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당신의 국가 정체성은 당신의 모어(모국어)다

명랑쾌활 2020. 3. 13. 09:27


"사람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 속에서 살아 간다. 모국어야말로 우리의 조국임이 확실하다."

                                                                                            - 에밀 시오랑 Emil M. Cioran


영아일 때 외국으로 입양 되었거나,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 갔거나, 외국에서 태어나고 살아왔거나...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시민권을 갖고 있거나, 능동적으로 귀화했거나 등등

혈통적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사는 사람의 국가 정체성을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 자라 한국어가 서투르지만, 지속적인 가정 교욱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인식하는 미국 시민권자 한인이 그렇다.


문화는 개념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긴 부적절하다.

한국의 미풍양속이나 서열 문화, 관행과 터부를 잘 아느냐 모르느냐를 테스트해서 분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 끼리도 출신 지역에 다라 다를 수 있고, 옳지 않다 거부하거나 모를 수도 있는 개념이다.

가치관이나 기질은 더욱 그렇다.

한국인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기질 따위는 없다.


국가 정체성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모어라고 생각한다.

모어란 사람이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사유하는데 사용하는 언어다.

가령,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은 영어로 원어민과 유창하게 대화를 하더라도, 머릿속으로 '이 사람 뻥이 좀 심하네' 내지는 '말투가 좀 웃겨', '재미있는 사람이네' 등등의 생각은 한국어로 한다.

환경 문제를 다룬 영어 뉴스를 100% 알아 듣지만, 그 뉴스가 전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머릿속으로 사유할 때는 한국어를 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 한국어를 쓴다면 그 사람의 국가 정체성은 한국인이다.

비록 한국어가 좀 어눌하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 한국 사이에 상충되는 사안에 대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 쪽으로 기우는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국가 정체성은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토종 한국인이지만 '이런 나라 따위는 콱 망해서 미국으로 편입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이 자신의 조국이라고 여긴다해도, 그 사람의 모어가 영어고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면 그 사람의 국가 정체성은 미국인이다.

설령, 미국과 한국 사이에 전쟁이 터졌을 때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 편을 들어 싸운다 하더라도 그렇다.

재차 강조하지만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은 별개다.


'수고했다'라는 표현에 담긴 위아래를 따지는 수직적 사회 관계라던가, '괜찮다'라는 표현에 담긴 절제와 겸양을 중시하는 문화 등등 언어에는 그 지역의 모든 문화와 정서가 내제되어 있다.

우리가 평생 모어로 생각하는 이상,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살든 우리는 평생 모어 속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