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근황

집 근처, 그리고 상업지구 가는 길

명랑쾌활 2010. 2. 23. 20:52
집이 제일 좋습니다.
남산이니, 해남이니, 제주니, 스키장이니, 무슨 축제니...
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집이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그냥 일상이 제일 좋습니다. :)

12월이 어울리지 않게 겨울비가 온 어느 날.
아파트 2층인 우리집 복도에 나가 난간에 기대어 피우는 담배 한 대.
이곳에 있으면서 가장 그리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집을 나서 상업지구를 갈 때면, 하안1동 동사무소가 있는 뒷길을 이용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중앙선 없는, 그럭저럭 차 두 대 지나갈 만한 너비의 도로에 보도블록도 없던 길이었습니다만, 하안1단지가 재건축 되면서 떡하니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군요.
좋냐구요?
전혀요.
저건 보행자를 보호하겠다는 도로가 아니라, 마음 놓고 달리라고 차를 배려해주는 도로일 뿐입니다.
예전에 이 길을 차로 다닐 때는, 항상 보행자를 주의해야 했는데, 이제는 차량 통행에 방해된다고 보행자를 마음껏 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군요.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 울타리는 보행자 보호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차량 소통을 위해 보행자를 격리하는 분리벽일 뿐입니다.
한 사람의 운전자이기도 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물론 차량 전용 도로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길은 보행자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길은 걷는 자가 주인입니다.

예전 이 곳이 5층짜리 저층 아파트였던 시절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네요.
좋아졌다고들 생각하지만, 전 생각이 다릅니다.
1층으로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5개 겹쳐서 살게 만들었던 닭장을, 좀더 고급스럽게 꾸며서 30개 겹쳐서 살게 만들었군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꾸역꾸역 한데 모아놓으면 놓을수록 본성이 비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놓아 기르는 닭과 닭공장에서 집단사육되는 닭을 비교해 보세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전 이런 것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아니 이게 발전이기는 한건지 의심스럽습니다.
그저 단위 면적에서 창출할 수 있는 부의 합의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행위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딱 하나 마음에 드는게 있다면, 고개 최고점을 깎아 내렸다는 것 정도 일까요?
좌측의 버스 주차되어 있는 곳의 높이가 원래 고개의 최고 높이였습니다.
어지간하면 이 고개을 수시로 걸어 넘어다니는 제게는, 저로 인해 신체적 부담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그야말로 몇 년 간 이 고개를 수없이 넘어 다니던 사람 만이 느낄 수 있는 차이라고나 할까요?

길을 넓히기 위해 경사진 옹벽 부지를 제공한 댓가로, 구로 근로청소년 회관과 운동장은 그럴듯한 울타리를 얻었군요.
그래도 분홍색이라니... 미묘하군요.

이곳이 예전에는 그냥 왕복 4차선 도로였습니다.
지금은 왕복 6차선 도로에, 좌회전 대기용 도로와 우회전 이탈합류 도로까지 생겼군요.
좋냐구요? 전혀요.
4차선이었을 때도 빨랐던 차량 속도는 더더욱 빨라질테고, 길을 건너려면 행인들은 10M 정도 더 걸어야겠군요.
그나마 차량소통은 원활해지지 않겠냐 하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차량소통이 원활해지는 도로는 그 정보를 알게 된 주변의 더 많은 차량이 이용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막힐 때는 똑같을 뿐입니다.
또한, 이 도로와 이어지는 전체 도로를 일괄적으로 넓히지 않는 이상, 어딘가 병목 지점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 막힐 때는 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원래도 안막혔을 때는 빠르게 달리던 차들이 더욱 빨라질 뿐이고, 보행자는 건널 때 더 조심해야 하고 더 걸어야 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 이 도로를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는 운전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리 좋지는 않군요.

어디서 뽑혀 왔을지 모르는 나무들이 측은합니다.
그저 나고 자란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좋을텐데요.

일대에서 유일하게 남은 저층아파트인 철산 4단지.
조합 설립에 뭔가 잡음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결국 이 곳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대세겠지요.
30년을 저 곳에서 터 내리고 살던 저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요?
고이 뽑아 다른 곳에 심어지면 좋겠습니다만, 그동안 보아온 결과 그냥 속절없이 잘리고 뽑혀 사라지겠지요.
그 편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요.
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외면하진 맙시다.

경찰서 옆 담벼락 길
요기쯤 오면 상업지구에 거의 도착한 겁니다.
차라리 넓히려면 이 곳을 넓혀야 합니다만, 이미 지가가 너무 올라버렸습니다.
결국 이곳은 병목의 시작 지점이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광명시 행 공항버스를 타고 오면, 이 곳에서 내립니다.

아파트 옆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나라가 그나마 정말 자랑할 만 한 것 중 하나가 학교 운동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땅값 높은 서울 한복판이라도, 쥐밤톨 만큼이라도 운동장은 꼭 만들어야 하죠.
학교 = 운동장 있음 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외국 여행가면 학교 건물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체육관은 있을 지언정, 운동장은 없거든요.
통제를 받으며 사용해야 하는 체육관과 개방되어 있는 운동장은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애들은 뛰어 놀아야죠.
어차피 고등학교 때가지 빡세게 뛰어놀던 체력이 평생 가는 법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도 어디 그렇게 빡세게 뛸 일이 있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수업 시간이 아니면 운동장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 때만 하더라도 학교 끝나고도 모여서 뽈도 차고 했는데요.
이젠... 과외 받으러 다녀야겠지요.
영어도 잘하고, 악기 한 가지 쯤은 다룰 줄도 알고, 학습수준이 높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애들이 그저 측은할 따름입니다.
그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은 언제든 존재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라...
그 관점에서 본다면 전 미래를 희생해서 그때 그렇게 생각없이 뛰어 놀았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전 만족합니다.
그로 인해 제 미래가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제가 충분히 행복했다는 것은 확실하거든요. :)
그래서 전 지금 애들이 측은합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자식을 두게 된다면, 전 그들을 뛰어 놀게 할겁니다.
평생의 추억이 될 시절을 희생해가며 성취하는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는 제가 해보질 않아서 섣불리 권하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경험한 거라면 뭘했더니 행복하더라 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으니까요.
(제 친구 중 하나는 이런 제게 ' 나는 돼도 너는 안된다.' 라더군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

우리 집이 보이는 군요.
손에 잡힐듯 선한데... 그냥 그리울 따름입니다.

집을 떠나 공항으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이 정류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겠지만, 저처럼 이 곳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몇일까요?
공항버스를 탈 때 말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 정류장이라 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