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인니 경찰서 출석요구서 가짜

명랑쾌활 2020. 12. 28. 11:12

현지인 지인이 위조된 경찰서 출석요구서를 받았습니다.


이건 진본입니다.

2019년 대선 당시, 트위터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야당 후보인 쁘라보워 측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을 고소한 사건 관련 경찰서 출석요구서입니다.

피고소인 측에서 인터넷에 공개한 서류지만, 혹시 문제가 될까 하여 주요 내용은 지웠습니다.


위조본과 원본이 거의 비슷합니다.

자카르타 남부 경찰서 로고라던가, 양식, 사건 번호 형식, 우측 하단의 직인과 서명까지 아주 그럴듯합니다.

내용을 봐서는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위조본의 출석하라는 장소도 정말 경찰서입니다.

현지인도 이런 문서 받을 일 드문데, 만약 외국인이라면 대부분 패닉에 빠질 겁니다.


위의 건은 세 가지 사실 때문에 가짜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첫째, 서명마다 약간 다를 순 있지만, 어지간 하면 실수할 리 없는 포인트인데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 세 차례의 출석명령서가 모두 집이 부재중일 때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니도 출석명령서는 등기로 전달되어야 하고, 직계 가족만 대리 수령이 가능하며, 수령자의 서명을 반드시 근거로 남겨야 합니다.

한 두 차례는 귀찮아서 두고 같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세 차례 모두 그랬다는 건 매우 이상합니다.

셋째, 문서의 글자체가 진본과 다릅니다.

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니도 모든 공문서는 반드시 지정된 기기와 글자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위 위조 서류는 일반 MS 워드로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문서를 찍어 아는 변호사에게 보내 확인했는데, 실물을 직접 보지 않아서 단언할 순 없지만 위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직접 경찰서 가서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제법 비싼 변호사 비용도 비용이고, 문제가 커질 수도 있으니 그냥 냅두라더군요.

만에 하나 진짜라 하더라도 사안이 경미하기 때문에 그때 가서 해결해도 별 차이 없다면서요.

실제로, 1년여가 지나도록 아무 문제 없습니다.


혹시 이런 서류를 받는다면, 괜히 공황 상태에 빠져 경솔한 판단하지 마시고 변호사에게 확인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인니는 가짜 변호사나 거의 사기에 가깝게 등쳐 먹는 변호사가 수두룩합니다. (오히려 위조된 출석요구서를 보낸 경찰과 짜고 의뢰인을 완전히 바보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믿을만한 변호사가 없다면, 좀 비싸더라도 한국인 변호사를 권합니다.



위조 문서인데 출석 장소가 정말 경찰서라는 게 이해가 잘 안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어디 그럴듯한 장소로 불러서 협박을 하든 납치를 하든 하면 모를까, 진짜 경찰서로 불러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싶지요.

하지만, 진짜 경찰이 연루되어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ㅋㅋ

경찰서는 넓습니다.

제 짐작입니다만, 저 위조문서를 들고 오라는 장소로 가면, 경찰이 와서 사람도 없는 조그만 사무실로 데려가 즐거운 대화를 하게 될 겁니다.

잔뜩 겁주고 어른 다음에 없던 일로 무마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겠지요.

경찰서는 들어 가는 건 맘대로 들어가도, 나오는 건 맘대로 안되는 곳이고요.

아직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서 바깥에서는 보는 눈 때문에 체포는 함부로 못해도, 일단 경찰서 안에 들어오면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서 유치장에 하루 이틀 가두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출석 요구에 불응해도 아무 후속 조치가 없는 건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출석요구서 정도는 경찰이 임의로 발행할 수도 있지만, 체포 영장 발부는 전혀 다른 문제일테니까요.

그냥 찔러나 보고, 반응이 없으면 걍 냅두는 거겠죠.

다른 건수도 얼마든지 많으신 경찰 나리가 고작 이런 건 하나 붙잡고 늘어질 리 없을 겁니다.


위조문서 들고 신고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관련 경찰이 자기가 한 거 아니라고 하면 끝입니다.

경찰서 바깥에서 누군가가 위조한 거고, 직인도 가짜고, 자기가 발행했던 다른 출석명령서를 본딴 모양이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넘어가고 나면 신고한 사람에게 보복을 하겠지요.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게 낫습니다.

여긴 인니니까요. ㅎㅎ


아, 겸사겸사 출석요구서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볼까요?

혹시 이런 거 받으실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ㅋㅋ

우측 상단에 출석 요구를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명시됩니다. (그러고 보니, 위조 문서에는 주소가 빠졌었네요.)

1번 항목은 관련 법률 근거, 고소 접수 번호, 문서 발행 번호, 처리 번호 등등입니다.

고소 접수 번호에 누가 고소했는지 이름이 명시됩니다.

2번 항목은 사건 개요와 관련 법률 등등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피고소인의 무슨무슨 행위를 했다는 고소가 접수됐다. 무슨무슨 법 몇 조 몇 항에 저촉된다. 고소인은 이러이러한 주장을 한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3번 항목 내용은 출석 요구 일시 및 장소, 담당 조사관입니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면 전화로 문의하라며, 담당 조사관의 휴대폰(!) 번호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딴 거 알 필요도 없었는데, 외국에 살다 보니 별별 것을 다 공부하게 되네요.

밥 먹는 방식조차도 '혹시 내가 뭐 실례하는 거 아닌가'하고 신경써야 하는 게 외국에서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