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231

관리자의 역설 - 일이 터지면 넌 뭐 했냐, 안터지면 넌 하는 게 뭐냐

관리자 업무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느꼈던 점인데,관리자는 일이 터지면 무능하다는 평가를, 일이 터지지 않으면 쓸모 없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입니다.일이 터지면 넌 뭐했냐는 소리를 듣고, 일이 터지지 않으면 월급 도둑놈 소리를 듣지요.그래서, 닳고 닳은 월급쟁이 관리자 중에는 해결할 수 있는 선의 일들은 터지도록 냅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별일 없어서 매일 유유자적 노는 것처럼 보이는 관리자가 가장 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덕분에 인니 첫 직장에서는 안정화가 된 이후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게 됐습니다만.물론 그 이유 하나 만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그런 점도 있었을 겁니다.워낙 회사에 별일이 없다 보니, 한국 본사에서 발령 온 부장이 보기엔 제가 하는 일이 만만해 보였겠지요.본인도 이제 인..

단상 2020.07.15

여행 중 재래시장에서 흥정해서 정말로 싸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여행 중 재래시장에서 흥정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까지는 뭐 괜찮다.하지만, 많이 깎아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는 건 호구질 당하면서 좋아하는 거나 다름 없다. 흥정은 기본적으로, '부르는 게 값'이던 옛시절의 잔재다.지역마다 물품의 값어치가 다르던 시절엔 가격이란 형성되는 것이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늘 꾸준히 사주는 단골에게는 싸게 팔았고, 단골이 아닌 사람에겐 좀더 비싸게 팔았다.제 값이란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됐다.뜨내기 외지인에게는 사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바가지를 씌워도 괜찮았다.그 시절엔 지역마다 '폐쇄적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었다. 정찰제가 아닌 흥정에서는, 구조적으로 사는 사람이 절대로 파는 사람을..

단상 2020.07.10

맹신의 행복

믿으세요.믿으면 편해요. 자식이 반 친구를 잔인하게 왕따 시킨다는 소문을 들었군요.믿지 마세요.내 자식이 그럴리 없잖아요?자식을 믿으세요.믿으면 편해요. 내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난대요.믿지 마세요.내 남친이 그럴리 없잖아요? 내 남편이, 내 부인이, 내 직장동료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그럴리가 없잖아요.믿으세요.믿으면 편해요. 혹시 배신을 당한다면 믿었던 자신을 자책하지 말아요.배신한 상대를 탓하세요.그러면 편해져요.배신한 상대가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어서 탓하기 힘들다고요?그러면 그의 주변사람을 하나 택해서 그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탓하세요.그러면 편해져요. 당신은 아무 죄 없잖아요.그저 당신에게 죄가 있다면, 누군가를 믿은 죄 밖에 없잖아요?믿음이 무슨 죄인가요.당신..

단상 2020.05.29

손톱을 깎다가... - 다름과 불공평, 그리고 공정

난 왼손이 심하게 서툴다.뭘 하려고 하면 내 맘처럼 움직이질 않는다.거의 모든 일을 오른손 위주로 한다. 손톱을 깎았다.오른손은 왼손 손톱을 길이도 적당하고, 예쁘게 잘 깎아 주었다.하지만, 왼손이 깎아준 오른손 손톱은 길이도 들쭉날쭉 하고, 모양도 예쁘지 않다.지금껏 늘 그래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쭉 그럴 거다. 왼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게 공정한 걸까?

단상 2020.05.22

대기업 횡포가 그렇게 심하다는데 왜 하청을 하고 싶어할까?

대기업의 하청 쥐어짜기 갑질 횡포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거의 상식처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 '사장'이 대기업 하청 오더 따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가 뭘까요?'한국의 산업 구조가 워낙 대기업 중심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건 일부 맞는 부분도 있지만 부족한 답입니다. 어쩔 수 없으면 아예 안하고 말지, 언론에 나오는 거 보면 쥐어짜여 죽겠다고 하는데 아등바등 할 이유가 없습니다. 뭔가 득이 있으니까 하려고 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일단 대기업의 하청 쥐어짜기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100% 사실입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을 하든 인건비가 오르든 매년 정기적으로 '무조건' 단가 인하 협의가 들어오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쥐어짭니다. 하청사 제품의 원자재 단가 10원 단위까지 정확하..

단상 2020.05.15

주변에 피해를 끼치며 사는 착한 사람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족을 끔찍히 위하는 사람입니다.타인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자기 부르는 자리엔 어떻게든 참석합니다.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돕습니다.그는 착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회계도 모르고, 법률도 모르며,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하지만, 본의는 아니었습니다.그는 착한 사람입니다. "서로 도와가며 사는 거지."그가 잘하는 말입니다.하지만 그에게 금전적 도움을 준 적은 몇 번 있어도, 그가 내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딱히 그가 나를 돕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저 그가 내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 없었을 뿐입니다.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단상 2020.05.01

더러움에 대한 선입견

목욕 후,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걸 불결하게 생각한다.하지만, 깨끗이 씻었다면 얼굴이나 발이나 다 똑같은 피부다.사실 더럽기로는 별의 별 것 다 만지는 손이 제일이다.하지만, 손 닦은 수건으로 얼굴 닦는 건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그냥 발을 더럽다고 여기는 선입견 때문이다. 만약 여동생이나 여친이 자기 수염 깎는 면도기로 겨드랑이나 다리털 밀면 질색을 한다.씻지도 않고 생으로 미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전염병에 옮을까봐 그러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 게 아니라면 그저 선입견일 뿐이다.그냥 면도하는 도구일 뿐이고, 쓰고 잘 씻으면 된다.식당에서 별의 별 사람 입에 들락거렸을 수저는 설거지 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잘도 쓰지 않나. 수저 얘기가 나온 김에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인니 문화에 대한 선입..

단상 2020.04.24

스승의 나이가 되어서 이해가 가는 스승의 마음

고3 때 일이다.학력고사 점수가 애매하게 나왔던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어차피 재수할 거, 서울대에 넣고 싶었다.교무실에 가서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 싶다고 하자, 담임 선생은 책상을 밟고 뛰어 올라 내게 날라차기를 하고 손으로 마구 후려팼다.당시 같은 학년 동기들 사이에 전설이 된 교무실 날라차기 사건이다. ㅋㅋ 학생의 시각으로 본 교사는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존재였다.부모, 스승, 교수, 박사, 검사 등등 일반 명사에 덧씌워진 미화된 가치를 벗어나지 못하니, 왜 그랬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거였다.교사도 하나의 직업이고, 생계를 걱정하고, 술도 마시고,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연애 상대 만나려 소개팅도 나가고 하는, 자기 욕망과 감정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교사가 뭔 성인..

단상 2020.04.01

당신의 국가 정체성은 당신의 모어(모국어)다

"사람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 속에서 살아 간다. 모국어야말로 우리의 조국임이 확실하다." - 에밀 시오랑 Emil M. Cioran 영아일 때 외국으로 입양 되었거나,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 갔거나, 외국에서 태어나고 살아왔거나...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시민권을 갖고 있거나, 능동적으로 귀화했거나 등등혈통적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사는 사람의 국가 정체성을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대표적인 예로, 미국에서 자라 한국어가 서투르지만, 지속적인 가정 교욱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인식하는 미국 시민권자 한인이 그렇다. 문화는 개념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긴 부적절하다.한국의 미풍양속이나 서열 문화, 관행과 터부를 잘 아느냐 모르느냐를 테스트해서 분류할 수 있는 문제가 ..

단상 2020.03.13

많이 빌리고 갚은 사람이 신용이 좋다?

흔히, 금융기관의 신용 점수가 높은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한국 금융권의 신용평가 시스템에서 중요한 평가 항목은 '얼마나 돈을 많이 빌리고 갚았는가'다.쉽게 말해, 금융권에 평생 돈을 빌리고 갚은 적이 없는 사람보다, 많이 빌리고 갚은 '실적'이 있는 사람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이런 기준은 사실 통계학적 관점에서 비롯된 거다.통계학에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일은 앞으로 벌어질 확률이 0에 수렴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벌어진 일은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라는 개념이 있다.이를테면,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적이 있다면 그 일은 얼마든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런 개..

단상 202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