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Go East. 10. 발리 Bali 우붓 Ubud. 푸우욱 쉬다.

명랑쾌활 2010. 10. 26. 20:06
잠에서 깨어나 보니 - 아니 정신을 차렸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 오전 11시 쯤. 은근하게 왱알거리면서 천정의 팬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지난 이틀 간의 일이 왠지 꽤 오래 전 일 같다.
어쨌든, 이런 아침을 위해서 그 고생을 꾸역꾸역 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는 - 정확히는 오늘 새벽 - 몰랐는데, 저런 요상스러운 그림이 머리 맡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랄까 내용물은 참한데, 색조가 어째 좀 으스스...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묵었던 숙소 전경.

패밀리 홈스테이는 몽키 포레스트 거리에서 두 골목 옆인 잘란 숙마 Jalan Sukma에 있다.
근처에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가게는 거의 없는, 현지인 위주의 지역이다.
그래서 이 근처 숙소들은 장기투숙자들이 주로 묵고 있었다.

아침 식사와 함께 한적한 시간.

오늘 하루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푸우욱 쉬고 싶을 뿐이다.
마침 wi-fi가 제공되어 간만에 인터넷에 들어가 보기도 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침식사 종류는 7가지로 제법 다양했다. (최소한 일주일은 겹치지 않는다는?)
아무래도 장기투숙 대상 숙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점심 때도 멀거니 앉아 노트북 뚜드리고 있자니 간식도 갖다 준다.
달달하고 쫄깃하니 맛있었다.

가끔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 오기도 한다. (길 가운데)
이런 새라고는 닭둘기 밖에 못 봤던 도시인의 감수성에 비를 내려 주신다.

패밀리 홈스테이 입구.
이런 식으로 입구만 봐서는 숙박업소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곳이 많다.
전통적인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루 통째로 쉬고 다음날 천천히 산책을 나섰다.
몽키 포레스트 거리를 지나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다.

그 앞 도로.
이따금 오토바이 지나다니는 것 빼면 한적하다.

요것도 숙박업소다.

요건 숙박업소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원도 아니다.
그냥 가정집이다... 음, 하긴 발리에서는 가정집이 곧 사원이기도 하다.

이런 내리막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다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이런 쟝글이 펼쳐진다.
자카르타 정도는 아니지만, 물이 썩 깨끗하진 않다.

골목 옆으로 뜬금없이 나타난 논.
오리를 보고 있자니, 문득 노무현 전대통령님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우붓은 주거지와 상업지, 농경지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주택들 한 가운데에 뜬금없이 논이 있기도 하다.

그냥 걷다보면 여기저기 널린 것이 제단이다.
더군다나,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공물이나 향이 올려진다.

몽키 포레스트 입구답게 원숭이들이 나와 있다.
이 근처는 원숭이가 개처럼 흔하다.

우붓의 중심가, 몽키 포레스트 거리 Jalan Monkey Forest.
저 빠글빠글한 가게들이 모두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나 바, 상점 등등이다.
우붓이 내 마음에 쏙 든 이유 중에 하나가 호객이 없다는 것이다.
딱 우붓만 벗어나도 호객의 지옥을 헤치고 걸어야 한다.
왕궁에서 끝나는 이 완만한 오르막을 천천히 산책만 해도 좋다.
이 분위기, 인니에서 오직 우붓에서만 누릴 수 있었다.

몽키 포레스트 운동장 근처 일식집 킨타로.
보는 순간 <멋진 남자 김태랑>이 떠오른 건 나 뿐일까?

우붓의 밤 골목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마주치면 서로서로 인사를 하며 다닌다.
아직 전통적인 마을 구성원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붓은 한밤중에 어디를 다녀도 안전하다.
비록 컴컴한 곳도 많지만, 양아치들이 장난칠 만 한 곳이 없다.
소리 한 번 치면, 마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분위기다.
인니의 다른 지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물론 청바지에 서양풍으로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전통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못지 않게 흔하다.
이곳에서는 전통복장은 행사 때만 입는 특별한 옷이 아니라 평상복이다.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입는 것이 아닌, 그저 삶 그 자체다.
뮤직 스튜디오의 드럼 선생은 전통 복장을 입고 가르치고, 배우는 제자들은 롹이나 메틀 스타일을 입고 배워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반겨주던 숙소의 개.

인니는 대체적으로 개를 터부시하고 고양이를 좀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떠돌이 개 보면 패서 쫓고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발리는 그야말로 개판이다. (개를 모시는 제단도 있다.)
아마도 종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지간한 집은 집 지키는 개를 길렀다.
그 때문에 밤에 골목을 산책하면서 곤란하기도 하다.
저 멀리 이웃집 개들이 모여 어슬렁거리다가, 내가 근처를 지나가자, 다들 자기네 집 앞 대문을 떡하니 막고서 짖어댄다.
그러다 대문 앞을 지나치면, 슬슬 쫓아와서 뒤꽁무니에다 짖기도 한다.
대여섯 마리가 둘러싸고 짖어대는 걸 겪기도 했다.
개는 크건 작건 워낙 좋아하고, 잘 다룬다고 자신하는지라, 그럭저럭 지나치긴 했지만, 둘러 쌓였을 때는 속으로 제법 시껍하긴 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묵었던 숙소의 개는 나를 하루 만에 나를 알아보더라는 것.
한밤 중 골목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아유~ 귀여운 개새끼 같으니라구. (욕 아님. -ㅂ-)

* 이런걸 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걷는데 개들에게 둘러 쌓였을 때는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 요령이다.
절대 고개를 돌리거나, 손을 휘젓거나 하는 급작스런 행동은 금물이다.
진행 방향 앞 쪽으로도 알짱거릴 수도 있는데, 혹시 발에 치일까봐 멈춰 서거나 해서는 절대! 안된다.
멈춰서게 되면 다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게 될 뿐더러, 걸음을 멈춘다는 것 자체도 급작스런 행동에 속한다.
(대개 개떼에 갖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케이스가 이래서다.)
앞에 알짱거려도 정속도로 걸어가면 알아서 피하게 마련이다.
개들이 짖는 것은 공격의 의미가 아니라 경계의 의미일 뿐이니, 그에 대한 급작스런 반응은 오히려 개를 자극할 뿐이다.
단, 짖지 않는 개는 매우 위험하니, 눈 마주치지 말고 거리를 두고 돌아가길 권한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한국에서야 시골이 아닌 이상에야, 묶이지 않은 개 보기 힘들겠지만, 발리는 워낙 개판이라 참고가 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