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02. 급여

명랑쾌활 2014. 7. 14. 13:21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급여(=월급)는 직장인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오죽하면 직장인을 다른 말로 월급쟁이라고 하겠어요.

그런만큼 어떤 회사의 급여 체계야말로 그 회사의 마인드를 알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척도입니다.

인사/조직 체계, 상벌, 사규 등등 모든건 사실 급여 체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돈 벌자고 사업하는 거니까요.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시리즈 연재는 이른바 '속물 회사'가 대상입니다.

사회 환원이나 인간 경영 등등의 철학이 있는 회사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다수의 회사들이 철학 따위는 없고 돈 벌어 먹는 것만이 목적이니, 제 글이 꽤 보편성이 있겠네요.

다음의 글도 속물 회사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급여 책정에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는데, 근본적인 지향점은 단 하나, '최대한 적게' 주는데 있다.

 

직원의 급여는 그 직원의 회사 기여도에 비례한다?

"천만원을 벌어다 주는 직원에게 백만원 주는 거고 1억 벌어다 주는 직원에게 천만원 주는 거다."

이런 경영 철학을 설파하는 사장들이 간혹 있다.

새빨간 개소리다. (물론 정말 그런 사장들도 없지는 않다)

저딴 소리 하는 사장일수록 급여에 인색할 가능성이 높다.

영업직이 아닌 이상, 어떤 직원이 하는 일이 천만원 값어치인지 2천만원 값어치인지를 어떻게 따지겠나.

많이 줄테니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적게 받는데 불만 갖지 말라는 핑계로 쓰는 말이다.

 

회사와 직원 중, 누가 더 아쉬운가에 따라 달렸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그럴거 같지만 그건 거래를 파기할 권리가 양측에 동등하게 있는 상거래 따위에나 적용될 법칙이고, 회사와 직원 사이는 언제나 직원이 더 아쉽다.

회사는 태생적으로, 직원 하나 없다고 망하지 않는걸 전제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떤 직원이 있다고 해서, 붙잡겠다고 흥정하듯 급여를 올려주겠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만 직원이 얼마나 아쉬운 처지이냐에 따라, 최대한 적게 책정하는데 감안되는 기준일 뿐이다.

가령, 동일직급 직원 중 한 명은 미혼, 다른 한 명은 기혼이라 처자식이 있다고 치자.

처자식이 있는 직원이 가계지출이 많으니 가급적 더 잘해줄까?

아니다. 회사는 그리 인간적인 곳이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처자식이 있든 없든 동일하며, 오히려 이직이 쉽지 않은 처지인 기혼 쪽이 희생을 강요 당하기 쉽다.

일에 미혼과 기혼이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기혼을 선호하는 회사들이 있다.

'미혼은 쉽게 그만두고 기혼이 책임감이 있다'라고 하는데 개소리다.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많은 회사라는 뜻이다.

 

몸값을 높이는 방법은 이직이 정답이다.

말단부터 올라온 과장과 외부에서 스카우트로 들어온 과장, 둘 중 급여가 높은건 당연히 외부에서 온 과장이다.

말단에 100만원 받았는데, 대리 달고 일 잘한다고 한 번에 50만원 불쑥 올려줄순 없다.

회사는 조직이 우선이다.

제아무리 일을 잘해도 조직의 룰이란게 있고, 다른 조직원들의 반발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과장은 그 룰에 예외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착시 현상이 있다.

말단 신입으로 들어와서 업무능력이 향상된 경우, 고용주는 능력 향상이 회사 덕분이라 생각하므로, 그만큼 다소 적게 책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직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놈 데려다 키웠더니 배신한다'고 욕하는 고용주가 보통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 데려와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말단 신입 때 급여를 조금 줬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그밖에 연봉협상제, 인센티브 등등, 급여에 관련된 모든 제도는 거의 급여를 '최대한 적게' 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회사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조직이니, 헛된 희망을 갖지 않는게 좋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더 받을 수 있다면 이직하는게 현명한 처신입니다.

너무 자주 이직하면 당연히 안좋지만, 그렇다고 회사가 알아서 더 챙겨줄리도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의리 들먹이는 회사는 언제든 몸 뺄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들먹이지 않고, 진정한 의인은 의리를 들먹이지 않습니다.

일을 하면 그에 '합당한' 돈을 지급하는게 회사와 직원의 가장 상식적인 관계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고려해 볼 순 있어도 당연할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