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진상짓도 일종의 능력

명랑쾌활 2024. 2. 21. 07:33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가 있었다.

평소엔 비싸다고 거의 가지 않는 식당을 예약했다.

늘상 돈자랑을 하지만, 정작 돈을 써야할 타이밍엔 검소해지는 킹사장도 그 자리 만큼은 호탕하게 음식들을 주문했다.

자리가 파하고 손님을 배웅한 뒤, 모임을 보조한 직원들도 킹사장의 강권에 하나 둘 자리를 떴다.

호탕함은 손님과 함께 떠나고, 집 나간 검소함이 돌아온 상태. 현타가 온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킹사장과 나만 남게 됐다. 다들 참 이럴 땐 민첩하다.

"오늘 수고했어. 자네도 들어가지."

"네, 오늘 과음하신 거 같은데, 편히 쉬세요."

"응, 그래. 과음한 거 같아. 좀 힘드네."

킹사장의 차가 막 출발하려는데, 식당 직원이 붙잡고 계산서를 내민다. 원래 계산하기로 된 부사장이 깜빡하고 그냥 간 모양이다.

혀를 쯧쯧 찬 킹사장은 계산서 받아 찬찬히 훑어봤다.

"아니, 계산이 이상한데? 뭐 이리 많이 나왔지?"

계산서를 들여다 보던 킹사장이 차에서 내렸다.

"자네, 같이 들어가세. 계산이 좀 잘못된 거 같은데."

 

식당에 들어간 킹사장은 1층 홀의 빈 테이블에 앉았다. 나도 뒤따라 들어와 앉았다. 전 가보겠습니다라고 할 순 없잖나.

"어이, 사장 어딨어? 잠깐 이리 와보라 그래!"

종업원에게 사장을 불러 오라고 시킨 킹사장은 계산서를 내게 건냈다.

"자네 이거 좀 봐바. 계산 맞는 거야?"

7백만 루피아 가까이 나왔으니, 확실히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참석인원 13명에 음식 팍팍 시키고, 소주 15병이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금액이다.

음식들은 비교적 기억해내기 쉽다. 소주 같이 한 종류에 많은 수량을 주문한 것만 잘 맞춰보면 된다. 

계산서에는 문제가 없었다.

식당 사장이 왔다. 반갑다는듯 기색을 애써 내보이지만, 고단함의 그늘을 완전히 덮지는 못한 얼굴이다.

킹사장은 반쯤 풀린 목소리로 사장에게 말했다.

"계산이 좀 잘못된 거 같은데? 뭐 이리 많이 나왔나."

사장은 피곤에 찌든 웃음을 지으며 응대했다.

"계산 맞을 겁니다. 서비스 올라간 거 있나 제가 다 체크했습니다."

킹사장이 더 무리하게 우기다 서로 곤란한 상황이라도 될까 싶어, 내가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엔 맞는 거 같습니다. 음식 주문한 것들 다 맞구요, 소주도 15병 맞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흠, 그래? 뭔 소주를 그리 많이 먹었나? 거참... 어이, 사장님.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뭔 서비스도 없어요? 일단 이건 내가 계산할테니, 소주 한 병하고, 안주 좀 맛있는 거 좀 내와봐요."

내게서 받아든 계산서를 사장에게 흔들며, 킹사장이 말했다. 

"서비스를 뭘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근데 사장님, 소주는 서비스로 드리기는 좀 곤란한데요."

"어허~ 이렇게 많이 팔아줬는데 소주 한 병 정도는 서비스 주셔야지. 안주야 뭐 사장님이 알아서 맛있는 거 주시고. 내가 여기 오는 손님들 중에도 아는 사람 많아요. 여기 오는 손님들 중에 나랑 골프치는 사람들 많아. 골프 한 번 치면 다 같이 저녁 먹고 그러는데, 잘 해주셔야 나도 여기 자주 올 거 아닌가. 내 한 마디 하면 다 내 말 듣지."

식당 사장의 웃는 얼굴에 그늘이 좀더 짙어졌다.

"...그러면 참치 괜찮으실까요? 괜찮은 부위가 좀 남았는데, 괜찮으시면 썰어 올리겠습니다."

"아, 참치 좋지. 참치하고 소주하고 그렇게 마시면 되겠네."

계산이 틀려서 문제가 아니라, 금액이 큰 게 문제였다. 나만 몰라서 오버했다.

킹사장은 계산이 맞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식당 사장도 이미 이렇게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인니에서 한식당 몇 년 하면, 궁예가 되고 부처가 된다.

 

서비스를 어설프게 싼 걸로 내느니 차라리 안내는 편이 낫다는 걸, 식당 사장은 아는 모양이다.

서비스로 나온 참치회를 한 점 집어먹은 킹사장은 맛있다고 흡족해 했다. 진심으로 기분 좋은 거 같아 보인다.

참치회가 맛있어서일까, 뜻하지 않은 과한 지출을 조금이라도 회수한 거 같아서일까.

나도 한 점 집어 먹어 보니, 진짜 좋은 부위였다.

맛은 있는데, 입맛이 쓰다.

참치가 정말 땡길 때 종종 이 식당에 와서 참치회 보통 세트를 먹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부위다.

 

점잖은 손님은 이런 고급 서비스 못얻어 먹고, 사장 힘들게 하는 진상들이 오히려 득을 본다.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는 한, 손님에게 대놓고 우리 업소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다.

진상짓에 대한 반대급부라고 해봐야, 사장이 속으로 퍼붓는 욕밖에 더 있겠나. 그런 거 먹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착하고 예의 바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는다는 얘기가 개소리라는 건, 사회 생활 조금만 해보면 누구든 다 알게 되는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진상짓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그저 대부분 그렇게 못하기 때문이다.

이익을 취할 수 있고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진상도 일종의 능력이다.

 

Animation <Dear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