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주문했는데, 닷새 째 안온다.
(인니는 수돗물이 너무 안좋아서, 샤워와 설겆이를 제외한 모든 물은 생수를 구입해서 사용한다. 현지인들도!!
설겆이 해서 물기 말리면 석회질이 얼룩져 있다. 생수로 행궈서 말려보니 그런 것 전혀 없다.)
물 주문한 가게 가서 물어보면 오늘 저녁에 된단다.
그 소리 사흘 째 들었다.
인니인들 묘한 풍습(?) 중에 하나가, 부정적인 대답은 어지간하면 피한다는 것.
설령 그것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느니 거짓을 말하는 편을 택한다.
(한국인, 특히 내 성격과는 완전 극과 극이다. 진실이 나를 상심시키더라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같은 인니인이야 그리 말해도 미묘한 뉘앙스로 알아채겠지만, 외국인이 어떻게 알겠나.
그냥 이 나라는 원래 이렇고, 나는 이 나라에 온 이방인이다~ 이러고 체념해야지.
물이 없어 라면도, 밥도 못 해먹고 있다.
그저 이 닦을 물 조금 남았다.
안되겠다 싶어 2L 들이 라도 사야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벌써 다 떨어졌다.
여기 사정 아는 사람들이 벌써 산 거다.
말 들어보니 일주일 넘게 안들어온 적도 있단다.
할 수 없이 땡볕에 100여 미터 떨어진 상점에 가서 물을 사온다.
힘들게 가져온게 아까워서 음식에 쓰지도 못하겠다.
마실 물, 이 닦을 물로 아껴 쓰고, 빵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_-;;
창문 손잡이가 부러져서 사러 갔다.
집주인 할머니에게 전화했더니, 얼마 안하니 그냥 사서 달란다. -_-;;
(먼데 살아서 그런 자잘한 것 때문에 오기 뭐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사오면 시설팀이 달아 준댄다.
자기들이 사놓진 않는다.
인니 공산품 질은 그닥 안좋다.
같은 아파트 사는 다른 방에 가보면, 손잡이 두 개중 한 개는 영락없이 부러져 있다.
다들 그러려니 사는데,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위치 대강 알려주는데, 당최 모르겠다.
정문 경비에게 물어보니 한 500미터 떨어진 엄한 데를 가르쳐 준다.
가봤더니 현지인 상대의 재래식 철물점.
헐고 금간 야매 제품을 내민다.
규격은 같으니 걱정말고 쓰란다.
당최 불안해서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니 뚝 부러진다.
한참을 뒤적이더니 다시 다른걸 내민다.
혹시 몰라 이거 안맞으면 환불해 달라 다짐했다.
(미리 얘기 안하면 절대 환불 안해준다. 다른 물건으로 교환만 된다. 그럼 또 가지고 가서 안되면 또 바꾸고, 바꾸고...
한 마디로 물건 잘못 산 넘이 병신이란 상거래 질서다.)
사지 말았어야 했다.
달고 문 잠궈보니, 창문 탄력을 못이기고 뚝 부러진다.
다른 하나는 해보나 마나.
다시 들고 터덜터덜 땡볕을 걸어간다.
환불 해달라 내미니, 하나는 부서졌기 때문에 안되고, 하나만 환불해 주겠단다.
이런 개#%*&#%$&*#!!!!!!!!!!
라는 마음을 듬뿍 담은 눈초리로 활짝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을 쳐들어가 니네 규격품 사려면 어디 가야 하냐, 택시 타고 가야 하는 곳도 괜찮다고 했다.
길 건너 반대편으로 10m 정도만 가면 된단다. (이런 씨$#%#$&*#&$!!!!!)
10m는 아니고, 50m 정도 가니 있더라.
(이 나라는 이런 것 마져도 긍정적인 대답이다. 마치 군대 고참이 행군 중에 조금만 더 가면 된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 나라의 지물포 겸 철물점 개념인 전국 체인점 Mitra 10.
인테리어 제품부터 시큐리티 제품까지, 집에 관련한 거의 모든 제품들을 취급한다.
Mitra는 친구, 동료라는 뜻. 10은 뭔 의미일까 나도 몰러.
10명의 친구가 동업해서 만들었다는 것인지, 10명의 친구보다 낫다는 얘긴지... -ㅂ-
다 고친 후의 손잡이.
마침 도어락들도 잔뜩 있길레 사왔다.
사무실 직원이 이거 열쇠 교체하려면 집주인에게 얘기하고서 다는 것이 좋을 거란다.
(저렇게 얘기하면 꼭 얘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화 했다.
지금은 Puasa라 바쁘고, 일요일에 열쇠 받으러 방문하시겠단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
1. 해줘야 될 것은 당최 바빠서 못오는 경우가 있어도, 받아야 할 것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낼 수 있다.
2. 집주인은 꼭 그 집의 열쇠를 하나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집주인은 언제든 세입자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권리가 있다.
(세입자의 허락을 받고 들어 오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집주인은 당연히 정직하고 옳바를 것이라는 명제를, 세입자는 받아 들여야 한다.
그게 로마 법이니까.
이렇게 피곤한 하루가 끝냈다.
어쨌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했고, 홀가분(?)하게 맥주 뽀개면서 글로 풀고 있다.
그나저나 아파트 일하는 쉥키들은 왜 내가 맥주를 박스로 사들고 들어가면 엄지 손가락을 쳐드는겨?
아파트 개장 이래 최고의 술꾼 등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