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Belitung II] 01. 동부 쪽에 한 번 가볼까?

명랑쾌활 2014. 1. 15. 17:09

일은 자기 소모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부류도 드물게 존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은 '일'이죠.

소모했으면 충전해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 여행입니다.

한 번 다녀오면 한달 정도 양이 충전됩니다.

한국에 가면 두 달 정도 양이 충전됩니다.

아무데도 안가고 부모님 집에, 예전처럼,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다, 집밥 먹고, 해 떨어지면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이젠 누릴 수 없는 '예전 그 평범한 일상'이 최고의 여행입니다.

 

12월 초에 한국에 갔다 왔습니다.

평소 패턴대로라면 1월까지는 너끈히 지낼 양을 충전하고 왔는데, 12월 말에 방전되어 버렸습니다.

12월 중순 본사 출장자를 필두로 연말 하루 전날까지 손님들이 릴레이로 왔거든요.

본사 출장자야 '일단 명분은' 일로 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 오너가 가족, 친구 데리고 여행 온건 참으로 씨발 오묘한 이벤트였습니다.

놀러 왔으면 호텔에서 자야죠.

회사 내 숙소는 거기 묵는 사람들에겐 일 끝나고 돌아가서 쉴 집입니다.

새벽에 회사 출근하고, 퇴근하면 오너 수발 들고, 다시 새벽에 출근하고...

회사 일이라는게 결국 지 돈 벌어주는 거니 일 잘 하라고 배려해 줄 만도 한데, 사장이란 족속들은 기본 개념 자체가 다르더군요.

일은 당연히 잘 해야 하는거고, 사장이 왔으면 직원이 수발 드는 것도 당연한 거다 라고나 할까요?

하긴, 회사도 내꺼, 건물도 내꺼, 숙소도 내꺼, 직원도 내꺼, 기사도 내꺼, 가정부도 내꺼, 여기 음식들도 내꺼,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꺼 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뭐든 다 자기 맘대로겠지요.

타인이 나와 같을 거라는 기대는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훌쩍 여행을 떠났습니다.

충전해야 하니까요, 나 자신을 위해.

 

 

 

거래하는 은행의 직원이 블리뚱 Belitung 출신이다.

딴중 빤단 Tanjung Pandan을 비롯한 서부 지역 여행했는데 좋았다고 하니, 동부 지역도 정말 좋다는 얘길 들었다.

자기가 동부 지역 출신이라나.

그냥 그런갑다 하고 곧이 곧대로 믿진 않는다.

무시하는게 아니라, 눈높이나 취향 등이 다르다.

어쨋든, 동부 지역도 가 볼 생각이 있었던지라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블리뚱 동부 지역을 잡았다.

 

블리뚱 제2의 도시인 망가르 Manggar.

 

저번 여행 막바지에 알게 된 공항의 Lotus 여행사에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볼까 했는데, 망했다.

교통수단만 알선해 줄 뿐, 실제로 직접 컨트롤 하는건 렌트카 투어 밖에 없다.

관광 지도도 없고, 그냥 어디어디 유명하다 말 뿐이다.

그래도 대답은 친절하고 돈을 바라지 않으니,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망가르까지는 개인 승합차로 갈 경우 무려! 35만 루피아다.

위 사진 같은 미니버스는 3만5천 루피아다.

단점은 가는 길에 승객들 집집마다 들려서 내려주고 간다는거.

바로 가면 40분 걸릴 거리를 한시간 반 만에 갔다.

승객들 면면을 보면 다 현지인이거나 고향집에 들르는 사람이다.

망가르에 여행 가는 외국인이 아직은 드물다는 얘기다.

 

싼 숙소는 너무 열악해서, 큰 맘 먹고 게스트호텔 Guest Hotel (이름 자체가 게스트 호텔임) 이라는 곳으로 정했다.

(자세한 정보는 아고다 참조)

새로 짓고 열심히 홍보 중인지 공항에도 광고판이 붙어 있고, Lotus 여행사에서도 여길 권한다.

게스트 호텔에 내리면서 운전기사에게 차비로, 잔돈 있으면서도 5만 루피아를 줘봤다.

그냥 받고 입 싹 씻으려 한다.

씨익 웃으며 잔돈 달라고 손 내미니, 만 루피아 짜리도 뻔히 있는데, 오천 루피아 짜리를 과장되게 두 번 주고서는 나머지 돈은 주머니에 쏙 넣으며 이제 됐지 않냐고 나를 쳐다본다.

이런 테스트는 지역 사람들이 어디까지 구질구질한가를 알 수 있는 유용한 척도다.

블리뚱 동부는 서부에 비해 별로란 얘기다.

 

방 상태 좋고 전망도 괜찮다.

프론트에 쓰여진 가격은 40만 루피아란다.

아고다에 나온 특가로는 32만 루피아 정도, 부가세 포함하면 36만 루피아 정도라는 얘기다.

가격 흥정하니 10% 깎아서 36만에 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살펴봤던 방 말고 다른 방을 준다.

 

시설은 다 같지만 구석의 전망이 엿같은 방이다.

바로 옆에 공사 중이다.

 

역시 인니는 '싸면 싼 이유가 있다'는 격언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나라다.

바꿔 말하면, 돈 내면 돈 값을 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한국 정서에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 만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만원짜리를 '말 잘했다고 아무 이유 없이' 9천원에 산다는게 더 이상한거 아닐까?

뭐 물론 그 만원이 일부러 높여 부른게 아니라는게 전제이긴 하다.

 

블리뚱의 가장 큰 단점은 여행 정보를 구하기 힘들다는 거다.

망가르 지역 역시 마찮가지다.

프론트에서 제대로 여행지 정보도 얻을 수 없었고, 지도도 없다.

심지어 지도 어디서 살 수 있는지도 답을 못한다.

어차피 각오했던 터라, 인터넷과 구글맵으로 미리 정보 알아둔대로 부지런 떨며 움직여 보기로 했는데...

 

비가 온다... -_-;

뭐 돈 받고 여행 탐사 온 것도 아니니, 숙소에서 뒹굴 거리면 그만이다.

밖에 나섰는데 비 오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능가.

 

저녁 되니 비가 그쳤다.

호텔 종업원에게 맥주 파는 곳 물어보니 오토바이로 데려다 준다.

이 친구들, 그냥 업무적으로 친절한게 아니라 정말로 친절하다.

여행 정보 가르쳐 주지 않는 것도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 거다.

 

걸어서도 5분이면 떡 칠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인니에서는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은 밥 먹는 곳이고 술은 안팔고, 술 파는 곳은 카페라고 하는데, 여긴 간판이 레스토랑이다.

 

스테이크도 있고, 볶음밥도 있고.

근데 구조가 좀 묘하다.

알고 보니 사진에 보이는 방들은 가라오케였다.

그것도 도우미 아가씨들도 불 넣어주는 중국식 가라오케다. @_@

어쩐지 도우미스럽게 입은 (사복인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드는 스타일이 있다) 아가씨들이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더라니. ㅋ

혼자 여행 다닐 때는 안전 때문에 매우 도덕적인(?) 여행을 하는 편이라 패스!

돈 많은 외국인 혼자! 덜렁덜렁 다닌다면 없던 나쁜 마음도 생기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풀이 많아 사람 발길 안닿는 곳도 많은게 인니인데, 묻어 버리면 어디서 찾겠능가?

 

고양이 한 마리가 밥 달라고 꿀꿀꿀~

 

밥 먹고 나와보니 건너편엔 아예 5층짜리 큰 건물이 가라오케고 그 옆으로 넓다란 야외 레스토랑이 있는 업소가 있다.

망가르 지역 중국식 가라오케는 이런 스타일인가 보다.

중국계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엔 어김없이 중국식 가라오케가 있다.

왠지 중국스럽다 싶은 공통점(인니에 좀 살아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다)이 있으면서도 지역마다 시스템은 약간씩 다르다.

이런걸 테마로 여행 다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