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거짓말] 03.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일까?

명랑쾌활 2020. 9. 11. 08:27


20대 초반, 친구 순창이와는 일주일에 4번 이상은 술을 마셨던 거 같다.

순창이 부모님은 내가 순창이를 망치는 나쁜 친구라고 생각하셨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으신듯 하다.

나만 아니었으면 순창이는 지금보다 훨씬 성공했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실 거다.


단둘이 마신 것도 아니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서너명 더 있는데 유독 나만 찍어서 미워하셨다.

다른 친구들과는 밤새도록 마신 적이 자주 있었지만, 정작 나와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도. ㅎㅎ

자기 자식은 원래 착하고 바르다는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으니, 누군가 꼬드겼다고 생각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식을 미워할 순 없으니, 대신 미워할 대상이 필요하셨을 게다.


그 후, 순창이는 독립해서 지방에 살았다.

명절에 본가로 돌아온 젊은 남자놈들이 다 그렇듯, 저녁이 되면 친구들 다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언젠가, 순창이가 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물론 친구들 다 모인 자리였고, 나는 자정 전에 먼저 빠져 귀가했다.

순창이는 차례를 겨우겨우 마치고 가족들과 둘러 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 눈치를 보며 고깃국을 해장하듯 마시는 순창이에게선 아직도 술냄새가 풀풀 났다.

순창이 어머니는 "아니, 불한당 걔는 왜 자꾸 너만 만나면 붙잡고 밤새도록 술을 먹이고 그러냐. 걘 다른 친구 없어?"라고 하셨다.

순창이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고깃국만 떠먹었다.

순창이 어머니는 다시 순창이에게 "너 불한당 좀 만나지 마. 왜 자꾸 그런 애를 만나."라고 말했다.

순창이는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어머니, 불한당 걔도 알고 보면 불쌍한 애예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기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