직접 가면 3일 걸린다고 합니다.

아니면, 인니 대사관 직원이 친절하게도, 대행업체에 연락을 해서 업자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업자가 와서 직접 찾아온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지요. '여기 혼자 직접 오시면 안되는 거 몰랐냐'구요.

민원인 본인이 직접 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은 들어봤겠지만, 민원인 본인이 직접 오면 안된다는 괴상한 규정이 존재한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요.


인니의 공무원들이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비효율적이고, 부패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외국인들에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런 부패 공무원들이 인니 발전의 발목을 잡는 덕분에 이렇게 외국인들이 돈 벌 구석 찾기가 쉽다는 걸 고마워 할 수도 있겠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