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Manado는 섬 이름이 아니다] 4. 탈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랑쾌활 2012. 5. 20. 17:27

뭍으로 나가는 배는 7시 반까지 밑의 해변으로 가면 된단다.

뭍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어지간히도 설레였는지(?) 6시에 발딱 일어났다.

 

그 동안 끼니를 떼웠던(!) 식당

광각을 올려서 찍은 사진이라 그나마 이렇게 밝게 나온 것이고...

 

실제로는 딱 이런 분위기였다.

부나켄을 떠나는 나를 하늘도 축복해 주는지, 마지막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아직 밥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비내리는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고양이 가족이 내 숙소 건물 건너편의 안쓰는 건물에 워글워글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잘 보면 사진 한가운데 의자 위에 몽글몽글 모여있다.

어미 고양이 한 마리에 새끼들 5~6마리, 간혹 한 마리씩 밀려 떨어지곤 한다.

 

7시 반이다.

아직도 아침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그런갑다 하겠지만, 난 오늘 부나켄을 탈출하는 사람 아닌가?

배가 정시에 출발할 리는 없지만, 행여 정시에 출발해서 갖히는 일을 끔찍하다.

그래서 현지인 숙소 가서 사람을 부르니 거짓말쟁이 스탭 아가씨가 나와 지금 밥 먹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 야, 이 썅%%$#@*&%$$##것아,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냐!"

...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 나도 밥 먹고 싶다"고만 했다.

인니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딱히 손님 엿 먹이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자기들 밥 먹기 전이라 손님 끼니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것 뿐이니까.

이 숙소의 아침시간은 7~9시인데, 그 의미는 7~9시 사이에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7~9시 쯤에 음식을 차릴테니 차리면 먹으라는 뜻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엔 8시에 내 방으로 와서 밥 먹으라고 불렀었다.

9시까지 기다리거나 하지 않고, 8시에 밥 차려 놨으면 8시에 먹어야 하는 거다.

 

7시 37분,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1분마다 시계를 보고 있었다.)

서양인 하나가 식당에 나와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다.

나도 오늘 탈출하는게 아니었으면 그랬을 거다.

 

7시 40분, 거짓말장이 스텝 아가씨가 어슬렁 어슬렁 나온다.

그러나 밥 차릴 생각은 없다.

빗자루로 바닥이나 슬슬 쓸고 있다.

저언혀 급한 기색이 없다.

 

7시 50분, 아침 끼니인 토스트가 나왔다.

그런데... 서양인에게 덜렁 줘버리고는 현지인 숙소로 간다.

쫓아가서 내 거 안주냐니까, 아~ 이러면서 그때서야 준다.

저언혀 미안한 기색 없다.

이로서 이 숙소에 대해 갖고 있던 그나마 얼마 안되는 긍정적인 감정도 깔끔하게 지울 수 있게 되었다.

 

50분을 기다려, 2분 만에 아침 끼니를 해결하고는 미련 없이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떠날 때는 방긋 웃어 주며 고맙다는 말 한 마디는 남기고 떠난다.

이제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굳이 뭐라 해서 뭐하겠는가.

혹시라도 내 말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더 나은 사람이라도 되면 내 기분이 얼마나 엿같겠나.

그냥 평생 살던대로 그렇게 살면 될 일이다.

 

헐...

세계적인 청정바다인 부나켄 해변의 아름다운 정경... -_-;

 

내가 도착한 날이나, 2일째에도 해변이 이렇지 않았고, 이 쓰레기들이 하루 만에 간단히 쓸려 나갈 것도 아닐 것이다.

매일 어제처럼 바닷물이 들이치는 게 아니라, 하필 만조 때였던 모양이다.

부나켄과 난 서로 꼬인 팔자인가 보다.

 

어제 파도의 규모나 쓰레기의 흔적으로 보아서, 이 해변 집 계단까지 파도가 들이치지 않았나 싶다.

만조 때 잘 잡아서 여자친구와 여기서 묵는다면 10개월 후에 식구가 늘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보아하니 전기도 안들어오게 생겼는데다가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잘 차려진 밥상이다.

 

요 넘이 나를 탈출시켜줄 보트인가 보다.

7시 반까지 내려오랬는데 현재 시각 8시, 아무도 나온 사람 없다.

그러나 화가 나거나 하지 않는다.

나와 봤는데 아무도 없고 배도 없는 것보다는, 아무도 없고 배만 있는 편이 긍정적인 상황인 것이다.

 

8시 20분 쯤, 옆의 비싼(?) 숙소에서 서양인 남녀가 어슬렁 어슬렁 나온다.

내가 묵었던 숙소의 투숙객들은 퍼블릭 보트마저도 꼽사리인가 보다. ㅋ

 

꼽사리든 뭐든 그딴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부나켄을 떠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파노라마 코티지로부터 해변을 따라 약 5분 정도만 더 갔으면 이 숙소에 묵을 수 있었다.

앞바다에서 스노클링 정도만 즐길거라면 이 숙소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더 상황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사람은 선택을 잘못해서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는, 다른 선택에 대해 막연히 긍정적인 생각을 품게 마련 아니던가.

 

스노클링 하기 좋아 보였던 숙소를 마지막으로 해변이 끝나고, 이제 해안선도 그냥 밀림으로 덮였다.

어제 꾸역꾸역 동쪽 마을을 갔다면 저 밀림을 헤치고 갔을 것이다.

 

부나켄 동쪽 끝단에 가까워지지 이제 좀 사람 사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가운데 푸른색 둥근 물체는 이슬람 회당의 모스크 지붕이다.

주민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인 섬에 있는 이슬람 회당, 인니의 종교에 대한 관용을 나타내는 좋은 예다.

 

그러나 관용은 관용이고, 일단 가장 좋은 위치에는 당연히 교회가 있다.

저 교회 자체도 괜찮은 볼거리일듯 한데 못 가본 것이 좀 아쉽긴 하다.

그러나 내가 다시 볼 일이 있을까?

 

마나도에서 보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저 교회가 있다.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푸욱 덮힌 구름.

부나켄을 향할 때와 극과 극이다.

그 때만 하더라도 늘 날씨가 그렇게 좋은 줄 알았다.

 

어흐흐흐흐흐흐흑~ 육지로 나왔다.

 

비행기편은 내일이라 어차피 하루 더 묵어야 한다.

바다 생각하며 온 마나도, 그러나 당분간 바다는 지긋지긋하다.

미련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 근처 Novotel로 갔다.

 

* 마나도 택시는 외국인에게는 미터기가 아니라 100% 요금 흥정을 한다.

미터기보다 싼 요금으로 태워주겠다는 운전사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나.

마나도 항구부터 공항까지는 5만 루피아를 불렀는데, 실제 미터요금은 3만 5천 루피아 정도 나온다.

미터기로 가자고 하고 4만 루피아만 줘도 서로 기분 좋게 끝낼 수 있다.

 

처, 천국이닷.

미친듯이 부지런히 뒹굴뒹굴 쉬어 줄테다!!

 

마나도 Novotel 일반객실은 예약없이 처들어가서 55만 루피아에 끊었다.

어느 도시에 있느냐에 따라 틀리겠지만 대체적으로 Novotel이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