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소시오패스적인 '부분'은 있다.
거부감 갖지 말자.
인간은 복합적이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도 내향적인 면이 있다. 긍정적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생각은 있다. 용감한 사람도 두려움은 있다. 한 사람의 성격은 그 모든 것들이 섞인 총합이고, 비율에 따라 각자 서로 다른 성격이 된다.
그리고, 어느 한 면이 극단적이어서, 반댓면에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인 사람도 아주 드물지만 있을 수 있다.
소시오패스도 그런 사람이다.
소시오패스가 머리가 좋다는 건 사실인 거 같다.
하지만, 소시오패스가 반드시 지능이 높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좋지 않은 소시오패스는 사회 생활 중에 진즉 도태되었고, 머리가 좋은 소시오패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소시오패스'라고 하면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런 캐릭터성을 부각시킨 인물을 봤기 때문이다. 혹은 소시오패스의 내면에 관한 묘사를 접했거나.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내면을 볼 수도 없다. 차갑고 냉청하기만 해서는 사회 생활하기 힘들다.
뭐 그렇게 살아도 문제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진짜 소시오패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매우 진실되고 따듯했다. 눈물도 잘 흘렸다.
훗날 돌이켜 보니, 그는 진실되고 따듯해 '보이도록' 연기를 한 것이다.
겉보기로만 따진다면, 어떤 성향을 의식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이 더 그럴듯하다.
예를 들어, 여성성을 성취해야 할 목표로 보는 트랜스 젠더나 수단으로 삼는 화류계 여성은 일반 여성보다 더 여성스럽다.
일반 여성은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는 여성성을 '의식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소시오 패스는 진실함과 따듯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의식적'으로 연기한다.
자신이 관찰한 가장 진실되고 따듯한 사람을 모델로 한다.
살아오면서 타인을 대하는 1분 1초, 수만 번을 연기해왔기 때문에, 고작 수백 번을 연기한 배우보다 더 자연스럽다.
거짓말을 정말 잘했다. 그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나서 되새겨 봐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잘했다.
스토리도 그럴듯하게 잘 짜고, 순발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가책과 수치심이 없었다.
가책이나 수치심은 사회적 감정이다. 사회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소시오패스에겐 거의 없다시피하다.
흔히 거짓말이 들통나도 우기는 사람이 가책과 수치심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반대다.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스트레스를 피하려 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거다. (일본이 하는 짓이 그렇다.)
정말 가책이 없는 사람은 거짓말이 뺴도박도 못하게 들통나면 순순히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넙죽 엎드려 빌면서 천연덕스럽게 다른 거짓말로 덮어 상황을 모면한다.
수치심이 없으니 경멸과 실망을 받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꺼리지 않는다.
정말 소름끼쳤던 건, 거짓말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건 어떤 목적을 위해서다.
상대에게서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거나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거나.
난 스스로를 잘 안속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이 그럴듯 한가 보다는 그 말을 하는 목적을 파악하려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이나 필요가 없을 때도 거짓말을 하면 혼란에 빠진다. (아니, 왜 그딴 걸 굳이 거짓말을 하지?)
사람과 사람이 관계 형성을 할 적엔,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라는 식으로 자기 소개 주고 받고 그러지 않는다.
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어떤 상황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 사람에 대해 점차 '알아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알아나간다는 건 전적으로 주관적 관점이다.
** 보이는 모든 언행이, 마치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은 이래야 한다고 책으로 배운듯 한 연기였다.
모름지기 남편은 어째야 한다, 모름지기 직원은 어째야 한다... 이런 것들의 흉내다
그 안에 자기 자신은 없었다. 그는 허깨비였다.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인데, 그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숨 쉬듯이 거짓말을 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 대학교 이야기, 전직장 다닐 때 있었던 에피소드 등등 사적으로 주고 받은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거짓말 범벅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고 (당연히 실제 가해자는 소시오 패스), 때론 남이 겪었던 에피소드 중 그럴듯 한 걸 자기 얘기처럼 끌어다 붙였다.
묻지도 않은 별 필요도 없는 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거짓말 하기도 했다.
어제 회식 끝나고 집에 가다 급설사가 나와서 그냥 차안에서 쌌다는 얘기라던가.
'도대체 속일 이유가 있나 싶은 사소한' 이야기들이 쌓여서 상대에 대한 이미지가 구축됐는데, 그 '속일 필요 없는 사소한' 이야기들마저도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없다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후 돌이켜 보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머릿속의 그 사람은 실존하지 않는 존재라는, 허깨비와 웃고 떠들고 대화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처럼 소름이 쭉 끼쳤다.
훗날 그 소시오 패스의 예전 피해자를 우연히 만나 소시오패스가 했던 이야기들을 맞춰 보면서, 어느 부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는지, 어떻게 왜곡했는지 알게 됐을 적에도 소름의 연속이었다.
정말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는 그 사람은 누구였지?
성공한 삶을 사는 소시오패스는 머리가 엄청 좋아서, 상황을 모두 통제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과정을 직접 봤다.
가령, 소시오패스가 A사에게 '플랜'을 제안하고, B사와 연결해준다.
실제로는 B사는 '플랜'을 해내기에는 역량이 부족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처럼 '진심을 다해' A사를 설득한다.
일반인에 비해 남다른 점은 일반인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질 게 뻔하기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할 거짓말을, 정말 되지 않을리 없다는듯 확신을 가지고 진행하는 태도다.
그런 '설득력'에 A사와 B사는 협업을 하게 된다. 워낙 확신을 갖고 얘기하니까.
협업이 시작되고, 터질 게 뻔한 문제는 당연히 터진다.
사기꾼이었다면 문제가 터지기 전에 목적했던 이익을 쟁취하고 털었을 거다. 머리가 엄청 좋았다면 문제가 터지지 않게 만들었을테고.
내가 본 소시오패스는 달랐다.
하나 덮으면 다시 또 다른 것이... 문제는 계속 터지는데, A사와 B사 사이를 오가며 협업을 계속 끌고 나간다.
발군의 기술은 사정사정 빌면서 다른 거짓말로 덮기였다.
워낙 진실된 표정으로 싹싹 빌며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는듯 얘기하니 넘어가고, 또 터지고 하기를 반복한다.
당장 내일 또 터져서 들통날 게 뻔하다면, 일반인이라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는 말은 차마 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그 소시오패스는 서슴없이 했다. 진실되게,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A사와 B사는 이제 없었던 일로 손 떼고 털기 어려운 상황까지 빠졌다.
없던 것처럼 덮기엔 손실 규모가 크고, 처음에 하자고 결정한 사람들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되려, 어느 정도 사고 터지는 건 A사나 B사에서 무마해주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는 상황이 됐다.
결국 B사 내부자가 A사에 진실을 터뜨리는 바람에 결국 완전 뒤집어지고 쫑났지만...
B사의 역량이 조금만 더 높았고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고비를 넘길 수도 있었고, 멈추면 손실 규모가 집계될 것이기에 어떻게든 계속 이어나갈 가능서이 높은 협업이었다.
물론 처음보다는 덜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터졌을 거고, A, B 양사가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테지만. 어쨌든 소시오패스는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을 거다.
일단 밀어붙이고, 실패를 인정하면 엿되는 상황으로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이어나간다는 발상은 일반인의 멘탈로는 생각도 하기 힘들다.
자신을 믿고 추진했던 사람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경멸을 받는 상황이 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멸 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면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발상이다.
소시오패스가 무서운 점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의 한계가 일반인과 아득히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되었을 적에 화가 나기 보다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본 진짜 소시오패스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