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깡패들 세싸움

명랑쾌활 2014. 4. 7. 10:24

시골마을에 인근 깡패란 깡패들이 다 몰려왔다.

어느 신규 업체가 폐자재와 쓰레기 처리권을 어느 조직과 계약했는데, 지역의 다른 조직이 항의하면서 일이 커진거다.

차 타고 지나가며 눈에 뜨인 깡패들만 100명은 훌쩍 넘었다.

인근 지역의 아는 놈들은 다 불러 모인다고 한다.

서로 대치하고 노려보지는 않고, 길 저편의 상대 조직 무리를 흘끔흘끔 보며 자기들끼리 건들건들 웃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나가는 차 내부도 유심히 들여다 보는데, 마주친 눈빛이 번들번들하다.

겉모습만 이까짓 쯤이야 하는 허세일뿐, 싸움 직전의 아드레날린 충만 상태다.

뭐 하나 터지는 순간 통제불능으로 빠질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베레모에 복장을 갖춘 치안유지군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그 근처로 각목이나 팔 길이만한 정글도를 든 깡패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우글우글 한데, 딱히 해산시키거나 무기를 압수하진 않는다.

하긴, 자극하는 순간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 일단은 이 상태 유지하다가 조용히 해산하길 바랄거다.

 

인니는 한국과 달리, 경찰 외에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인이 따로 있다.

인니는 조용하다가도 일단 소요가 벌어지면 기물 파괴는 기본이고, 약탈이나 방화, 자주는 아니지만 참수 살인 등도 벌어지기 때문에 경찰만으론 치안 유지력이 부족하다.

옛날 부족 전쟁의 야만성과 잔인성이 아직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심각한 지역에서 50m 정도 벗어나니, 마을 사람들이 다들 나와 수근거린다.

그들도 일이 터질 지역에는 접근하지 않는다.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아예 심각지역 방향 차선을 막고 다른 골목으로 우회를 시키고 있다.

 

 

이번 일은 신규 업체의 운영 미숙 탓이 크다.

외국기업도 아니고 현지기업이라는데 어째서 일을 그리 서툴게 처리했나 싶다.

업체의 폐기물과 폐자재 처리 문제는 전적으로 업체의 권리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업체가 어떤 지역에 있는 한, 그 지역의 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본주의 법치국가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영역에 대한 부족의 권리'라는 의식이 사람들의 저간에 깔려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영역'은 법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법이 규정하고 보장하는 토지에 대한 등기 권리, 행정구역, 사유재산 등등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마을(부족)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지역' 이란 의미다.

밀림의 원시부족들 간의 영역과 비슷하다.

사냥 중 도망가는 멧돼지를 쫓아 다른 부족 영역에 들어가면 침범했다는 개념이라고나 할까.

문명사회 법치국가라지만 인니는 아직도 트럭이나 건설 자재 등이 마을 내부로 들어가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물론 법적 근거는 전혀 없다.

 

보통 폐자재 처리는 그 지역에서 제일 끝발 좋은 사람에게 처리하게 하고, 업체는 완전히 뒤로 빠지는게 좋다.

끝발 좋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마을 촌장일 수도 있고, 관할 경찰이나 군인, 깡패 두목일 수도 있다.

촌장인줄 알고 일을 맡겼는데, 사실은 깡패 두목이 더 힘세거나 한 경우가 되면 곤란한 상황이 된다.

깡패 두목이 왜 자기한테 안 맡겼냐고 업체에 따져도, 촌장은 깡패 두목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업체가 고스란히 당한다.

촌장이 책임지고 나서서 해결하거나 물러난다? 그런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업체의 '부탁을 받고 해준' 상황이기 때문에, 자기 능력 밖의 일은 책임질 생각이 없다.

깡패 두목 제어하는 일이 바로 자기 능력 밖 일이다.

그렇다고 업체가 촌장 배제하고 깡패 두목에게 일을 맡기면 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번엔 촌장이 체면 상했다고 업체를 괴롭힌다.

깡패 두목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그건 촌장과 업체 간의 문제고, 아무리 깡패 두목이 힘이 세도 촌장은 촌장 나름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역 룰에 따르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될까.

법이 보장하는 권력이 아니므로, 법을 벗어난 응징이 따른다.

대표적인 예가 직원들 출퇴근할 때 겁주고 협박하기다. ㅋㅋ

업체 건물에 돌을 던지고 정문이나 담벼락에 낙서를 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건 당신 탓이므로 내 행동은 나쁘지 않다'라고 인식한다.

일부만 그런게 아니로 모두 그렇게 생각하므로, 악행이 아니다.

 

업체는 억울하고 분통 터지겠지만, 내 폐자재이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니들 영역이니 니들 이권은 니들끼리 알아서 정하고, 우린 적정선의 댓가만 받으면 누구든 상관 없다'라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옳고 그름은 다수결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기원 전에 이미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의 격언은, 글로벌 시대에 더 무게를 갖는다.

한국인 자신의 가치관과 옳고 그름은 전세계 보편의 룰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영역의 룰이라는걸 자각해야 한다.

날개 달린 인간들 사는 곳에 가서, '왜 여긴 위험하게 높은 곳에 난간도 없냐'고 따지는건 미련한 짓이다.

그 꼴 열통터져 못봐주겠으면 시비를 걸 일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야지.

 

인니 온지 얼마 안돼서 '한국은 저런데 여긴 왜 이 모양이냐'고 깝작거리는 인간들.

한국에서 사회 돌아가는 꼴 어지간히 알고, 직장 생활 잔뼈 굵어 나름 인정 받는 위치였다는 자부심도 있을게다.

자기 지나온 삶에 대한 자긍심은 당연하다.

문제는 직급이 곧 능력의 척도이자 인간 우월함의 기준이라는 착각이다.

대리보다 과장이 속이 깊고, 과장보다 차장이 아는게 많고, 차장보다 부장이 뛰어난게 당연하다는 착각.

실행에 앞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고, 판단력의 정확성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비롯된다.

정글에 와서 사막의 잣대로 판단하고 강요하는 짓은 어리석다.

상황 인식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거 잘못 됐네', '저거 맘에 안드네' 고집 부리고, 그러다 일 터지면 자긴 수습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해보라고 닥달하고.

떼쓰는 어린애다.

똥오줌 어디다 싸야 하는지도 모르고, 싸질러 놓은거 자기가 치우지도 못하면 그게 어린애 아닌가.

 

여긴 수 틀리면 백주대낮에 깡패들 몰려와서 목에 시퍼런 정글도 들이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나라다.

뭐 하긴, 인니 관점에서 보면 윗층이 쿵쿵 거린다고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한국도 못지 않게 엽기적인 나라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