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대출 채무는 무조건 못갚는 사람 만의 잘못일까?

명랑쾌활 2020. 2. 7. 09:50


갚을 생각 없이 빌린 경우는 논외로 치자.

그건 사기죄에 해당한다. (실제로 채권채무 분쟁에서 법적으로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사기죄로 옭아 매는 거다.)


"빌렸으면 갚아야지."

가령 친구 사이에 돈 문제가 생기면, 안갚는(혹은 못갚는) 사람만 욕하지 않는다.

"빌려 준 너도 바보다."라고 한 소리 듣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사회에서 채권 채무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채무자에게만 욕을 한다.

친구 사이에 그냥 믿고 빌려 준 사람에겐 바보라고 욕하면서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 행위를 하는 금융기관이나 대부업자는 피해자라고 두둔하는 격이다.


사회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건 경제 활동의 일환이다.

그것도 빌려줐다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스스로 감수하고 하는 사업이다.

그냥 막 빌려 주는게 아니다.

빌려 주기 전에 갚을 수 있나 없나 따져 보고 빌려 준다.

그랬는데도 빌려간 사람이 못갚는 경우가 발생했다면, 빌려 준 쪽에게도 애초에 판단을 잘못한 책임이 있는 거다.

빌려간 사람이 무조건 갚을 거라고 믿고 돈놀이 사업하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나.


못갚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해서, 빌려준 쪽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완전히 착각하는 거다.

이자에 이미 빌려주고 못받을 위험성도 이미 포함 되어 있다.

제1 금융권 이자율이 낮은 건 돈 빌려가시는 고객님들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상환 능력을 빡빡하게 따져서 애초에 갚지 않을 위험성이 낮은 사람에게만 빌려주니까 이자율이 낮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갚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세상일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제1 금융권은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까지 이미 다 계산해서 이자율에 포함시켜뒀다.

세상일 어찌 될지 모른다면서 그런 계산은 어째서 가능하냐고?

아주 간단하다.

A라는 어느 특정 인물로 한정해서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예측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거다.설령 어찌어찌 어렵게 계산해서, A라는 사람의 돈 갚을 확률이 83%라는 값을 내봐야, 17%의 못갚을 확률이 맞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확률은 결국 50 대 50일 뿐 의미가 없다.

하지만, 백 명 중 돈을 못갚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는 예측하기 쉽고, 천 명, 만 명이라면 더 쉽다.

(이를테면, 내가 암에 걸릴지 아닐지는 몰라도, 내 나이 대 사람 열 명 중 세 명이 암에 걸린다는 통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백 명 중 몇 명이 못갚게 되는지 통계를 통해 확률로 계산해서 도출한 손해 액수를 이자율에 반영해서 넣었다.

즉, 100 명에게 돈을 1만원씩 빌려줬는데 그 중 3명이 못갚았다고 해서 은행이 3만원 손해 보는 게 아니란 거고, 은행이 취할 이익에서 3만원 손해 보는 것도 아니란 얘기다.

은행은 3만원 정도 회수 못할 거라는 것까지 이미 계산에 포함해서 이익을 예상했다.


사채도 마찬가지다.

흔히 사람들은, 사채업자가 어떻게든 다 받아낼 방법이 있으니까 제1,2 금융권에서 돈 못빌리는 사람에게도 팍팍 빌려주는 거라고 알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채업자가 제1,2 금융권보다 뛰어난(?) 점은 고문 기술이 아니라, 채무자가 어디로 숨든 집요하게 찾아낸다는 점이다.

사채업자라고 해도 없는 돈 만들어서 받아낼 재주는 없다.

잡아다 줘패고 고문을 한다고 해서 없는 돈이 어디서 생기는 건 아니다.

장기매매도 한두 명이지, 못갚는 족족 다 팔아 넘겨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한국 치안이 허술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채업자가 돈을 버는 이유는 일단 이자율이 상당히 높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의외로 돈을 갚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채를 빌리는 사람은 열이면 열 다 제대로 못갚아서 협박 당하고 빌고 인생 망치고 그렇게 되는 줄 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늘 그런 상황으로 나오고, 뉴스에 나오는 사건도 늘 그런 식이다 보니 착각하게 되는 거다. (사채 빌려서 제대로 다 갚았다는 일이 뉴스거리가 될 리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아무리 악독한 사채업자라고 해도 돈 빌리러 오는 사람들 100% 전부 제대로 못갚는 사람들이라 일일이 불법으로 빚독촉해서 받아내야 한다면 뭐하러 사업이랍시고 사채업을 하겠나.

실제로는 '열에 일곱은 제대로 갚고', 둘은 불어나는 고리 사채 감당 못하다가 쥐여 짜여서 갚고, 하나 정도는 전부 다 받아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워낙 이자율이 높다 보니 일곱 명이 제대로 갚은 돈 만으로도, 나머지 세 명 것 못받았다 쳐도 이익이 남는다고 한다. (내 친구가 이런 사실에 혹해서 사채업에 자본금 넣었다가 털렸다.)

사채업자가 돈 못갚는 채무자를 끝까지 지독하게 쥐어짜는 건 손해라서가 아니라, 얕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우습게 알고 돈 제대로 안갚으니까 본보기로 족치는 거다.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손실에 대한 위험도를 이미 이자율에 포함시키는 건 사채도 제1,2 금융권과 마찬가지다.



빌려준 쪽도 판단을 잘못했다는 책임이 있고, 손해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돈 못갚는 채무자 쪽의 편을 들면, '도덕적 해이' 문제로 공박하는 주장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실 사회 전체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라는 게 과연 유효한 개념인지도 의문이지만, 일단 그딴 게 있다고 치고 반박하자면, 경제적 문제를 도덕적 개념과 결부 짓는 게 넌센스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어느 국가의 채무 상환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그 나라 국민들의 도덕성 하락 때문이라고 하는 분석에 온전히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 나라 경제 상황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게 자연스럽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도덕 따위 지킬 형편이 아니라 채무 상환을 못하는 거지, 도덕성이 하락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다.


애초에 경제, 특히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도덕성 따위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행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한 체제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한국인들은 경제 활동이나 금융 거래을 하는데 상대방의 도덕적 성향 따져가며 돈 거래 하나?

언제는 은행이나 대부업체가 대출 심사할 적에 담보와 수입은 충분한데 도덕심이 부족한 사람이라며 대출 거부했었나?

신용 평가, 계약서, 규제와 처벌 조항들 등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잠재적인 사기꾼이요, 언제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존재로 본다.

도덕성 따위는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던 요소이기 때문에 설사 하락된다 하더라도 사회적 충격 따위는 없다.


경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관점으로 도덕적 해이 문제를 논한다 해도 넌센스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거래는 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사회다.

누구와도 돈 거래는 하지 않는 사회라면, 채무자에게 가혹하지 않아서 사회 구성원들의 도덕심이 해이해지든 말든 뭔 상관인가.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실제 일어난다면, 그나마 영향을 끼칠 건 '사적 관계' 정도다.

'서로 못믿는 불신 사회' 뭐 이런 건데, 이 역시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적인 친분 관계인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예로 들자면, 친구들 중에는 어떤 종류의 빚이든 빚지고는 못산다고 할 정도로 부채 의식이 강한 녀석도 있고, 남한테 뭐 빌리고 갚는데 설렁설렁 둔감한 녀석도 있게 마련이다.

약속 시간 잘 안지키는 녀석, 거짓말 잘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다들 마음 맞는 녀석들과 친구 맺고 지낸다.

딱히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 현상이 벌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채권자 쪽이 손해 본 거 없으니, 못갚는 채무자 냅두자는 거 아니다.

채무자에게만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는 거다.

사회가 워낙 채무자에게 가혹하다 보니, 채권자가 점점 악랄해지고 있다.

사업 계획 당시에 이미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 채무금은 손실로 털면 된다. (전문용어로 대손상각이라고 한다. 대손상각을 하면 손실만큼을 이익금에서 충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을 덜 낸다.)

예를 들어 공장은 제품을 생산한다면 불량률 0%는 불가능하다.

통상 1~5% 정도는 발생하게 마련인 불량품들을 통상적인 손실로 떨구고 폐기 처리를 한다. (그리고 폐기 해야 할 불량품은 뒷구멍으로 팔려 사장 비자금이 된다.)

돈을 상품으로 다루는 금융권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채권자들은 미수 채권을 이미 회계상 손실로 떨궈 세금 혜택 받아 놓고도 끝까지 악착같이 짜낸다.

짜내고 짜내서 남은 찌꺼기는 10분의 1 가격으로 다른 채권추심 업체에 팔아 넘겨 다만 몇 푼이라도 회사 이익으로 챙긴다. (채권 금액이 10억이면 1억에 팔아 넘긴다.)

그걸 산 채권추심 업체는 짜일대로 짜여서 푸석푸석해진 채무자를 다시 쥐어 짜다 못해 갈아 버린다.

애초에 10분의 1 가격으로 사왔으니, 1천만원 빚이 있는 채무자에게 200만원만 받아도 100만원이 이익이다.

그렇다고 200만원 받아 냈다고 빚을 없애주진 않는다. (추심회사마다 기준이 다른데, 대략 채무 금액의 60~80%를 갚겠다고 하면서 흥정을 하면 빚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쥐어짜고 갈린 채권은 추심 기술이 보다 뛰어난(?) 추심업체로 또 다시 팔려 넘어간다.

이렇게 영혼까지 탈탈 갈리는 채무자 중 원래 빌렸던 원금 만큼도 못갚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자와 연체 이자가 붙고 또 붙어서 금액이 커진 것이지, 갚은 돈만 놓고 따지면 원금은 훌쩍 넘긴 사람들이다.

애초에 안갚을 마음으로 돈 빌린 사람은 극소수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고 하는 건 냉정한 게 아니라 그냥 무관심한 거다.


어차피 못갚는 채무자는 신용 거래 불량이라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고도로 쳬계화 된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그거 하나 만으로도 이미 정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그 이상으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처벌의 가혹성이 정의의 척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