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Go East. 08. 브로모 Bromo. 멋진 풍경, 안멋진 인간들

명랑쾌활 2010. 10. 17. 15:52
* 내용 중에 '색히' 같은 욕이 좀 나옵니다.
저도 웃기려고 쓰는 거 말고는 욕은 자제하는 편인데, '사람'이나 '인간' 같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은 악질이라 도저히 못쓰겠습니다.
읽는 분들에 대한 예의는 분명 아닙니다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__)


벌벌 떨면서도 용케 잠 들었나 보다.
맞춰 둔 알람에 깨어 일어나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추위에 몸을 한껏 옹송거리고 자서 여기 저기 쑤신다.
이 열대지방 인니에서 참 진귀한 경험 한다.

던과 상의 끝에, 짐은 우리보다 덜 거지같은 숙소에서 잔 일행들 방에 부탁하기로 하고, 미련없이 싹 챙겨 나왔다.
아무렴, 잠글 수도 없는 방에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처음 내렸던 곳에 가니 하나 둘 씩 부시시 나오고 있다.
벌써 냄새 맡고 왔는지, 숄처럼 걸칠 수 있는 천을 파는 행상들이 달라붙어 호객을 한다.
올라가면서 호객하고, 거절했는데도 내려오면서 또 하고. 이건 뭐, 눈 마주치기가 겁난다.

저 편에 보이는 브로모로 올라가는 길에는 벌써 지프들이 바글바글 밀려있다.
그러나 우리 지프는 올 생각을 안한다.
어젯밤 우리를 인솔해 왔던 색히들이 뭔가 당황한 표정으로 어딘가 전화한다.
일행들이 눈빛으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또 대표로 나가 색히들에게 물어봤다.
" 왜 안오냐?"
" 차가 막혀서 그런댄다."
" 얼마나 걸린데냐?""
" 모른다." (책임지기 싫다는 뜻)
" 다른 차들 벌써 많이 올라갔다. 보통 이렇게 늦게 오냐?"
" 모르겠다." (모르긴 쥐뿔. -_-; 보통 이렇게 온다는 뜻)
" 일출 볼 수는 있는 거냐?"
" 충분하다. 걱정 마라." (왠 일로 장담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_-;;;)

바글바글한 지프들도 거의 사라질 즈음 지프가 왔다.
미안하다 이딴 소린 당연히 없다. 실실 웃는다.
말해 봐야 소용 없지만, 그 면상에 열받아서 물어봤다.
" 왜 늦었냐?"
" 차가 밀려서 그랬다."
" 뭔 일 있었냐? 늦게 출발한 거냐?"
" 아니다. 1시간 전에 출발 한거다."
" 이게 직업인데 언제 출발해야 늦지 않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 거 아니냐."
인상 딱 굳는다.
인니인들은 다른 사람 듣는데서 추궁하면, 그것도 변명할 수 없게 정확하게 추궁하면 무지 자존심 상해 한다.
하지만, 역시나 사과 따위는 없다. 그저 원한만 품을 뿐.

산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체크한다.
이것 때문에 그리 밀렸나 보다.
일반 차량은 통제하고 사륜구동 지프만 들어갈 수 있다길레 비포장에 급경사 길인가 보다 했는데, 여기저기 패이긴 했어도 포장도로다.
일반 차량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일반차량 중에는 급경사를 오를 수 없는 상태 불량의 차들도 있기 때문일까.
그런 거 한 대 만이라도 길 못 올라서 꿈지럭 거리면 엄청난 여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일반 차량도 출입 허가를 하게 되면 차량수에 비해 인원 수송 효율만 적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혹시나, 인니 특유의 '같이 먹고 살자 시스템' 때문은 아니라고 부인은 못 하겠다.. -_-;
그래도 산 정상까지 아스팔트 깔려 있는게 대단하긴 하다.
하긴, 워낙 관리가 안되서 그렇지, 이 넓은 땅덩어리에 어지간한 곳은 다 깔려 있긴 하다.

20여분 쯤 달려 차를 세우더니 다 왔다고 내리란다.
응? 전망대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 뭐냐? 우린 전망대까지 가기로 계약했다."
" 주차된 차들 때문에 못올라간다."
... -_-;;

두둥!
하긴, 포장 깔린 것만도 용하지, 어디 주차장까지 만들었겠나.
이게 다 이 운전사 색히 늦게 와서 이렇게 된 거다.

"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냐?"
" 한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하늘을 보니 해는 5분 정도 후면 뜰 것 같았다.
" 그럼 일출 못보는거 아니냐? 투어 계약할 때 일출 보여준다고 했다."
" 여기서도 일출 잘 보인다. 경치도 좋다."
콰광!! 여기서도 일출 잘 보인다... 여기서도 일출 잘 보인다... 여기서도 일출 잘 보인다...여기서도 일출 잘 보인다...
야 이 개%$#%%$#%$%#꺄!! 일출은 내 방 창문에서도 잘 보인다.
한국 같은면 멱살잡이 한 판 할 상황이지만, 그럴 순 없다.
최대한 비꼬는듯이 웃어주며, 코웃음 치고 돌아설 밖에.
일행들에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는, 어쩔까 잠시 망설였다.
15분... 걷는 속도의 세 배면 가능하다.
아무리 천천히라도 등산은 질색을 하는 나다.
하지만 가슴이 터질 듯이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미쳤지... -_-;)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기자 두 말 없이 같이 나서는 건 던 뿐이고, 나머지는 포기했다는 듯 뒤쳐져 천천히 오른다.
그러나, 열 터지는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오젝(오토바이 택시)들이 달라붙으며 호객을 시작한다.
설마 그렇진 않겠지만, 이들의 그 웃는 얼굴이 왠지 ' 오늘도 어김 없이 있는 뒤통수 맞은 봉' 을 보는 듯 해서 환장할 것 같았다.
억지로 웃으며 (아마 눈에선 광선이 나가고 있었을 듯) 그들을 뚫고 씩씩대며 올랐다.

날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인정하는 저질체력인지라, 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점점 앞서 나가던 던이 뒤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던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멀어진다.
(뭔 소설이라냐... ㅋㅋ)

이미 늦었다.
그래도 내친 걸음에 꾸역꾸역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고 귀에서 맥박 소리가 울려서 그렇지, 오르자 맘 먹으면 못 오를 것도 없다. -ㅂ-;

마지막 굽이에 늘어선 가게들.
저 길 끝머리를 돌아서니...

브로모가 빼꼼히 보인다.

전망대 입구에 바글바글 서 있는 오토바이들.
오토바이는 진입통제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전망대.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난간에도 이미 다닥다닥 붙어서 경치 감상에 여념 없다.
그래도 뒤 편에 줄 서듯 기다리면, 어느 정도 보다가 자리를 비켜 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난 어쩌다 걸려도 이딴 연놈들 뒤에 섰나 모르겠다.
인니인들이야 워낙 남 눈치 안보고 자기 할 거 다하는 사람들에다가, 사진 찍는 거 무지 좋아하기 때문에,
복장이 외국인이고, 머리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왠지 한국인 인듯 하여 뒤에 선 거였는데...
한국인들 중에도 간혹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인간들이 있다는 걸 깜빡 했다.

기다리길 20 여분, 꼼짝도 않는다.
이미 자기들의 세계에 빠졌다.
다른 자리들은 벌써 3 번 정도는 사람이 바뀌었다.
결국 옆 쪽에 기다리는 사람이 다 빠졌길레 거기에 가서 섰다.
인니 아가씨인데, 거짓말 절대 안보태고 브로모 배경으로 셀카질 30 방 이상이다. -_-;;
표정 각도 바꿔가며 환장하게 진지하다.
그래도 결국에 결국은 자리가 났다.
물론 옆 쪽의 바퀴벌레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하긴, 내가 줄 바꿨는데 그 쪽이 먼저 비었으면 더 열 받았을듯.)

오, 왠 머핀 케익이...
독특한 장관 덕에 그래도 마음이 탁 트인다.
보고 있자니, '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이런 저런 일들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같이...

적당히 보고 자리를 뜨면서 한 컷.
그 바퀴벌레들은 여전히 그 자리다.
아마도 이 날 중에 가장 오래 자리 지킨 것들일듯.
아무리 봐도 한국인 같은데, 제발 아니길 바란다.
너네가 한국인이면, 한국이 너무 불쌍하잖니.

내려가면서 찍은 전망대 입구.

요것이 말로만 듣던 에델바이스.
그냥 말로만 듣고 말 걸 그랬다.
한국인이 무궁화 보면 반갑듯, 스위스인들이나 보면 반가울까, 그냥 들꽃들로 보인다.

군옥수수! +_+b
강추다.
버터와 소금 소스도 괜찮고, 매운 소스도 괜찮다.
한국에선 왜 안파나 모르겠다.

우리 지프가 서있던 곳은 보이지도 않는다.
참 용케도 올라왔다.

이렇게 길 양쪽으로 줄줄이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내려가는 길에 전망이 좋아 보이길레 차 잠깐 세우고 찍은 한 컷.
브로모 발치로 힌두교 사원이 보인다.

두둥!
엄청 후달리면서 찍은 사진.
안전시설 따위는 없다.
삐끗하면 그냥 뒈지는 거다.
그것도 시원하게 한 방에 철퍼덕도 아니고, 떼굴뗴굴 굴러 쿠션 실컷 먹고 뒈진다.

스산한 느낌이 드는 브로모 앞 평지.
산 위에 이런 평지가 있고, 다시 그 중심에 브로모가 있다.
약간 무른 땅이 평탄화 작업이라도 한 듯, 넓게 펼쳐져 있다.

입구 쯤에 말들이 모여 있고, 어떤 사람이 단상에 올라 무슨 경매 진행하는 것처럼 마이크로 번호를 호명한다.
말 타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말하면 말 불러 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서로 경쟁해서 가격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그러는 건가 싶다.
여기저기 있던 정보와는 달리 그 새 올랐는지, 담합 가격은 7만 루피아.
5만 루피아가 납득할 가격이었기 때문에 패스.

족자에서 사귄 여행사 친구에게 들은 대로 힌두 사원까지 걸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쪽에서 조그맣게 흥정하는 사람들이 붙는다.
웃기는게, 그래도 7만 루피아 부른다.
그럴거면 내가 왜 여기까지 걸어와서 타냐, 흥정에 흥정을 거듭해서 5만 루피아 낙찰.

뭐 걷는 것 보다야 편했지만, 말 타는게 쉽지만은 않았다.
무게 중심이 옆으로 조금만 치우쳐도 떨어지려고 한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말 움직임에 맞춰 리듬을 타보려고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엉덩이, 허벅지도 점점 아파온다.
무협지에서 보면 말 타고 하루종일 천 리를 달렸네 어쨌네 하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제대로 느꼈다.

뭐냐, 그 외국 자본주의 부르조아 관광객 놈팽이를 보는 듯한 눈초리는?

죽음의 계단이 가까와 진다.
말은 저 앞까지만, 당연히 계단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데다 폭까지 좁은 계단을 꾸역꾸역 오른다.

브로모 화산 화구.
영화처럼 시뻘건 용암이 부글부글하는 광경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저 누리끼리한 부분들이 다 유황인가 보다.

치우기나 하는지 모르겠는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산을 이뤘다.
이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여기저기 곳곳에 널려 있다.
컵라면 용기들도 보인다.
브로모에 올라 먹는 컵라면이라... -_-;

역시나 안전시설 따위는 없다.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헛디디면 죽거나, 죽을 만큼 다치거나 둘 중 하나다.

머핀이 먹고 싶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말야... 인간들은 도대체 왜 이러니?

저 보이는 사원은 힌두교 사원으로 알고 있다.
(다니고 있는 BIPA 강사에게 물어봤을 때는 굳이 힌두교 사원이라고 할 수는 없고, 이슬람도 있다고 했는데... 웃기는 소리다. 저게 이슬람 사원이라고?)
자와 섬은 온통 이슬람 세상인데 왜 뜬금없이 힌두교 사원이 여기 있을까.
원래 이 근처는 발리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무슬림에 쫓겨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망가 발리 섬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브로모는 발리인들의 성산이다.

왠지 요상하게 서있는 말.
앞다리를 톡 치면 앞으로 머릴 처박을 듯한...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기다리기로 한 말과 마부가 보이지 않는다.
좀 기다리다가 던과 그냥 내려오는데 손님 태우고 올라오는 녀석을 만났다.
(어차피 길은 외길이다.)
방긋 웃으며 돈을 달랜다.
왜 거기 없었냐니까, 바빴댄다. 그리고 원래 이렇댄다.
총 계약한 거리의 5분의 2 정도 탄 셈이니 2만 루피아 주겠다고 하니까 펄쩍 뛴다.
올라가는 것 만 태웠으니 2만 5천 루피아 줘야 한다나.
이런 개*&*&^$^%^%^&!!!!!!!
이 색히는 원래 이럴 생각이었던 거다.

일행의 다른 사람들이 묵었던 숙소 방.
그나마 조금 낫다. 그래도 진동하는 곰팡이 냄새는 어디 가지 않는다.
프랑스 아가씨랑 호주 아가씨가 묵었던 방인데, 처자들 참 씩씩하기도 하지.

그 숙소의 욕실.

화장실.

다들 산 타느라 한바탕 땀 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씻지 않겠단다.
하긴, 욕실이 더러우니 씻을 마음이 안들겠지만, 안씻으면 너네도 더러울 텐데...
뭐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러라고 서양은 향수나 데오드란트 같은 것들이 발달했으니.
꿋꿋하게 샤워를 했다.

C발 눈물의 아침 제공을 기다리는 일행들.

몇 명이냐 물어보길레 대답해 주고는 난 샤워하고 왔다.
다들 볶음밥을 먹고 있다. (다른 메뉴 없다. 무조건 볶음밥이다.)
내거 달랬더니, 당황하는 눈치다.
그러더니 한 명이 오토바이 타고 휑하니 어디론가 간다.
이 샹노무 색히들, 재료 사러 가는구만.
조식 제공 15만 짜리 숙소라는 것은 다 개뻥이었다는 증거는 이렇게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내가 1년을 인니에 살면서 먹어본 볶음밥 중에 제일 맛없는 걸 먹는 경험까지 누리게 되었다.

우리가 묵었던 개거지같은 숙소의 간판.

우리를 프로볼링고에서 쩨모로라왕까지 실어다 나른, 이제는 좀 은퇴하셔야 할 듯한 승합차.

개떡같은 아침을 먹고 앉아 있자니, 우리를 여기까지 실어다 나른 사기꾼 졸개 브라더스가 슬금슬금 다가와서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 이제 어디 갈거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젠 화산 Kawa Ijen 이 좋으니 거기 가보랜다.
이 생퀴들, 그러면 그렇지. -_-;;
결국 또 호객이다.


* 말... 그냥 꾀부리지 말고 공판장 가서 정식으로 타시길 권합니다.
 얘네들, 악마들이에요.
 그런데 올라갈 때만 말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 올 거라면 저처럼 하시는 걸 권합니다.
 사실 올라가는게 은근히 힘들지, 내려오는 건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갔을 때 정식 가격이 7만 루피아였는데, 여전히 그럴 지는 모르겠습니다.
 10월 초 쯤에 갔던 후배 얘기 들어봤더니 8만 루피아에서 죽어도 안깎아 준다더군요. 
 인니 가격 체계는 수요와 공급에서 균형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입니다.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기 보다는 시간이 흐르면 무조건 올린다는 형식이죠.
 게다가 담합도 심한 편이구요.

** 말 타는 거 의외로 어렵습니다.
 말 중심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스르륵 미끄러져 떨어질 듯 합니다.
 승차감도 별로구요.
 조금만 놀라운 일 있으면 초음파를 발산하는 습관이 있으신, 곱게(?) 자란 여성분들은 조금만 숙고하시길.
 거기서 " 끼야아아아아악~~~!" 이런거 한 번 하시면 수십, 수백명의 다양한 국적의 인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실 겁니다. (뭐, 그러고서 쓰미마셍~ 하실거면 적극 권장 합니다.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