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부장과 임원이 대리와 과장보다 많은 회사

명랑쾌활 2013. 10. 5. 16:57

관리부서만 5개에 50여명 규모인데, 차장은 없고, 과장이 2명, 대리가 단 1명인 어떤 회사가 있다.

그나마도 전에는 과장이 아예 없었고 대리만 3명이었는데, 그 중 2명이 승진한 거다.

차장은 아예 없고 부장 2명, 이사 4명이니, 이른바 간부급인 차장부터 사장까지를 합친 수가 중간 관리자급인 과장, 대리를 합친 수의 세 배에 가까운 묘한 구조의 회사다.

(간부급 중 사장과 이사 1명 제외하고는 전부 공수부대(?) 출신이다. ㅋㅋㅋ)

이 회사는 6명의 계장과 (일반회사에 계장이라는 직급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16명의 주임이, 실제로는 다른 회사로 따지면 대리나 과장급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회사 최고관리자는 종종 두 가지를 자랑하곤 한다.

"우리 회사는 평사원도 바이어 과장과 상대하고, 주임 정도면 차장 부장도 상대한다."

"동종 업계 다른 회사에 우리 회사 출신 없는 곳이 없다. 우리 회사 출신인 것만으로도 일단 인정받는다."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우리 회사는 동종 업계에서 일에 비해 급여와 승진이 짜기로 유명한 회사다."

 

하청도 아니고, 원청의 상위직급을 상대한다는 것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가.

직급은 상당히 중요한 정보이며, 비즈니스 상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회사 간 업무 소통에 있어서, 상대방의 결정권이 어디까지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그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직급이다.

직급은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졌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특히, 군대식 조직문화 성향이 강한 한국 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대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대대장이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지, 보직을 보면 다른 부대 소속이라도 대부분 짐작 가능하다.

또한 직급은 권한인 동시에 책임이다.

비즈니스 의사소통의 예의 상, 상대방이 제시한 것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냐고 질문할 수는 없다.

상대방은 제시한 것이 나중에 말이 달라지지 않도록 책임질 수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데 직급은 좋은 지표가 된다.

"니가 비록 주임이지만 다른 회사 과장급 권한이 있으니 그리 알고 일하라."

궤변이다.

과장급 권한을 줄 정도면 업무 수행 능력이나 역할이 과장급이라는 얘긴데, 그럼 과장을 시키는게 정상 아닌가.

음식점 가서 2인분 같은 1인분 달라는 소리고, 알바 뽑아 놓고 정규직 같은 책임감으로 일하라는 소리다.

솔직히 속뜻은, 일에 비해 월급 적게 주고 싶어서 그러는거 아니냐는 거다.

 

동종 업계 타회사에 모회사 직원 없는 곳이 없다는건, 바꿔 말해 그 회사에는 동종업계 타회사 출신 직원이 없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그렇다.)

타회사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다는건, 모회사에서 문제를 일으켜 나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타회사에서도 채용할 만큼 능력은 괜찮다는 얘기다.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능력이 모자란 것도 아닌 사람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다른 회사, 그것도 동종 업계로 옮긴다는건 이유야 뻔하다.

일에 비해 보수가 적거나, 보수도 적고 일도 과도하거나. (그 외에는 개인사정 정도?)

거기다, 가뜩이나 다른 회사 가면 능력 인정 받는다면, 분명히 보수도 적고 일도 과하다는 소리다.

(실제로 그렇다.)

그러니 동종업계 타회사에서 그 회사로 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핵심 인재는 필요하다.

능력 있고, 충성심 강하고, 상황이 어려워도 묵묵히 일하는 인재.

푸대접 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직원을 잘해준다.

물론 승진이나 대우를 잘해준다는게 아니라, 그냥 말그대로 잘 대해준다.

잘해줘봐야 승진은 다른 회사에 비해 느린편이다.

혹자는 인재 검증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인위적으로 어려운 여건을 조성하고서,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해봐야 당위성이 부족하다.

어려운 여건에서의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어야 한다.

가족도 아닌데, 충분히 대우를 남들만큼 해줄 수 있는 상황임에도 푸대접을 하는 사람에게 충성을 하는건 정상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함으로 돈을 아끼고자 하는거고, 사람을 소모품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회사는 굴러간다.

누군가 떠나도 바로 충원하지 않고, 굴러가나 지켜보고 도저히 안될거 같으면 그제서야 또 다른 사람 뽑아 넣으면서.

직원 떠나는 바람에 일은 늘었는데, 거기다 새로 들어온 사람 교육까지 해야 하니, 남아있는 직원들은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동병상련의 의리는 있다.

떠난 동료 부러워 하고, 잘 되길 바란다.

왜 떠나는지, 떠나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안다.

남은 사람은 자기 처우가 불합리한거 몰라서 있겠나.

직장을 옮긴다는건, 능력이 '보통'인 사람에게는, 가뜩이나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언젠가 자기도 이 불합리한 굴레를 벗을 수 있기를 바라며, 또 하루를 참아 넘긴다.

그걸 가지고 소위 윗분들은 나간 놈은 근성이 글러 먹었다느니, 능력이 부족하다느니 욕을 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훌륭한 인재인양 추켜세운다.

소위 아랫것들의 침묵의 동의와 약간의 맞장구, 웃음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어쨋거나 저쨋거나 회사는 굴러간다.

 

불합리한 처사를 하는 회사가 잘못된 것인가, 그 불합리한 처사에 불만을 갖는 직원이 잘못된 건인가.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고, 그런거 다 해주면 회사 운영 어떻게 하냐는 개소리는 집어 치우고.

해줄 거 안해주면서 회사 운영하려는 심보가 도둑놈이지.

원가 100원짜리 물건을 억지로 80원 주고 사는건 흥정이 아니라 강도질이다.

 

...그리고 여기엔 피할 수 없는 반전이 있다.

오너가 회사에 비전을 갖지 않은 회사라면 저런 구조가 맞다.

회사가 세계 일류 기업 어쩌고에 관심 없고, 그저 그럭저럭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면, 왜 인재에 욕심을 내겠나.

그럭저럭 굴러가게만 할 그저그런 직원들이면 충분한거다.

그런 오너 의외로 많다.

사업으로 버는 돈은 별 관심 없고, 그 외의 것으로 돈을 버는 오너.

오너가 잘 몰라서 그런거 아니다.

돈에 관한 한, 기업체 오너의 관념은 일반인과 차원이 다르다.

언젠가 그에 대해서도 다룰 일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