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 [謹弔] 대한민국

명랑쾌활 2009. 5. 25. 02:14
불신이 어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
부인이 돈을 받은걸 몰랐다는게 말이 되냔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역시 정치인은 다 똑같단다. 치졸하단다.

어른은 변호사셨다.
정치의 정점인 대통령을 하셨던 분이시다.
자신은 몰랐다고 하면 세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 분이 몰라서 그리 뻔뻔하고 옹색한 변명을 하셨을까?
묻고 싶다. 정말 모를 리가 없는 일이냐고.
묻고 싶다. 부인이 남편 몰래 카드 긁었는데 카드 터질 때까지 남편이 모르는 경우가, 정말 세상에 없는 일이냐고.
묻고 싶다. 내 남편이 그럴 리 없다, 내 부인이 그럴 리 없다, 그러다 일 터지고 알게 되는 경우가, 정말 있을 수 없는 경우냐고.

행적이 그 사람을 말해 준다.
그 분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던 분이시다.
세상이 다 그 분이라 손가락질 해도, 그 분이 아니라고 하면 그래서 난 그렇게 믿는다.
그 분은 그런 분이라고 보는 내 눈을 믿는다.
내가 순진하고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의 진정을 자신의 논리로 참, 거짓을 재단하는 것이 똑똑하고 현명한 거라면, 난 그냥 바보로 살고 싶다.
가끔은 논리가 아닌, 그저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똑똑이들이여,
당신이 피의자가 되고, 모든 정황 증거가 당신이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을 때,
당신의 결백하다는 호소를 믿어 줄 사람을 바라지 마라.
당신들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어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내게 말하길, " 뭐 사람이 그렇게 경망스럽냐." 라고 하더라.
어른 살아 생전에도 그렇게 미워하고 욕하던 분이셨다.
살면 산대로 욕하고, 죽으면 죽는 행위도 밉다고 또 욕하는 사람이 어디 그 사람 뿐이랴.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마지막 것을 내던지며 부르짖는 외침은 들을 생각이 없고, 죽음을 택한걸 어리석다 치부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랴.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극도의 미움을 품고 사는 비틀린 사람들과 살고 있는, 내 삶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겠다고 하셨는데... 그 끝은 이렇던가...
동시대의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던 어른이 돌아가셨다.
신념을 가지고 바르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겠다던 그 분이,
결국 그런 희망을 품기엔 너무 썩을대로 썩어버린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시고 가셨다.

대한민국은 죽었다.
보통 사람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행복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내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은 없다.


...어른이 남기고 가신 마지막 씨앗이 어떻게 될지에, 나 역시 실낱같은 희망을 열어 둔다.
하지만... 이 나라에 대한 애정도 분노도... 점점 덤덤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