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일어나 나오니 일행 두 분은 골프치러 나가셨다.
야오와 못보던 아가씨가 있길레, 야오에게 아침을 달라 했다.
된장국과 미역국이 있는데 무엇을 먹겠느냐 묻는다.
된장국을 달라 했는데... 미역국이 나왔다. ㅋㅋㅋ
자알 먹고 카페다 한 잔 마시며 하릴없이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호수나 나가볼까 하는데 왠지 귀찮다.
야오와 아가씨를 불러다 놓고 얘기를 나눴다.
작년의 직원들 중 야오 말고는 다 바뀌었다고 한다.
아가씨 이름은 트 Thu (베트남어로 편지라는 뜻)
전형적인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베트남 아가씨다.
영어는 거의 안통하다시피, 예스나 노 정도다. (베트남에서 대학생이 아닌 사람이 이정도면 대단한 것)
한글을 떠듬떠듬 읽을 줄 아는게 신기했다.
작년에 뵈었던 나도 아는 한국분이 트에게 좀 가르쳐 줬다고 한다.
덧니가 좀 심한 편이지만 수줍게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작년에 학교 졸업했고 나이는 19세... 19 19 19 19 19...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난거야 버럭~~ ㅠ_ㅠ
근 7년 만에 조금이나마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남자친구는 없단다. 뭐 나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아마 거짓말이겠지. 뭐 나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이모가 오셨고, 좀 있다가 일행 두 분이 골프를 마치고 오셨다.
이모가 환영한다며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신다.
이것 저것 푸짐하게 들어간 부대찌게.
햄같은 가공육은 그리 싸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일행 두 분은 바올록으로 훌쩍 돌아 가셨다.
이모와 까페인 옆집에 가서 까페스다를 시켜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주로 작년에 일했던 친구들 이야기다.
누구는 월급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 해서... 누구는 달랏대 여대생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일을 너무 소홀히 해서... 누구는 재혼을 하게 되서... 누구는 고향인 훼 근처로 돌아가야 되서... 누구는 취직 잘해서 호치민의 한국 회사로...
작년에 같이 지낼 때 다들 착하고 선량한 친구들이었는데...
막연한 친분으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서의 됨됨이와, 사회적, 금전적 관계 속에서의 됨됨이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모쪼록 후회하지 않고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있길 바란다.
디카 메모리가 거의 가득차서 컴퓨터를 쓰려 했는데 식당의 컴퓨터는 고장이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KBS위성이 나오던 TV도 고장이라고 하시고... 음...
근처의 피씨방으로 갔다.
시설은 그럭저럭. 태국과 비교하자면 좀더 후지고, 속도는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속도와 서비스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신기한 나라...)
태국은 동전을 넣어가며 알아서 컴을 쓴다면, 베트남은 저렇게 종이에 시작 시간을 적어준다.
나중에 계산하게 될 때, 저 종이를 내밀면 정산해 주는 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확하게 요금을 받는 일은 없다. ㅋㅋㅋ)
베트남은 동전이 귀하다.
질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닐 뿐더러, 값을 치룰 때 동전을 주면 좋아하지 않는다.
밤에 식당이 문을 닫고 나서는 어제 도착했을 때 봤던 베트남 청년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이름은 띤 Tin. 21살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고향인 다낭에 계시고, 누나는 호치민에, 여동생은 동나이에 있다고 한다.
장차 전기기술자가 꿈이란다.
한국에는 관심이 있냐고 했더니 별로 없다고 한다.
그보다는 영어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 수준은 우움... 8,90년대 중학생 수준?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장래에 대한 유리한 점과 선택의 폭이 넓어 지니, 열심히 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호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면 가라고 권했다.
한국도 돈 벌기에는 그리 나쁜 곳은 아니지만, 잃게 되는 것들도 많은 곳이라 딱히 권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동남아 친구들에게 오라고 선뜻 권할 만큼, 선량한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문화적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가 되는 날이 올까.
다른 나라보다 부유하길 바랄 뿐, 존경받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정책은 아예 찾아 볼 수도 없는 한, 요원한 일이다.
하긴, 우리의 과거는 너무 비참하고 살벌하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그 덕에 배불러 놓고 배부른 소리 한다는 탑골공원 어르신들의 질타가 아직도 쟁쟁하게 통용되는 나라다.
그렇게 덕분에 끼니 걱정 없게 된 자식 새끼들은, 평생 마음의 부채를 안고 당신들의 논리대로 더 큰 것을 가지려 또 무언가를 희생해야, 예의바른 후손이 되는 것일까.
2만불까지 왔으니 이제 소외된 이웃, 사회적 약자에게 부를 나누자고 하니, 그건 빨갱이의 논리란다.
고작 이것 벌어서 성장을 팽개치고 분배를 하느냔다.
아직은 좀더 참고 4만불을 향해서 나아가잖다.
무엇을 위해 2만불에 온 거고, 누구를 위해 4만불을 가자는 걸까?
만오천불 때보다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왜 자꾸 4만불을 향해 더 희생하자고 하는 걸까?
4만불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워 질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나는 오늘 행복하고 싶고, 내일 좀더 행복하고 싶다.
새벽 5시 40분. 비오는 소리에 깼다.
두어시간 수첩에 글을 끄적인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한다.
이번 여행 때는 랑뱡산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8시 쯤 어슬렁어슬렁 1층으로 내려갔다.
야오와 트, 띤이 있다.
라면을 끓여 달라다가, 문득 어제 이모가 얘네들은 라면을 끓이면 물을 너무 많이 붓는다며 좀 가르쳐 주라던 말씀이 생각난다.
하긴, 우리나라 식의 물 양이면 얘네들에겐 너무 맵겠지.
하나 가득이면 라면 한 개 끓일 물 양이 되는 적당한 크기의 국그릇을 알려주고, 파나 마늘 등 곁들이면 좋은 야채도 가르쳐 주고, 달걀은 언제 넣어야 하는지 등등...
국그릇 모양이 나 국민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이걸로 하나 가득이라고 가르쳐 주신 그것과 비슷하게 생겨서 웃음이 났다.
엄마도 아버지도 늦으셨던 어느 날 저녁, 배가 고파 난생 처음 석유곤로로 끓였던 그 라면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대실패작이었다.
물을 거의 두 배 가까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래 끓여서 국물이 없었다.
(설명서의 450cc라는 단위는 어린 내게는 너무 난해했다. -_-;)
당연히 면발은 우동 면발.
맛도 없는 주제에 양이 많아서 반도 못먹었다.
그 며칠 뒤에 엄마가 라면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을 보면, 남긴 라면을 보시고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그 뒤로 도량형 사발을 쓰지 않고도 물을 적당히 맞추게 되는데 1년이 걸렸다.
(냄비 모양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니 눈대중으로 맞추기가 당최 힘들었다. 요리는 역시 숙련이다. 그래서 요리책을 보면 적당히 라는 얼토당토 않는 단어가 자주 나오지 않는가. 적당히 끓이고 적당히 넣고... ㅎㅎㅎ)
지금은? 라면을 별로 안좋아하시는 엄마가 어쩌다 뜨거운 라면국물이 먹고 싶다고 하실때면, 스페샬~ 라면을 끓여 드리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가끔 그 때 얘기도 하고... ^_^
일 보러 나가야 되는데 어째 가기가 싫다.
까페스다를 앞에 두고, 비 오는 거리를 쳐다보며 하릴없이 앉아있다.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게을러 진다.
아무것도 안해도 그저 좋다.
살고 싶다.
하지만 살고 싶을 때 보는 것과 살면서 보는 것은 다르겠지.
한국 남자 셋, 베트남 여자 둘이 식사하러 왔다.
한국 남자 둘은 40 중후반~ 50 초반, 한 명은 40 초반 정도, 여자들은 젊은 편이다.
다들 어색하고 40 초반인 남자만 중간에서 한국어로, 베트남어로 분주하다.
그 분위기로 보나, 언뜻언뜻 들리는 내용이나... 결혼 소개업자다.
내 존재가 그들의 말수를 더 없게 만드는 듯 하다.
...그들의 인생이 행복해질 선택이 되길 바라며 호수로 산책을 나섰다.
야오와 못보던 아가씨가 있길레, 야오에게 아침을 달라 했다.
된장국과 미역국이 있는데 무엇을 먹겠느냐 묻는다.
된장국을 달라 했는데... 미역국이 나왔다. ㅋㅋㅋ
자알 먹고 카페다 한 잔 마시며 하릴없이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호수나 나가볼까 하는데 왠지 귀찮다.
야오와 아가씨를 불러다 놓고 얘기를 나눴다.
작년의 직원들 중 야오 말고는 다 바뀌었다고 한다.
아가씨 이름은 트 Thu (베트남어로 편지라는 뜻)
전형적인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베트남 아가씨다.
영어는 거의 안통하다시피, 예스나 노 정도다. (베트남에서 대학생이 아닌 사람이 이정도면 대단한 것)
한글을 떠듬떠듬 읽을 줄 아는게 신기했다.
작년에 뵈었던 나도 아는 한국분이 트에게 좀 가르쳐 줬다고 한다.
덧니가 좀 심한 편이지만 수줍게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작년에 학교 졸업했고 나이는 19세... 19 19 19 19 19...
왜 이렇게 늦게 태어난거야 버럭~~ ㅠ_ㅠ
근 7년 만에 조금이나마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남자친구는 없단다. 뭐 나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아마 거짓말이겠지. 뭐 나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이모가 오셨고, 좀 있다가 일행 두 분이 골프를 마치고 오셨다.
이모가 환영한다며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신다.
이것 저것 푸짐하게 들어간 부대찌게.
햄같은 가공육은 그리 싸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일행 두 분은 바올록으로 훌쩍 돌아 가셨다.
이모와 까페인 옆집에 가서 까페스다를 시켜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주로 작년에 일했던 친구들 이야기다.
누구는 월급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 해서... 누구는 달랏대 여대생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일을 너무 소홀히 해서... 누구는 재혼을 하게 되서... 누구는 고향인 훼 근처로 돌아가야 되서... 누구는 취직 잘해서 호치민의 한국 회사로...
작년에 같이 지낼 때 다들 착하고 선량한 친구들이었는데...
막연한 친분으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서의 됨됨이와, 사회적, 금전적 관계 속에서의 됨됨이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모쪼록 후회하지 않고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있길 바란다.
디카 메모리가 거의 가득차서 컴퓨터를 쓰려 했는데 식당의 컴퓨터는 고장이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KBS위성이 나오던 TV도 고장이라고 하시고... 음...
근처의 피씨방으로 갔다.
시설은 그럭저럭. 태국과 비교하자면 좀더 후지고, 속도는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속도와 서비스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신기한 나라...)
태국은 동전을 넣어가며 알아서 컴을 쓴다면, 베트남은 저렇게 종이에 시작 시간을 적어준다.
나중에 계산하게 될 때, 저 종이를 내밀면 정산해 주는 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확하게 요금을 받는 일은 없다. ㅋㅋㅋ)
베트남은 동전이 귀하다.
질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닐 뿐더러, 값을 치룰 때 동전을 주면 좋아하지 않는다.
밤에 식당이 문을 닫고 나서는 어제 도착했을 때 봤던 베트남 청년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이름은 띤 Tin. 21살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고향인 다낭에 계시고, 누나는 호치민에, 여동생은 동나이에 있다고 한다.
장차 전기기술자가 꿈이란다.
한국에는 관심이 있냐고 했더니 별로 없다고 한다.
그보다는 영어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 수준은 우움... 8,90년대 중학생 수준?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장래에 대한 유리한 점과 선택의 폭이 넓어 지니, 열심히 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호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면 가라고 권했다.
한국도 돈 벌기에는 그리 나쁜 곳은 아니지만, 잃게 되는 것들도 많은 곳이라 딱히 권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동남아 친구들에게 오라고 선뜻 권할 만큼, 선량한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문화적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가 되는 날이 올까.
다른 나라보다 부유하길 바랄 뿐, 존경받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정책은 아예 찾아 볼 수도 없는 한, 요원한 일이다.
하긴, 우리의 과거는 너무 비참하고 살벌하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그 덕에 배불러 놓고 배부른 소리 한다는 탑골공원 어르신들의 질타가 아직도 쟁쟁하게 통용되는 나라다.
그렇게 덕분에 끼니 걱정 없게 된 자식 새끼들은, 평생 마음의 부채를 안고 당신들의 논리대로 더 큰 것을 가지려 또 무언가를 희생해야, 예의바른 후손이 되는 것일까.
2만불까지 왔으니 이제 소외된 이웃, 사회적 약자에게 부를 나누자고 하니, 그건 빨갱이의 논리란다.
고작 이것 벌어서 성장을 팽개치고 분배를 하느냔다.
아직은 좀더 참고 4만불을 향해서 나아가잖다.
무엇을 위해 2만불에 온 거고, 누구를 위해 4만불을 가자는 걸까?
만오천불 때보다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왜 자꾸 4만불을 향해 더 희생하자고 하는 걸까?
4만불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워 질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나는 오늘 행복하고 싶고, 내일 좀더 행복하고 싶다.
새벽 5시 40분. 비오는 소리에 깼다.
두어시간 수첩에 글을 끄적인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한다.
이번 여행 때는 랑뱡산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8시 쯤 어슬렁어슬렁 1층으로 내려갔다.
야오와 트, 띤이 있다.
라면을 끓여 달라다가, 문득 어제 이모가 얘네들은 라면을 끓이면 물을 너무 많이 붓는다며 좀 가르쳐 주라던 말씀이 생각난다.
하긴, 우리나라 식의 물 양이면 얘네들에겐 너무 맵겠지.
하나 가득이면 라면 한 개 끓일 물 양이 되는 적당한 크기의 국그릇을 알려주고, 파나 마늘 등 곁들이면 좋은 야채도 가르쳐 주고, 달걀은 언제 넣어야 하는지 등등...
국그릇 모양이 나 국민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이걸로 하나 가득이라고 가르쳐 주신 그것과 비슷하게 생겨서 웃음이 났다.
엄마도 아버지도 늦으셨던 어느 날 저녁, 배가 고파 난생 처음 석유곤로로 끓였던 그 라면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대실패작이었다.
물을 거의 두 배 가까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래 끓여서 국물이 없었다.
(설명서의 450cc라는 단위는 어린 내게는 너무 난해했다. -_-;)
당연히 면발은 우동 면발.
맛도 없는 주제에 양이 많아서 반도 못먹었다.
그 며칠 뒤에 엄마가 라면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을 보면, 남긴 라면을 보시고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그 뒤로 도량형 사발을 쓰지 않고도 물을 적당히 맞추게 되는데 1년이 걸렸다.
(냄비 모양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니 눈대중으로 맞추기가 당최 힘들었다. 요리는 역시 숙련이다. 그래서 요리책을 보면 적당히 라는 얼토당토 않는 단어가 자주 나오지 않는가. 적당히 끓이고 적당히 넣고... ㅎㅎㅎ)
지금은? 라면을 별로 안좋아하시는 엄마가 어쩌다 뜨거운 라면국물이 먹고 싶다고 하실때면, 스페샬~ 라면을 끓여 드리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가끔 그 때 얘기도 하고... ^_^
일 보러 나가야 되는데 어째 가기가 싫다.
까페스다를 앞에 두고, 비 오는 거리를 쳐다보며 하릴없이 앉아있다.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게을러 진다.
아무것도 안해도 그저 좋다.
살고 싶다.
하지만 살고 싶을 때 보는 것과 살면서 보는 것은 다르겠지.
한국 남자 셋, 베트남 여자 둘이 식사하러 왔다.
한국 남자 둘은 40 중후반~ 50 초반, 한 명은 40 초반 정도, 여자들은 젊은 편이다.
다들 어색하고 40 초반인 남자만 중간에서 한국어로, 베트남어로 분주하다.
그 분위기로 보나, 언뜻언뜻 들리는 내용이나... 결혼 소개업자다.
내 존재가 그들의 말수를 더 없게 만드는 듯 하다.
...그들의 인생이 행복해질 선택이 되길 바라며 호수로 산책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