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Gili Terawangan, Lombok] 1. 섬 안에서 숙박은 처음

명랑쾌활 2017. 2. 22. 18:20

롬복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롬복 동부지역이 여행 예정지였으나, 동행이 있어서 부득이 길리 뜨라왕안에 가게 됐네요.

세상일 참 생각처럼 되지 않지만, 생각처럼 된다면 그런 지옥이 또 없는 법이지요. ㅎㅎ


반둥 서쪽에 위치한 자띠 루후르 Jati Luhur 인공호수

댐으로 막아 생긴 곳이니 저수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 넓기 때문에 호수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초승달 모양의 호수 중심에 솟은 산지가 있어 리조트로 개발하기 좋아 보이는데, 도로 인프라가 안좋아 관광지보다는 민물고기 양식장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인니에는 이런 저개발 관광자원이 널리고 널렸다.


롬복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니 버스라도 보내주나 했는데, 비행기 입구에서 우산을 준다.

물론 아주 주는 게 아니고, 공항 건물에 도착하면 수거하는 직원이 있다.

어느 정도 수거되면 직원은 다시 비행기로 우산을 갖다 놓기를 반복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수고하면 비용이 확 줄어든다.


공항을 나서니 저번 여행에 안면을 다져둔 운전기사 디까 Dika가 반갑게 맞는다.

덕분에 드잡이 할 필요도, 교통편을 찾아 다닐 필요도 없다.

아는만큼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뭐 물론 돈이 많으면 몰라도 별 스트레스 없겠지만.


승기기 Senggigi 북쪽의 경치 좋은 해안 도로 코스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길리섬 3형제가 한 눈에 보이는 포인트에 말라카 Malaka라는 표지가 떡하니 설치되어 있었다.

오히려 경관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갔었다는 걸 보다 명료하게 증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일 수도 있겠다.

뒤의 멋진 풍경이 아닌, 저 표지가 잘 보이도록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대부분인 걸 보면 그런 거 같다.

무엇을 보았다 보다, 어디에 있었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드레일 뒤편에 개 한 마리가 잠을 청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험한 꼴 당한 적은 없는지,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 순한 성격이었다.

쓰다듬을 허락해 주다가, 먹을 거 안주면 딴 데 가버리는 나름 직업 정신이 있는 개였다.


원래는 방살 Bangsal 선착장에 가서 퍼블릭 보트나 스피드 보트를 탈 예정이었으나, 운전기사 디까가 굳이 방살 선착장 가기 전에 위치한 사설 선착장을 추천하며 반강제로 데려 왔다.

손님을 데려오면 얼마 떼어주기로 계약되어 있는 곳이겠지.

도착 전 디까 얘기로는 두 명 왕복 80만 루피아에 즉시 출발, 복귀는 원하는 시간 언제든지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딱 봐도 뜨내기 여행자 뜯어 먹으려는 탐욕과 능청이 덕지덕지 붙은 여행사 직원의 말은 달랐다.

"두 명이면 1백만 루피아야."
"음? 뭐가 그리 비싸? 예전에 왔을 때 60만 루피아였는데."
"에이, 언제 때 얘기야? 기름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나 인니 8년 살았어. 롬복 자주 와. 여기 도로 비포장이었을 때도 왔었어. 올해만 이번이 두번째야."
"어쨋든 기름 값 올라서 안돼. 그럼 90만 루피아 해줄게."
"아무리 비싸봐야 80만 루피아일텐데?"
"올랐다니까?"
"언제부터 올랐는데? 올해 초? 작년 말?"
"...알았어. 5만 루피아 더 빼줄게. 오케?"
그러더니 더이상의 협상은 없다는듯 영수증에 85만 루피아를 적어버렸다.
나도 귀찮음을 5만 루피아에 해결하는 걸로 생각해버리고 지불했다.

천막같은 여행사 사무실을 나오니 디까가 눈치를 본다.
괜찮다 웃어주며 배가 있는 해변쪽으로 향했다.
디까가 소개료를 챙길 기회를 줘야 하니.
뒤를 흘끔 보니 디까가 천막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배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아봐야 여행만 망친다.

인니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고양이랑 놀면서 20분쯤 기다리고 있으려니, 서양인 남자와 자녀로 보이는 남매가 꽤 많은 짐들을 들고 왔다.

마트에서 구입한 생필품을 박스에 담아 포장한듯한 짐과 조그마한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를 보니, 아마도 길리 뜨라왕안에서 장사하는 가족인듯 하다.

그들이 오자 배는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사에게 난 부수입으로 땡 잡힌 셈이었지만,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아봐야 여행만 망친다.


길리 뜨라왕안 선착장

앞에 보이는 남매가 같이 타고온 서양인의 자녀들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숙소까지 10여분 거리여서 걸어가기로 했다.

마차를 타면 싸봐야 5만 루피아, 보통 7~8만 루피아다.


길리 뜨라왕안 메인 스트리트

우측 하단에 보이는 애들이 아까 그 남매다.

부인은 현지인이고, 두 아이는 혼혈이거나 각각 자녀가 있는채로 재혼한듯.

아니면 입양일수도 있고, 아니면 여아는 첫번째 부인과의 소생이고 남아는 두번째 부인과의 소생인 이복남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매가 아니라 이웃집 아이일수도 있고, 아니면 부모-자식 관계가 아닐수도 있고...

뭐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상관도 없지만, 괜히 소설을 써본다.

어쨋든 쬐그만 것들이 영어 잘하는 게 부럽긴 했다.

얘들아, 그래봐야 돈은 이 아저씨가 너희들보다 더 많단다. (이런 찌질한 경쟁심리, 유치해서 너무 좋아~ ㅋㅋ)


정기 왕복하는 스피드 보트

원래 저걸 타려고 했었다.

기껏해야 1인당 10만 루피아 정도 하지 않을까 싶다.


거리는 10여분이지만, 여기저기 진창길이라 걷기 불편했다.

그냥 마차를 탈 걸 그랬나 약간 후회했다.


숙소 도착

아고다에서 가격 괜찮고 평이 좋아서 예약한 곳이다.

간판에 국기로 보아 여기도 이탈리아 사람 소유인듯 하다.

길리 뜨라왕안 외국인의 70%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웰컴 드링크로 라임모히또 탄산수를 줬는데, 그저 그런 음료수가 아니었다.

깔끔하고 시원했다.

정말 맛있다고 하니, 고맙다는 숙소 직원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보였다.


롬복은 개판인데, 길리 뜨라왕안은 고양이판이다.


숙소 창밖 풍경


이런 꽃지랄 보면 간지럽다.

이런 거 말고 먹을 거나 건강한 언니들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몸을 꼬고 있는 사진 잡지라도 놓던가.


숙소에서 제공하는 해변 옆 나름 프라이빗 공간


자원봉사로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 서양 언니들

덕분인지, 예전에 비해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

직업적으로 줍는 사람이 있었다면 직업의 안정성을 도와준다는 자기 합리화로 여전히 버리겠지만, 자원해서 줍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버리는 행위가 꺼려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메인 스트리트 뒷골목은 처음 들어가 본다.

유명하다는 피자집 찾아 가는 길이다.


치료하러 갔다가 더 아프게 될 거 같은 의료소

여행 가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

인니에서는 더더더더더욱 그렇다.

인니도 은퇴이민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나라지만, 의료수준이 문제다.

현지의 중산층 정도만 돼도 중요한 수술은 싱가폴 가서 한다.


화석연료 탈것을 운행 금지된 곳이라서 그런지 도로 상태가 열악하다.

인니는 보행자 편의에 대해서는 인식 조차도 거의 못하는 나라다.

그렇다 보니, 벌어 들이는 돈이 꽤 될텐데도 다른 데 헛짓거리 하는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흙길이 좋다?

자연은 곧 불편을 감수한다는 얘기다.

인공의 기본적인 목적이 인간의 편의이듯.


저런 멋진 예술작품이 방치되어 있는 예술의 나라~


라구나 피쩨리아 Laguna Pizzeria

길리 뜨라왕안 내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


저렴하다!


피자헛이든 도미노든 피자 프렌차이즈들은 다 도동넘들이다.

원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가격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높인 고의적인 가격 책정이다.

애초에 한국에 피자가 들어왔을 때, '피자라는 고급 음식은 가격이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라고 높게 잡았고, 소비자가 그걸 받아 들였기 때문에 굳어진 거다.

하지만 그건 건물주와 프렌차이즈 본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작전일 뿐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는데, 프렌차이즈 피자 가격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프로모션으로 떨어졌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명백한 증거가 바로 이거다.

이 크고 맛있는 살라미 피자 Salame Pizza 가 단돈 7만8천 루피아, 7천원도 안되는 가격이다.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피자 맛의 99% 수준이다.


내공이 느껴지는 허름한 주방

한국의 피자에는 인테리어와 임대료가 포함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사람이 많은 지역답게 길리 젤라또 Gili Gelto 라는 브랜드가 섬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휘황찬란한 머스짓 Mesjid (이슬람 회당)

퇴폐적인 양키 문화에 질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비수기라 그런지 고적한 분위기다.

그리고, 진창때문에 걷기가 너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