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

반둥에 가다

명랑쾌활 2009. 9. 25. 00:54
바지 달랑 네 벌로 버티기 힘들어 당일치기로 반둥에 다녀왔다.
질 좋고 값싼 옷 사려면 단연 반둥이라고들 한다.
근처에 나이키나 폴로의 생산 공장이 있고, 그 밖의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질은 괜찮은 옷들이 모이는 곳이다.

데뽁 터미널에서 두 시간 반 ~ 세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거리는 원주 정도 되려나 싶다.
차비는 우리 나라 가격으로 5천원 정도.

06시 첫차를 탔다.
낮에 갔을 때 문 열었던 표 파는 사무실이 닫혀 있어서 당황했는데, 그냥 차에 타고 나중에 조수가 돈 받으러 오면 그 때 값을 치루면 되는 거였다.
나중에 돌아 올 때 보니 굳이 표를 미리 사서 버스에 타는 사람이 없었다.

특이한 점은, 버스가 출발해서 고속도로 타기 전까지는 중간에 불러 세워 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속도로 타기 전에 내릴 손님을 받기도 한다는 것.
즉, 자카르타 남부까지 갈 사람을 태우기도 한다는 얘기다.
천천히 주행 중인 버스의 열린 출입문에 조수가 서서, 길 가의 차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외치며 호객을 한다.
차장이랑 조수 부수입이 아닐까 싶다. ㅎㅎ

제법 앞 뒤 좌석 간격이 넓은 편이었다. (베트남과 비교하면 확실히 넓었다.)
게다가 베트남처럼 뒷사람 생각 안하고 지 편할대로 젓히지 않고, 적당히 하기 때문에 제법 쾌적했다.
물론 에어컨도 추울 정도로 빵빵.
추위 제법 타는 사람이라면 걸칠 것 챙기는 것은 필수다.
안그러면 무지 고생할 거라 장담한다.

흡연칸에 앉아서 한 컷.

흡연의 천국 답게 버스 뒷 편에 흡연칸이 준비되어 있다.
그것도 그냥 조잡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벽으로 차단해 독립시키고, 천정에 환풍기 두 개를 달았다.
게다가 뒤에서 두 번째 좌석을 털어 만든 공간이라, 두 다리 쭈우욱 뻗고 눕듯이 앉아도 될 정도로 널널하다.
그리고 환풍기 두 개로 날라가는 냉기를 보충하려는지, 에어컨도 더 빵빵하게 나와 시원하다.
흡연자라면 자리가 없을 때, 그냥 맨 뒤에 앉아서 가도 얼마든지 쾌적하게 갈 수 있다.

단점은 역시나 담배 쩐 내가 난다는 것. ^^;
어렸을 적 기차나 고속버스 타면 나던 그 냄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가 대부분이 금연이 된 것도 얼마 안됐군.

반둥에 가까와 졌다.
고산 지대라고는 하지만 화산으로 형성된 곳이라, 산봉우리가 이어진 형세가 아니다.
그래도 제법 야산은 보인다.

설마 저 회전 관람차 인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사람이 움직이는 것 치고는 크기가 제법 크고, 기계로 움직이는 것 치고는 너무 작지 않나 싶다.
그 옆에 보이는 천막은 아주 소박한 회전목마.
무슨 놀이 공원인가 싶다.
(나중에 교수님께 물어 봤더니, 작은 규모의 회전 관람차나 회전 목마는 상설이 아니라 옮겨 다니는 거라 한다.)

반둥 터미널에 내려서 찍은 돌아갈 버스.
제법 그럴듯 하게 생겼는데, 내부는 좀 지저분한 편이다.
청소를 대충 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용객들의 에티켓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여기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 버스 앞 유리의 행선지를 나타내는 안내판과 M-203 이라는 번호를 제외하고는, 같은 노선이라도 차 색이나 모양이 다 틀리다.
(M-203은 데뽁 - 반둥 노선의 번호인가 싶다.)

돌아가는 차 편 시간 좀 알아볼까 터미널을 헤맸으나... 시간표를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아까 봐 두었던 반둥-데뽁 행 버스에 가서 물어보니, 그냥 정시마다 한 대 씩 있다고 한다. -_-;


사전 지식 하나 없이 온 터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할 수 없이 손님 태우려 세워있는 택시에 가서 물어 봤다.
" 큰 팩토리 아울렛 많고, 식당도 제법 있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가려고 한다. 아냐?"
" 안다. 타라."
" 얼마나 걸리냐?"
" 한 시간 걸린다."
엥, 무슨 한 시간.
반둥 이 끝에서 저 끝이 한 시간 걸릴까 싶은 크긴데. -_-;;
" 우린 여기저기 안간다. 그냥 팩토리 아울렛 근처 식당까지만 가면 된다."
" 30분 정도 걸린다."
" 좋다. 가자."
그러고 타는데, 이 친구가 미터기를 꺾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냉금 내려 버렸다.
" 우린 미터기로 가는 거 아니면 안간다."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옆에 나타난 나이 많아 보이는 다른 택시 기사 아저씨가 냉큼 우리를 부른다.
" 미터기로 가자. 차 저기 있다."
" 오케이!"
처음에 우리랑 얘기했던 택시 기사가 그 아저씨에게 뭐라뭐라 한다.
표정이 좋진 않다.
그래도 아저씨가 능글능글 웃으며 뭐라뭐라 대꾸하고, 우리 앞장 서는데, 잡아 세우거나 하진 않았다.

기사 아저씨가 유쾌한 목소리로 이런 저런 얘기를 건다.
3분의 1 정도는 알아 듣고 나머지는 대충 문맥과 눈치로 때워가며 대화한다.
그렇게 해서 알게된 사실은,
일단 팩토리 아울렛들은 리오 거리와 라고 거리에 제일 많다는 것.
음식점들 역시 아울렛들 사이 사이에 많이 있으며, 외국인 상대의 메뉴들도 드물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아까 그 택시는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일종의 전세 택시로, 최소 두 시간 이상부터 계약한다는 것.
(시간 당 4만 루피아, 우리 나라 가격으로 4천 몇 백원 정도)

그러니까 아까 얘기할 때, 그 기사와 뭔가 의사 소통이 안되고 있었다는 거다.
(어쨋든 그대로 타고 갔으면 그닥 좋게 헤어지진 못했을 거다. 그리고 그런 경우, 보통 외국인이 손해보기 마련이다.)

참고로, 미터기로 2만 6,7천 루피아 정도 나왔다.
(안줘도 되지만) 관행대로 10% 정도의 팁을 감안해, 3만 루피아 줬다.
올 때도 비슷하게 나온 것으로 보아, 길 돌아가거나, 미터기 조작하는 장난질은 안치는 듯 하다.
물론 다 그렇다고 장담은 못한다.

내리자 마자 한 컷.
리오 거리다.

기사 아저씨 말대로 음식점들은 여기저기 많았다.
문제는 금식 기간이라 제대로 연 가게가 없었다는 것.
할 수 없이 택시 내린 곳부터 꽤 지나친 곳에 있는 KFC로 가기로 했다.

경험상, 맥도날드나 피자헛,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들은 금식 기간에도 정상 영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행한 JC 형님이 시킨 셋트 메뉴.
저 종이에 쌓여 있는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밥이다.
그것도 그냥 흰 쌀밥. -ㅂ-
인니에서는 다들 닭튀김에 쌀밥 잘도 먹는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지내다 보면 하나 둘 적응해 나간다.
나는...

적응 못하겠는 관계로 치킨 햄버거에 프렌치 후라이 셋트를 시켰다.
(치킨은 술이랑 먹어야 하는 음식 아니냔 말이닷!)
셋트 메뉴라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 돈으로 천 5백원 정도 가격의 햄버거가...
우리 나라 천 원짜리 햄버거 보다 부실했다.

이 나라는 햄버거가 고급 음식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 가는 제법 고급 축에 속하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가 5~6천원 정도 하는데, 햄버거가 4천원 정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테이크나 볶음밥 시켜 먹는데, 현지인들은 햄버거 주문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ㅎ...
(도대체 레스토랑에서 햄버거가 뭐냐구... -ㅂ-) 

거리 이름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한 컷.
정확한 명칭은 JL.L.L.R.E. Martadinata 엘 엘 에르 에 마르따디나따 거리.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리오 거리로 통한다.
길 이름이 종종 바뀌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자주)

팩토리 아울렛은 보통 저런 식으로 여기 저기 늘어서 있다.
그닥 안커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무지 넓다.
우측에 써있는 50 이라는 숫자는 50% 세일 한다는 뜻.
팩토리 아울렛이라 원래 싸지만, 요즘 이슬람 력의 연말 시즌이라 세일까지 하고 있다.

따스 Tas 는 가죽 가방이라는 뜻.
저 곳은 가죽으로 만드는 모든 제품을 취급한다.
조리나 하나 살까 했으나, 그냥 돌아보기만 하고 나왔다.
맘에 드는 제품이 하나 있었는데, 사이즈가 진열된 거 달랑 하나라고 해서 관뒀다.
직원은 많은데 그닥 친절하진 않은 편이다.
(하긴 우리 나라 고객 대응 수준이 엄청 높은 편이긴 하다.)

리오 거리의 랜드마크일까 싶어서 찍은 건물.
아울렛은 아닌듯 하고, 호텔이 아닐까 싶다.

Cascade 팩토리 아울렛.
설마 짜스짜데 라고 읽진 않겠지. ㅋㅋ
허리띠를 제외한 모든 제품을 이곳에서 샀다.
괜찮은 물건이 많았고, 쾌적하고 깔끔했으며, 무엇보다도 물건이 잘 정리되어 차분히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리오 거리에서는 이곳을 강추.

오후 3시 버스로 돌아가려고 반둥 터미널에 다시 도착.
시간은 2시 50분 경.
데뽁에서 출발할 때도 그랬는데, 인니답지 않게 의외로 버스는 정시에 출발한다.
(심지어 더 탈 사람 없어 보이면, 1~2분 일찍 출발하기도 한다.)
버스에 가니 53분, 출발하니 빨리 타란다.
화장실 좀 갔다 올 시간 되냐고 물어 보니, 빨리! 갔다 오랜다.
부랴부랴 일 보고 다시 버스 서 있는 곳을 가는데, 버스가 출발해서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8분. -0-;
나 태우려고 내 쪽으로 오는게 아니라, 터미널 나가는 길이 화장실 쪽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만약 화장실이 버스 나가는 방향 반대편에 있었다면 꼼짝없이 놓쳤을 거다. ㄷㄷㄷ
내가 분명 화장실 갔다 온다고 얘기 했건만...

당연한 얘기지만,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 만이 장벽이 아니다.
문화와 암묵적인 여러 가지 규칙들이 오히려 더 큰 장벽일 수 있다.
언어야 책이나 사전이 있지만, 이런 문제는 몇 번 겪는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수증 겸 차표.
요녀석이 있기에 버스는, 외국인이 바가지 안쓰는 몇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전리품들.

바지 한 벌 당 2만 몇 천 원.
티 한 벌 당 5천 몇 백 원.
허리띠는 만 3천 원 정도로 비싼 편인데, 가격에 비해 품질은 좀 떨어진다.
그저 혀로핥아 길드의 좋은 상징이 될 듯 하여 샀다. ㅋㅋ



* 근처에 나이키나 폴로 공장이 있다고 하길레, 공장에서 뒷구멍으로 나온 정품들이 있나 했었으나, 그런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어딘가 그런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무렴 그런 것은 공공연하게 팔 성질의 물건은 아니지 싶다.
그보다는 그냥 질 좋은 물건 값 싸게 산다는 생각으로 가면 적당한 곳이다.

** 짝퉁은 널리고 널렸다.
폴로, 버버리, 캘러웨이, 피에르 가르뎅, 아르마니, 등등.
품질도 정말 괜찮다.
다만 로고가 좀 어설픈 편.
차라리 로고가 없었다면 품질이 좋아서 샀을 물건도 있었다.
게다가 버버리 청바지가 도대체 왠 말이냐. -_-;;
그냥 아무데나 브랜드가 마구 붙어있다.
캘러웨이나 폴로, 버버리의 폴로 티셔츠의 경우, 진짜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물건도 간혹 있었다.

*** 하루 만에 쇼핑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다소 힘든 일정이다.
팩토리 아울렛이 상당히 많으며, 다들 규모가 크다.
그리고 취급하는 물건이나 브랜드도 약간씩 다르다.
한 군데에 다 몰아 넣은 대형 쇼핑몰이 아니라, 따로 따로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은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최소한 1박은 하면서 여유있게 쇼핑하는 편을 권한다.
근처에 온천도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자카르타 보다는 확실히 덜 덥고 습기도 덜했다.

**** 팩토리 아울렛은 반둥 여기 저기에 있지만, 가장 많이 모여있는 거리는 잘란 라고, 잘란 리오, 그리고 잘란 찌암펠라스다.
셋 중 잘란 리오가 가장 규모가 크며, 찌암, 라고 순이다.
하지만 라고는 리오와 이어져 있으며, 찌암은 좀 떨어져 있다.
거리 셋 모두 지도 상으로 반둥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 잘란 라고의 표기는 Jalan Dago 이지만 인니의 D 발음은 우리완 다르다.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다면, 차라리 라고라고 하는 편이 더 잘 알아 들을 것이다.
(한국인의 ㄷ 발음은 인니인들에게 ㄸ으로 들리는 듯 하다.)
길 이름이 바뀌어 지금은 Jalan IR. H Juanda 지만, 택시 기사들은 다들 라고라고 한다.
잘란 리오 역시 Jalan Riau 지만, 리아우 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바뀐 현재의 길 이름은 위 본문 참고.
잘란 찌암펠라스는 Jalan Ciampelas.
길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