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또바 호수 Danau Toba - 더 변하기 전에] 01. 실랑잇 국제공항으로

명랑쾌활 2018. 1. 22. 11:23

또바 호수 Danau Toba 에 다녀왔습니다.

약 7년 전에 가보고 이번이 두번째네요.

http://choon666.tistory.com/325?category=289511

또바 호수로 여행지를 결정한 이유는, 첫째, 또바 호수에서 가까운 실랑잇 공항 Bandara Silangit 과 자카르타 공항을 이어주는 항공편이 생겨서 여정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실랑잇 공항에서 빠라빳 항구 Pelabuhan Parapat 까지 2시간입니다.


기존의 메단 Medan 에서 빠라빳 항구까지는 대략 6시간 정도 걸렸지요.

게다가 또바호수 옆을 달리는 구간은 내리막 굽이길인데, 워낙 차들이 무식하게 달려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구간이기도 하고요.

2011년도에 또바 호수에 갔을 적에는 꼭두새벽에 자카르타의 집에서 출발해서 빠라빳 항구 도착했을 때가 저녁 6시 쯤이었습니다.

그러던 걸 낮 12시 쯤에 도착할 수 있게 됐으니, 정말 획기적으로 여정이 줄어들었지요.


또바 호수에 가게 된 두번째 이유는, 실랑잇 공항이 2017년 10월 28일부로 국제공항으로 개방됐기 때문입니다.

인니 현 대통령인 조코위 Joko Widodo 가 인니 전역에서 10군데를 선정하여 발리같은 관광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관광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중 또바 호수가 선정됐다는 사실이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말레이시아-싱가폴-인니 삼국 여행 패키지는 보통 싱가폴에서 배 타고 인니 바땀 Batam 특별구 잠깐 찍고 나오는 코스인데요, 또바 호수를 찍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 합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에서 실랑잇으로 이어지는 항로가 개통됐다는 뉴스를 보고, '이제 또바 호수도 많이 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변하기 전에' 봐둘 생각으로 가게 된거죠.


세번째 이유는, 발리 아궁 화산 폭발 때문이었습니다.

항공권 예약하려던 무렵에, 아무래도 조짐이 안좋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여행 출발일로부터 4일 전에 폭발해서 한국에서도 임시 특별편이 뜨는 난리가 벌어졌으니,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그러저러해서 또바 호수를 가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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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실랑잇 직항로는 가루다 인도네시아와 스리위자야 항공 Sriwijaya Airline 두 곳에서 운행한다.

오전 7시 반에 출발하는 스리위자야 항공편으로 출발했다.

블리뚱 Belitung 여행 갈 때 몇 번 이용했던 스리위자야 항공은 연착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도 제시간에 출발했다.

한산한 시골공항 갈 때만 이용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 대상에 대한 인상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논리적으로 싫고 좋고는 없다.

싫고 좋은 감정이 들고 나서 논리적으로 그 감정의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스리위자야 항공을 좋아하는데 확률을 들이밀 필요는 없겠다.


저가 항공사지만 밥을 주는데, 아주 실하다. ^0^

나시 고렝 Nasi Goreng (인니 볶음밥), 닭튀김, 달걀말이, 끄르뿍 Krupuk (새우칩), 롤빵이 나왔는데, 다 맛있었다.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고 있다.

수마트라 Sumatera 지역 특유의 언덕 지형이 보인다.

이렇게 언덕으로 들쑥날쑥한 지형을 인니어로 부낏부끼딴 Bukit-bukitan 이라고 한다. (bukit 언덕)

'그럼 구눙 gunung 이 '산'이라는 뜻이니까, 구눙구눙안 gunung-gunungan 은 산악지대겠네' 라고 생각한다면, 응용력을 칭찬해 주면서 땡이라고 하겠다.

산악지대는 쁘그눙안 pegunungan 이다.


해발고도 1.4km 산중에 위치한 공항이라 착륙할 때 좀 쫄긴 했다.


활주로 확장 공사라도 하는 모양이다.


휑하다.

블리뚱 공항보다 더 한적해 보인다.

http://choon666.tistory.com/353?category=289511


사진에 보이는 게 공항 건물 다임.


나를 태워다 준 꼬마 비행기


공항 건물 입구에서 찍은 출구 방향

저 게 다다.

검색대고 뭐고 없다.

카트 대신 끌어주겠다고 수작 거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신경도 안쓴다. ㅋㅋ

완전 개방식이라, 마중 나온 사람이 그냥 들어와서 저 의자에 앉아 있어도 되는 구조다.


국제공항 개장 및 셔틀버스 운행 개통 기념으로 올해 말까지 셔틀버스 이용료가 무료라는 기사를 봤는데... 출발이 11시다.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

뭐 할 수 있나, 그냥 택시 주워타고 가야지.

단기 여행자에게는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


썰렁하다, 보통은 삐끼들이 호객을 해야 하는데...

인니 공항 중에서 이렇게 여행객에게 무관심한 곳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좀 신기하다. ㅋㅋ

뭘 찾는 척 두리번 거리는 액션을 보이니, 그제서야 아저씨 한 분이 택시 찾냐고 말을 건다.

삐끼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경쟁이 심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저씨를 따라 주차장을 질러 끝까지 가니...


이런 곳이 있다.

두 여행사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었다.


인니에서는 뜨라플 travel 은 '여행'이라는 뜻보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설 직행 교통편'이라는 뜻이 더 일반적이다.

여행을 의미하는 인니어로 위사따 wisata 라는 표현이 있지만, 보통 잘란-잘란 jalan-jalan 이라고 하며, 영어 tour 도 '뚜르'라는 발음으로 여행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삐끼 아저씨를 따라 온 곳의 가격표


옆가게 가격표

얼핏 가격이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약간 다르다.


윗편 여행사보다 아랫편 여행사가 빠라빳 Parapat 가는 요금이 10만 루피아가 비싸지만, 행선지는 8군데 더 많다.

윗편 여행사의 이름은 CV. Tapanuli Trans Tour 인데, CV는 일종의 합자회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

CV는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 지위가 없다.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설립이 쉽다.

일반적으로 CV 설립은 내국인에게만 허용되며, 허용되는 사업분야도 건설, 판매, 인쇄, 대행업에 국한된다.

(예전에는 외국인 고용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현지인 명의로 CV를 만들어 체류했었으나, 2013년도 이후로 금지됐다.)

아랫편 여행사의 이름은 PT. Arga Noah Mandiri 인데, PT는 주식회사라는 뜻이다.

PT는 법무부에 신고하여 인허가를 받아,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법인'이다.

편의상 CV는 소규모 업체로 보면 되고, PT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대신, 신뢰도는 당연히 PT가 더 높다.

저렇게 나란히 가격표 걸어 놨는데 PT 장사가 되겠냐 싶겠지만, 신뢰도 때문에 PT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니가 한국보다 평균 임금 수준은 훨씬 낮지만 빈부격차가 크기 때문에, 부자는 엄청 부자다.

항공편으로 또바 호수 여행 올 정도의 현지인이라면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훨씬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공항 앞 도로

시골 정취가 물씬 물씬~


지역 경계 표시도 지방 특유의 형식이 살아있다.


얼핏 한국 풍경과 비슷하다.


바딱 Batak 종족 전통양식의 집인데, 지붕은 함석이다. ㅎㅎ


20여분쯤 달리자 또바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또바 지역 군청 입구도 전통양식으로 꾸며졌다.


수마트라 지역의 오토바이 택시들은 사이드카 형식이다.


평범한 시골집


저 끝 시선이 닿는 데까지 곧게 뻗은 도로

이 지역 차들은 무식하게 빨리 달린다.

바딱족은 성질이 급하고 화도 잘내서,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성격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점이 차량 운행에도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오토바이들도 천천히 달린다면 도로 가장자리 쪽에 붙어서 얌전히 달리는 거 보니, 자동차 달리는데 깔짝 거리면 욕 먹는 모양이다.

자와 지역은 성질이 느긋하고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문화라, 차선 한복판에 느긋하게 서행하는 오토바이들이 그리 드물지 않다.

예전에는 자와 문화의 그런 점이 안좋은 거라고 단정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좋고 안좋고, 옳고 그르고의 범주에 드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2월 초였는데, 여기저기 소박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보였다.

바딱족은 대부분 기독교를 믿으며, 이 곳 또바 지역이 일종의 성지 대접을 받는다.

무슬림의 박해 때문에 산으로 들어갔는데, 산 꼭대기 분지인 또바 지역에 많이 정착했다고 한다.

'일종의 성지 대접'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한 이유는, 기독교 종교의 성지가 아니라, 바딱 종족의 성지 개념이기 때문이다.


집들 대부분이 도로에 면해서 뒤쪽으로 좁고 길게 지어졌다.

이런 형식의 집을 베트남에서 많이 봤었다.

자연환경의 영향일까, 아니면 문화적 영향일까?


옥수수대도 보이고...


어디 강원도 산골마을 같은 풍경


11시 30분이 조금 안되어 빠라빳 항구 Pelabuhan Parapat 도착!

9시 30분 조금 넘어서 출발했으니, 2시간 좀 안되게 걸린 셈이다. +_+b

게다가 운 좋게도 도착하자마자 막 출발하려는 배에 바로 탈 수 있었다.

저 배 놓쳤으면 30분~1시간 꼼짝 없이 기다렸어야 했다.


배 타는데 왜 요금 받는 사람이 없지? 하고 당황하지 말자.

수금하는 직원이 배안을 돌아다니면서 다 받는다.

누가 냈고 누가 안냈는지 귀신같이 아니, 자리 옮기는 페이크 써봐야 소용없다.

게다가 배삯 받으면서 어디 가냐고 묻는데, 그 거 일일이 다 기억해서 선장한테 알려주는 일도 한다.

직업의 세계는 놀랍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능력이 필요하다면 결국 그 능력을 갖추게 되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해서 숙달이 되면 일반인이 놀랍게 생각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배삯 15,000 루피아


빠라빳 항구와 사모시르 섬 Pulau Samosir 을 왕복하는 배편은 두 가지가 있다.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름)

노란 선은 사모시르 섬 동부의 행정 중심지인 또목 Tomok 을 왕복하는 배편 경로로,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한다.

파란 선이 사모시르의 숙박업소 밀집 지역인 뚝뚝 Tuktuk 을 왕복하는 배편 경로다.

뚝뚝 지역이 시작하는 남쪽 선착장을 시작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숙박업소마다 호변에 만든 선착장에 타거나 내리는 승객들이 있으면 일일이 배를 대는 시스템이다.

배에 타기 전에 직원이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잘못 탈 일은 없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선착장이 뚝뚝 지역을 도는 배가 첫번째로 들르는 곳이다.

저 곳 빼고는 다 숙박업소들의 사유지라, 뚝뚝 주민들은 다 저 곳에서 타고 내린다.


예약한 숙소 선착장에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 배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12시 반이다.

이제 반나절만에 또바 호수까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_+b


리셉션이 있는 숙소 맨 위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만만치 않다.

모든 객실이 호수 전경을 볼 수 있는 숙소라는 점이 맘에 들어 선택했는데, 이런 단점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체크인은 2시지만 손님이 별로 없어서 바로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가능한 한 가장 윗쪽에 있는 객실을 달라고 했다.

난 쉬러 왔지, 체력단련 하러 온 거 아니다. ㅋㅋ


여행 뭐 있나.

이런 곳에서 설렁설렁 쉬는 거지.


화장실 겸 샤워실이 쓸데없이 넓직하다.

서민적인 삶만 살아와서 이렇게 넓으면 적응이 안된다.


일단 한숨 돌리고 당분 보충부터~


산간지방이라 모기도 시커먼 전투모기다.

저런 모기를 보면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소대가 탄약고 격오지 근무를 하던 시절, 짬구덩이를 판다고 숲에 들어갔더니 전투모기들이 미친듯이 달려 들었다.
전투모기는 일반 모기와는 달리, 간 따위 보지 않는다.
피부 드러난 곳에 그냥 달려들어, 내려앉자마자 침을 꽂는다.
그래서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야전삽으로 땅을 파는 동안, 다른 두 명은 땅 파는 사람 다리를 계속 털어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제자리뛰기와 도리도리를 해야 했었다. ㅋㅋ
그러고도 각각 20~30방은 물렸다.

군대용어 설명
* 격오지 : 부대의 정규 주둔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근무지로 보통 소대 단위로 생활하는 소규모 주둔지
* 짬구덩이 : 음식물 쓰레기(=짬)를 파묻는 구덩이. 보통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 아무데나 판다.
* 전투모기 : 산모기를 뜻하는 군대 속어. 검은줄 얼룩무늬가 전투복 같다고 해서 전투모기라고 한다.


날씨가 꾸물꾸물 하지만, 일단 밥은 먹으러 나가야겠다.


뚝뚝 지역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레게 레스토랑은 전망이 좋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어딜 가나 시켜 먹어보는 나시고렝


노른자는 덜 익히는 센스 굿~

약간 짜긴 했지만, 지금껏 먹어본 나시고렝 중 맛있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닭튀김도 바싹 튀겨서 맛있었다.

인니 닭튀김도 종류가 많은데, 난 나시고렝에 딸려 나오는 '그냥 닭튀김'이 가장 맛있다.


일행이 시킨 프렌치 토스트

그냥 사진 보면 연상되는 딱 그 맛보다 약간 맛없는 정도.

인니는 대도시 고급 빵집을 제외하고, 가게에서 파는 보통 빵들은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이런 전망에서 이런 저렴한 식사가 인니를 여행하면서 누리는 장점 중 하나다.


시골마을 학교의 크리스마스 트리


비 올 것 같아 숙소에 돌아왔다.

사진 중앙 약간 오른쪽에 산 부분에 하얀 세로줄처럼 보이는 건 국지성 소나기가 내리는 거다.

저 곳만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얼마지 않아 숙소 부근에도 마구 쏟아진다.

발코니에 앉아 커피 마시며 비 쏟아지는 풍경 보는 것도 좋고, 침대에 뒹굴 거리며 빗소리 듣는 것도 좋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짓이지만, 여행 와서 그러면 확실히 맛이 다르다.


두어 시간 쏟아지다 그쳤다.


비가 그치니, 바나나 보트 타겠다고 부지런히 기어들 나온다.


6시 좀 지나니 해가 까무룩 진다.

끼니 때 되면 어디서 먹나 찾아 나서는 게 여행 떠나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숙소 직원에게 라이브 카페를 추천 해달랬더니 짜사 디 마누룽 Casa di Manurung 레스토랑을 추천해줬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는 로이스 펍 라이브 뮤직 Roy's Pub 은 어떠냐 물어보니, 거기도 괜찮은데 짜사 디 마누룽이 제일 괜찮댄다.


적당히 불량한 입구가 마음에 든다.

아예 2층만 영업한다.


7시 반쯤 갔는데, 텅텅 비어있다.

8시에 영업 시작한댄다.

메뉴판을 봤더니 술 밖에 없다.

음식은 무슨무슨 튀김 세트 딱 하나만 된다.

일단 다른 곳에서 배 좀 채우고 다시 오기로 했다.


알리사 레스토랑에 갔다.

분위기가 너무 밝고 건전해 보였지만, 가게 앞에서 뭘 열심히 구워가며 연기를 풍풍 풍기는 게 마음에 들었다.


역시나 저렴한 가격대


개가 한 마리 돌아다니고...


고양이도 한 마리 돌아다닌다.
이슬람권인 인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양이가 흔한데, 이슬람권이 약한 몇몇 지역들은 개가 주류고, 고양이는 드물다.
아직 치우지 않은 테이블에 올라가 손님이 남긴 음식을 물고 도망가는 것 보니 따로 보살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사납게 쫓지는 않았다.
바딱 사람은 한국인만큼 성격이 드세다던데, 고양이를 심하게 쫓지 않는 것 보면, 한국인들이 유독 동물에 적대적인 건 단순히 성격탓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시킨 Fresh Pork Grill 을 굽고 있다.

1인분 시켰는데 뭐 저리 많이 굽나 싶었는데, 저 중 일부만 내 것이었다.


햄 베이컨 살라미 피자

별로 맛없었다.

오븐에 굽긴 구웠는데, 피자 도우가 퍼석거렸다.


돼지고기 구이 1인분

고기 자체는 맛있는데, 소금간이 좀 부족했다.

같이 나온 소스는 시고 짰는데 한국인 입맛에 호불호가 좀 갈릴듯한 향이 강했다.


나시 고렝은 그냥 그저 그랬다.

돼지고기가 들어갔다는 게 특색


우리 테이블에 음식이 나오자 냉큼 영업 나온 귀여운 개색히


몇 점 줬더니 슬금슬금 와서 허벅지 위에 턱을 얹는다.


이쁜 짓이 뭔지 좀 아는 영리한 개색히였다.

고기도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손으로 직접 먹였는데, 사람 손가락 물지 않도록 고기만 조심조심 물었다.


고양이도 싫지 않은데, 개가 더 내 성격에 맞는다.

고양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에 비해 개는 상대의 반응에 보다 민감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비중을 크게 둔다.

내가 어린애나 나이 헛처먹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이런 내 취향과 연관이 있을 거다.

아, 사람에게 그렇다는 거지, 고양이가 싫다는 게 아니다.

고양이과 동물들 습성이 원래 그런 걸 뭘 어쩌겠나.


아, 난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반려는 '뜻이나 행동을 같이 한다'는 의미라, 아무에게나 붙일 정도로 가벼운 뜻이 아니다.

좀 더 과장해서, 결혼하고 같이 사는 배우자마저도 반드시 반려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키우는 동물에게 가족 같은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비중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반려라는 표현을 쓰는 건 한참 과하다.

개에게는 개의 살아가는 의미가 있고,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살아가는 뜻이 있을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뜻은 아닐 거다.

키우는 동물에게 의미를 투영하는 건 기르는 사람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또한 위안이기도 하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내 보살핌을 받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삶이 종속된 건 아니다.

내가 싫어서 떠날 수도 있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듯, 기르는 고양이나 개도 주인과 뜻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대상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난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나와 뜻이 같을 거라고, 내 마음을 알 거라고 내 멋대로 규정하고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는 그저 내가 기르는 동물일 뿐이다.
어쩌다 보니 기르고 길러지는 입장으로 만나 같이 살고 있는 거고, 내가 사주는 밥 먹고 똥이나 싸면서 팔자 좋게 뒹굴거리며 보내고 거고, 이렇게 살다 헤어질 수도 있는 거고, 고양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어느 쪽이 먼저 죽든 남은 쪽은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거고... 뭐 그렇 거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