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뜬금 여행 - 또바 호수 Danau Toba] 04. 스쿠터 롸이딩 II - 가지 말라는 곳으로

명랑쾌활 2011. 11. 7. 02:08

2단계 코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1단계 코스 못지 않게 경치도 좋았고, 길만 따지면 더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는 코스였다.
관광객들이 가이드나 호텔 직원의 권유를 잘 따라서인지, 관광객이 드물게 오는 모양이었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이 나를 보는 표정에서, 신기한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더 강했다.

짓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요즘 대세인 뉴웨이브 미니멀리즘 컨셉인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교회.

결혼식하는 곳이 있어서 잠시 멈춰서서 찰칵.
한순간 신랑신부보다 더 주목 받는 존재가 되었다.
확실히 외국인이 드물긴 드문 모양이다.
덤으로 붙잡아다 결혼 시킬듯한 시선집중이 무서워 얼른 자리를 떳다.

한국 버스 개념의 저 봉고차 버스도 다른 곳과는 달리, 지붕에 바리바리 짐들이 쌓여 있었다.
인구에 비해 오토바이 수가 적은 모양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테고.

저 멀리 오는 봉고차 버스에는...

애들이 바글바글.
아주 열광들을 한다. ㅋㅋ

사모시르 섬의 대세는 지붕타기다.

버스 한 대 서고 저만큼까지 올라타는데 10~15초 가량 걸렸다.
(버스 서고 애들 달려드는 거 본 순간, 부랴부랴 스쿠터 세우고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서 전원 켜고 찍은 사진이 이거임)
무슨 개미떼마냥 사방에서 우와아~~~ 달려들어서 후다다닥 올라타는 광경이 진짜 신기했다.

슬슬 도로 포장 상태가 이상하다.
비포장 도로는 아니고, 포장했는데 벗겨진 거다.

뭔가 있을 법한 호수 위의 무언가.
바위섬에 묘를 만든 것 같았다.

거의 사진급 퀄리티의 동판부조로 고인 부부의 영정을 새긴 묘.

길이 점점 더 상태가 안좋아 진다.
마주치는 현지인의 표정도 점점 더 서프라이즈 해진다.

도로 상태도 안좋은 낙후된 곳이지만, 기계로 탈곡하고 있었다.
소는 저 뒷편에서 놀고 있다.

이정도면 진정한 시골길에 들어 섰다고 생각했다.

쇠똥구리 스물 댓 마리 정도는 행복해 할 듯한 규모의 왕건이가 길바닥에 떡!하니 시골 정취를 북돋는다.

필시 저 놈들 중 한 놈일 것이다.

애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난리길레 찍었더니,

어디선가 한 놈이 스윽 껴든다.
안찍으면 그날 밤 일기에 쓸가 무서워 한 장 더 찍었다.
사진 찍고 나서 나한테 땡큐~ 라고 외치는 아이들에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떤 지역은 사진 찍으면 돈 달라고 한다.
인니라고 뭐든 돈을 요구하지는 않나 보다.

낙후된 시골에서는 아이들도 유용한 노동력이다.
가벼운 것이라도 뭔가 운반하면서 제 몸 가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 노동이란, 선택이나 어린이 권리 따위의 문제가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애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냐고?
절대 아니다.
인간은 상대적인 기준에서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 느낀다.
스스로 만족하는 인간을 외적인 잣대로 제단하고 동정하는 것은 대단히 큰 실례다.
교육을 함으로써 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준다?
글쎄... 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무슨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게 더 나은 삶이 어떤 삶인지도 난 아직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 행복이란게 도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언제 누구의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냐고.

적어도 위생에 대한 교육을 함으로써 수명과 생존율이 높아지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다.
보이지 않는 세균을 인식하고 피하느라 스트레스를 택하는 미국인들은 세균을 피해서 행복해 하고 있을까?
아니, 오래 사는 것이 꼭 행복한 것일까?
죽음=불행일까?

손가락만한 MP3를 주머니에 꼽고 다니며 어디서든 음악을 즐기지만, 두부 반 모 만했던 워크맨, 파나소닉을 애지중지 하던 그 시절보다 더 행복한건지 난 모르겠다.

저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난 저 아이를 보며 문득 이렇게 축복한다.
" 가급적 오랫동안, 네 삶이 불행하다 느끼게 할 상대적인 것들과 마주치지 말기를..."

똥 한 번 싸면 파묻힐 정도로 거대한 소를 자연스럽게 몰고 다니던 아이.
사진 찍으려고 들이대니 소 궁뎅이에 손을 올리며 포즈를 취한다.
임마, 그러다 파묻힌다...

세갈림길이 나왔다.
왼쪽길, 정면길, 그리고...

우측으로 가면 항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난 당연하다는 듯이 정면 길로 달렸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내 행동이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길을, 왜 별 생각 없이 사진 두 방 찍고 바로 정면으로 달렸을까.
오토바이라는 물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좌우 살피지 않고 앞으로만 달리게 하는 마력이라도 있나 보다.
덕분에 정말로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