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노려보는 인니인

명랑쾌활 2020. 5. 8. 09:08


어느 블로그 포스팅을 봤다.

인니의 한국 업체에 취업한지 1, 2년 쯤 되어 보이는 어느 한국인 청년의 글이었다.

청년은 길을 걷다가 어느 인니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더라며, 인니 남자들은 눈싸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인니 20년 살았고, 자카르타에 레스토랑 몇 개를 소유했다는 자신의 멘토 (아마도 선배를 뜻하는듯) 가 했던 말을 이어서 소개했다.

"인니애들과의 눈싸움에서 지면 안된다. 눈을 피하면 지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유치함이 하늘을 찌른다.

껄렁껄렁 중고딩 시절에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눈싸움에서 눈 피하면 지는 게 맞다. 눈싸움이니까.  한국인끼리 눈싸움을 해도 눈 피하면 지는 게 맞다.

인니애들하고 눈싸움에서 지면 안된다는데, 딱히 인니인에게 지면 안되는 이유가 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설마 눈싸움에서 지면 돈이라도 내야 하나?


인니 방방곡곡 제법 돌아다녔는데, 그 중 험악한 지역에 모르고 들어간 적이 몇 번 있다.

그 중 한 번은 마을 어귀에 있던 피부 시커멓고 허연 눈자위가 도드라지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나를 빤히 쳐다보는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난 활짝 웃는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 인사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그도 무표정이 약간 풀리면서 턱을 까닥 추켜 올려 내 인사를 받는 제스쳐로 받았다.

나는 길을 물었고, 그는 더듬 더듬하는 인니어와 손짓발짓으로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아마도 종족어로만 소통할 정도로 폐쇄된 지역일 것이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 낯선 사람, 그것도 외국인이 오면 무슨 일로 왔나 경계심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만약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면, 그 게 오히려 더 무서울 것 같다.


인니인들은 눈싸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 걸 눈싸움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상대방과 눈이 마주쳐도 별 뜻 없이 '그냥' 보는 거다.

한국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이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타인을 대놓고 쳐다보는 행동이 실례고, 혹시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는 것이 예의니까.

돌이켜 보니, 내가 어딜 가든 현지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던 것도 나를 빤히 쳐다 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부터가 아닌가 싶다.

당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익숙해지지 않는 한 당신은 인니 어디를 가나 외국인으로 튈 것이고, 당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이 따라 다닐 것이다. (혹자는 그걸 연예인병이라고 한다. ㅋㅋ)


사람은 생소한 환경에 둘러 쌓였을 때, 선배의 말을 객관적 사실처럼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 청년도 고작 1, 2년 산 자신에 비해, 무려 20년 씩이나 인니에 살았고, 별의 별 희안한 무용담 끝에 레스토랑 몇 개를 소유한 '성공한 선배'가 하는 말이니 그럴듯했을 것이다.

물론 인니 거주 1, 2년차 한국인보다 20년차 한국인이 인니에 대해 아는 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20년차 한국인이 인니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모두 정답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살아가는 스타일이 그런 것일 뿐이다.

얕보이면 안된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온 거다.

눈 마주쳤을 때 자신이 눈 까는 걸 굴욕이라고 느끼는 거다.

'한인 레스토랑 = 술 파는 곳'이라 별의 별 놈팽이들이 찾아와 찝쩍거렸을텐데, 얕보였다가 두고두고 성가신 일을 당했던 경험으로 그런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국인과 회사에 다니는 한국인은 맞닥뜨리는 인간 군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시골 봉제공장 기숙사에 거주하며 근무한지 10년인 한국인이 인니인들 교육 수준을 어떻게 볼까?

가라오케 20년 운영한 사람이 인니 여자들의 도덕 관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서로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일반화 할 부분이 아니다.

한국이라 해도, 20살인 사람보다 40살인 사람이 한국에 대해 20년 만큼 더 잘아는 건 아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