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스승의 나이가 되어서 이해가 가는 스승의 마음

명랑쾌활 2020. 4. 1. 10:25


고3 때 일이다.

학력고사 점수가 애매하게 나왔던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어차피 재수할 거, 서울대에 넣고 싶었다.

교무실에 가서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 싶다고 하자, 담임 선생은 책상을 밟고 뛰어 올라 내게 날라차기를 하고 손으로 마구 후려팼다.

당시 같은 학년 동기들 사이에 전설이 된 교무실 날라차기 사건이다. ㅋㅋ


학생의 시각으로 본 교사는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부모, 스승, 교수, 박사, 검사 등등 일반 명사에 덧씌워진 미화된 가치를 벗어나지 못하니, 왜 그랬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거였다.

교사도 하나의 직업이고, 생계를 걱정하고, 술도 마시고,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연애 상대 만나려 소개팅도 나가고 하는, 자기 욕망과 감정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교사가 뭔 성인 군자도 아니고, 제자가 하는 짓 보면 열 받을 수도 있고, 미운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정신봉'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당구 큣대를 들고 거들먹 거들먹 다니며, 스승의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생 엎드려 뻗쳐 시키고 패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 고3 담임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때 일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심정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냥 열 받아서 팼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