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뜬금 여행 - 또바 호수 Danau Toba] 03. 스쿠터 롸이딩 I - 가라는 길로

명랑쾌활 2011. 11. 1. 19:18

사실 또바 호수를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스쿠터 롸이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발리, 롬복 여행 후 좋았던 기억으로 계속 남은 덕분이다.
일전에 롬복 여행기에서, 롬복이 스쿠터 롸이딩하기 최고라고 했었는데... 순위가 바뀌었다.
사모시르가 롬복보다 더 좋았다!!
이를 테면, 내가 정한 순위에서 (아직까지는) 또바 호수가 세계 최고라는 거다.

스쿠터 롸이딩 코스

숙소 매니저와 전날 있었던 대화

" 스쿠터 여기서 빌리면 얼마냐?"
" 하루 8만 루피아다. 몇 시에 빌리던 무조건 저녁 6시까지다. 시간 조금 넘는건 상관없는데, 너무 넘기면 시간당 2만 루피아 추가된다."
" 내가 알기론 7만 루피아인데?"
" 올랐다. 우리는 기름 꽉 채워서 주고, 그 기름 다 써도 된다."
" 에이, 무슨 소리야. 두 달 전에 여기 온 내 친구가 7만에 탔다는데."
" 8만 이하로는 절대로 안된다."
절대로라는 말을 하도 강렬하게 강조하길레 씨익 쪼개며 내일 얘기하지고 했다.
그리고 산책 나거서 여기저기 랜탈가게에 써놓은 시세를 살펴보니 7만5천 루피아였다.
흥정하면 7만 루피아 맞다는 얘기다.

자와족이고 바딱족이고, 어차피 인니인은 인니인이다.
인니에서 장사하는 중에 하는 거짓말의 허용 범위는 한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관대하다.
한국 같으면 사기라고 할 만한 수준의 거짓말도 여기서는 속은 사람이 잘못인거다.
그런고로 어차피 믿지도 않았다.
인니에 산지 3년차, 이제 그다지 화도 나지 않는다.
예전엔 나도 한국돈으로 100원 정도도 깎으려고 아동바동 했는데, 그닥 그러고 싶지도 않다.
100원이 소중해서 깎는다기 보다는, 남보다 더 내는게 기분 나빠서 그랬던 거였는데, 이젠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속여서 더 받는 100원이 저들에게는 큰 가치인지 모르겠는데, 사실 난 그렇게 아동바동할 정도의 가치는 못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여행 중에 흥정하는 것도 재미라고들 하는데, 내 성격과는 안맞는다.
전혀 재미있지도, 재미있어 질 기미도 없다.
시세의 20%, 혹은 원화로 3천원 이하.
바가지 허용치로 딱 요 정도만 정해둔다.
그리고 대개의 흥정에서 저 정도 선을 부르면 짜증나게 지분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팔기 마련이다.
가끔 지분거리는 것들도 있는데, 싱긋 웃고 미련 없이 돌아서면 된다.
그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은 바로 옆에도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스쿠터를 빌렸다.

신분증 맡기거나 따로 또 이름 적거나 하기가 귀찮았다.
섬 둘레로 롸이딩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빵우루란 Pangururan 까지만 가고 그 이상은 길이 좋지 않으니 가지 말랜다. (상단 지도 참조)
빵우루란은 사모시르 섬의 주요 관청들이 모여있는 '마실'같은 곳이다.
특히, 오난 룽구 Onan Runggu (지도 상 8시 지역) 일대는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말랜다.
경찰이 외국인 잡아서 삥 뜯는 일은 없고, 심지어 헬멧도 안써도 뭐라 안한댄다.
혹시 잡으면 외국인이라고 하면 보내 준다는데... 혹시 몰라서 뒷주머니에 각각 5만 루피아 씩 접어 넣었다.
신뢰와 대비는 별개다.

돼지고기와 계란을 곁들인 토스트
먼 길 떠나니 든든하게 먹자고 시키긴 했는데... 어떻게 먹으라고 이딴 식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토스트 사이에 다시 잘 정리(?)해 넣어서 먹었는데, 의외로 토스트와 돼지고기가 잘 어울렸다.
역시 요리는 고정관념의 지배를 받기 쉬운 분야다.

어제 산책코스 종점인 갈림길

애매하면 일단 직진이다.

좁은 길을 지나 얼마지 않아 이런 멋진 길이 탁 트인다.

길 바로 옆으로 호수가 펼쳐져 있다.
가드레일 따위는 없다.

시골 마을도 지나고

탁 트인 벌판길도 있다.

아무리 시골이래지만 여기도 농사는 기계로 짓는다.
소는 그냥 풀이나 뜯다가 나중에 식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군데군데 독특한 구조의 교회들이 있다.
프리허그 자세의 그분 동상도 있다.

강슛 날리면 골인이 되던 아니던 대략 난감하게 생긴 구조의 축구장.
소가 열심히 관리한 덕분인지 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일종의 가족묘
갖가지 모양의 것들이 도처에 숱하게 있었다.

옛날 이 지역 왕의 무덤이라는데 별로 볼만 한게 없어서 그냥 스쿠터 위에서 사진만.

바딱족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라고 하기도, 매표소라고 하기도, 관리소라고 하기도 애매한 곳.
입장료 3천 루피아라는데 입장권이나 영수증 따위는 없다.
그래도 앞에 바구니에는 각각 인니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적혀있는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다.
뭐, 기대도 안했지만 당연히 한국어는 없다.
시간 나면 번역해서 갖다 줄까해서 일단 한 장 챙겨 두기는 했는데... 글쎄 어떨지 모르겠다.

바딱 전통춤 공연
매일 오전 10시 30분 ~ 11시 45분
원래는 11시 45분에 한 번 더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안한댄다.
인니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11:45 ~ 12:30에 한다.
아마도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인듯 하다.

단체로 봅슬레이 하듯이 앉아 일 보던 화장실이 아닐까 싶은, 곡식을 빻던 절구 같은 것.

바딱족 전통 가옥
앞에 세워둔 마네킹은 그냥 전시품이 아니라 공연 재료로도 쓰인다.
베란다(?)같은 곳 우측에 자세히 보면 사람 하나가 서있다.
마네킹이라기에는 너무 정교해서,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약 3분간을 흠끔거렸는데 전혀 움직임이 없었으나... 나중에 보니 역시 사람이었다.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듯, 몇 발짝 느릿느릿 걷다가 가만히 서있기를 반복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건물 내부 모습
이런 집에 할아버지할머니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살았다니, 그 와중에 아이는 쑥쑥 잘도 만들었구나 싶어 존경심이 든다.
어쩌면 밀림을 이용했을 수도 있겠다.
아이는 꼭 밤에 집에서 만들라는 법은 없다.
항상 고정관념을 경계하는 창의적인 생각에서 아이팟, 아이폰도 나온 거다.

왠지 포스가 느껴지는 소
자기 찍으니까 흠끔 처다본다.

옆집을 들어가보니... 이거이거 아무래도 진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전통공연하는 사람들이 옷 갈아 입는 곳일 수도 있겠다.

박물관 들어서면 정면에 떡하니 서있는 기둥
자세히 보면 맨 아래에 있는 사람은 거꾸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딱족 성격이 한국인과 비슷하다더니 이등병이 대가리 박는 것도 같았을 줄이야.
문화적 동질감이 사무친다.

유물들 모아놓은 전시관인데, 지금 사진에 보이는게 전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 걸려있다.

이 지역 최후의 왕의 가족사진인듯

바딱 문자
고유 언어와 문자까지 있는 종족인데, 지금은 인도네시아인이다.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서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인도네시아는 이런 나라다.
어느 종족 시골사람에게는 인도네시아어도 외국어일 뿐이다.
심지어 글자도 알파벳 가져다 쓰지 않았던가.
예전 발리 여행 중 어느 시골에서 인니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던 이유가 제대로 납득이 되었다.

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되기에는 아직 일러 보이는 옛날 교과서도 있다.

옛날 돈도 그렇고.

매표소에서 바라 본 큰 길 방향.
건너편에 초등학교가 있다.

아까 봤던 범상치 않은 구조의 축구장도 실제로 사용되는 곳이 맞나 보다.
똥볼 차서 바다에 빠지면 누가 줏으러 가야 할까?

무슨 대단한 사람의 묘.
사진을 대충 찍어서 잘 안나왔는데, 윗편 말과 사람 동상이 디즈니 삘이어서 신기했다.

롸이딩 1코스 종착점인, 사모시르 섬과 내륙이 만나는 지점의 4거리.

우측으로 가면 내륙인 거다.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반 정도 소요.
길 가에 스쿠터를 먼추고 서서 잠깐 고민했다.
돌아갈까? 아쉬우면 내륙만 살짝 찍을까?
그냥 직진하기로 했다.
가지 말라고 하니까 더 가고 싶다.
지금까지 오면서 느낀 분위기 상 그리 큰 위험은 없을 것 같다.
(그래... 위험은 없었다. 어려움이 있었을 뿐... -_-;;)

게다가 다른 교통수단도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직진이 맛이다.
유턴 따위 불편하고 재미 없다.
어차피 섬은 섬.
내륙으로 들어서지 않는 이상, 달리다보면 출발했던 곳으로 가겠지.
오른편에 호수를 끼고 달리면 길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그래! 세상 끝까지 달려 보자.
크하하하하하하하~~~~

...결과적으로 틀린 예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염려는 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