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233

당신의 국가 정체성은 당신의 모어(모국어)다

"사람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 속에서 살아 간다. 모국어야말로 우리의 조국임이 확실하다." - 에밀 시오랑 Emil M. Cioran 영아일 때 외국으로 입양 되었거나,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 갔거나, 외국에서 태어나고 살아왔거나...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시민권을 갖고 있거나, 능동적으로 귀화했거나 등등혈통적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사는 사람의 국가 정체성을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 자라 한국어가 서투르지만, 지속적인 가정 교욱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인식하는 미국 시민권자 한인이 그렇다. 문화는 개념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긴 부적절하다.한국의 미풍양속이나 서열 문화, 관행과 터부를 잘 아느냐 모르느냐를 테스트해서 분류할 수 있는 문제가 ..

단상 2020.03.13

많이 빌리고 갚은 사람이 신용이 좋다?

흔히, 금융기관의 신용 점수가 높은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한국 금융권의 신용평가 시스템에서 중요한 평가 항목은 '얼마나 돈을 많이 빌리고 갚았는가'다.쉽게 말해, 금융권에 평생 돈을 빌리고 갚은 적이 없는 사람보다, 많이 빌리고 갚은 '실적'이 있는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이런 기준은 사실 통계학적 관점에서 비롯된 거다.통계학에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일은 앞으로 벌어질 확률이 0에 수렴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벌어진 일은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라는 개념이 있다.이를테면,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적이 있다면 그 일은 얼마든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런 개..

단상 2020.02.28

애초에 느낌의 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 겁니다

"넌 왜 진득하게 공부를 못하니. 공부 잘하는 애들은 뭐 좋아서 공부하니? 다들 놀고 싶은 거 참고 하는 거야."공부 잘하는 애나 못하는 애나 공부 하기 싫기는 똑같은데, 못하는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예요.애초에 공부가 싫다고 느끼는 정도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겁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성실하지가 못해. 누군 야근 특근 하고 싶어서 하나? 누군 퇴근하고 놀기 싫어서 일하냐고. 싫어도 일이니까 참고 하는 거지."젊은 것들이나 늙은 것들이나 야근 특근 하기 싫은 정도가 똑같은데, 젊은 것들은 불성실해서 그런 거 아니예요.퇴근해서 놀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데, 유독 젊은 것들만 그걸 못참는 게 아니예요.애초에 야근 특근 싫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놀고 싶은 욕망의 강도가 각자 달라서 그런 겁니..

단상 2020.02.12

옛날 사진

본가 책장 한켠에 이 게 놓여 있더군요. ㅎㅎ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사진입니다.경주였던 걸로 기억해요같이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로 이긴 한 명이 시키는대로 포즈를 취하고 찍은 겁니다.사진 맨 오른쪽 친구는 그 와중에 뽀큐를 날리고 있네요. ㅋㅋ 어떤 친구는 교사가 되었고, 어떤 친구는 일본 게임 회사에 그래픽 파트 직원으로 몇 년 간 일했던 경력으로 지금은 한국의 모회사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도쿄대를 졸업했다는데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르겠는 친구, 필리핀에서 사업하고 있는 친구,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도 있습니다.저 당시엔 훗날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아, 교사가 된 친구는 예외입니다.)저만해도 인니에서 살게 될 거라는 건 커녕, 인니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도..

단상 2020.01.29

악역을 맡겠다 = 나쁜 짓을 하겠다

"난 지금 악역을 맡고 있는 거야."군대 똘아이 선임이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잖아.회사 악질 상사가 하는 소리기도 하고.최근엔 윤 머시기 검찰총장도 그런 소리 했지. '악역'이라고 하니까 '원래는 악하지 않은데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부득이하게' 그 역할을 맡는다는다는듯한 느낌이 들지?근데 말야, 우리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언제부터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판단했지?군대 똘아이 선임이 군기를 잡겠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후임들 기합 주고 패면 용납했던가?회사 악질 상사가 회사를 위한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부당한 지시와 폭언을 하면 괜찮은 건가? 우리가 의도를 참작해서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순수한 사적 관계' 뿐이야.가령, 엄마가 애 버릇 고친다고 종아리를 때리는 건 폭력 자체는 나쁘더라도 ..

단상 2020.01.03

양심 없는 것도 일종의 능력

흔히 양심이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양심이 작동한 결과가 사회에 긍정적인 것이지, 양심 자체는 사실 족쇄다. 양심이란 건 사실, 무리 생활을 하는 집단 기준에서 유용한 요소다.그 구성원 각자에게는 스스로를 강제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일 뿐이다.만약 양심적 행동에 따른 사회적 보상이 완벽하다면 괜찮겠지만, 그런 사회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래서 양심이 없는 사람은 대개 맘 편하게 산다.소시오패스는 그게 극단적인 케이스인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을 보면서 "난 저렇게는 안산다"라는 건 부정확한 표현이다.양심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못하는 거다.양심이란 개념은 사회화 과정에서 이미 본능의 영역에 세뇌되었기 때문에 이미 판단의 기준으로 굳어 있다.억지..

단상 2019.12.18

어리석음에 대한 자비심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 어리석음을 측은하게 느끼는 마음이 강해진다. 망각과 기억 왜곡, 자기 합리화가 없다면,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스트레스에 미쳐 버릴 거다.사회 생활을 하는 이상, 자기 뜻과는 다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자기 양심을 아예 자신이 속한 조직에 맡기고, 스스로 몽둥이를 들고 나서는 적극적 전향자도 있겠지만, 차마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라도 직접적으로는 폭력에 대한 굴복, 간접적으로는 타인의 횡포에 대해 침묵이라는 소극적 동조 정도는 하게 마련이다.그 때마다 사실은 자신의 비겁함 때문이라는 내면을 직시하고 자책한다면 정신이 남아나기 힘들다.그래서, 회사 방침이 원래 그렇다느니, 처자식을 위해서 그랬다느니 합리화를 하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해서 타인이 받..

단상 2019.12.13

[거짓말] 01. 거짓은 믿어줘야 진실이 되지만, 진실은 믿지 않아도 진실이다

자신은 거짓말을 곧잘 하면서도, 타인이 자기에게 거짓말 하는 건 싫어하는 사람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이 자기에게 거짓말 하는 데 용서없는 사람타인의 거짓말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참말을 믿지 않는 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그러려니 하자.사람이 살다 보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니 남 말도 못믿을 수도 있다.거짓말을 하든 참말을 하든 하는 사람 소관이듯, 남 말을 믿든 말든 역시 그 사람 소관이다.믿으라고 호소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참말을 했으면 그걸로 된 거다.받아 들이는 건 상대방이 알아서 할 일이다.거짓은 믿어줘야 비로소 진실이 되지만, 진실은 믿지 않아도 진실이다.

단상 2019.12.11

혐한의 근원은 인종 차별적 감정이다

일단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과 모든 일본인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하고 말씀드립니다만...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마치 옛날 백인이 흑인에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생리적' 혐오감이 아닐까 싶습니다.일본 영화 를 보면, 주인공 쿠보츠카 요스케와 시바사키 코우가 첫 레슬링을 하려고 분위기가 후끈후끈 해지는 순간 , 요스케의 한국인이라는 고백에 코우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자리를 뜨는 장면이 있습니다.코우가 요스케를 피한 이유는... "아버지가 한국인은 피가 더럽다고 했어." 솔직히, 한국인들 중에도 아직까지 흑인이나 동남아인에게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연령대가 높을수록 흑인에게, 낮을수록 동남아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경향이 강하지요. 일본인의 혐한 ..

단상 2019.10.25

배려로서의 무심함

한국 가는 길, 공항까지 배웅 나오지 않는 여자친구가 좋다.예전엔 서너 시간 차 타고 가서 내가 내리고 나면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걸려 돌아가야 했다.오랜만에 집에 가는 나야 상관 없지만, 집에 돌아 가는 길 내내 쓸쓸했을 여자친구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집에 도착했는데, 줄줄이 비엔나 케찹 볶음만 해두고 일 보러 가신 엄마가 좋다.예전엔 내가 좋아했던 음식 이것저것 잔뜩 있었다.인니로 돌아가면서, 한국 있는 동안 다 먹지도 못해 남은 음식 버리면서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내 맘 편하자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건 배려가 아니다.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거다.그래서 너무 좋다만나면 헤어질 때가 반드시 오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으니그 적당한 무심함이 편하다.

단상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