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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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II 04. 가족과 생존

명랑쾌활 2018. 5. 9. 12:55

3개월차가 되어, 사료를 줘봤다.

생각대로 잘 먹는다.

인니 고양이들에게 사료는 아주 귀한 부잣집 음식이다.

부잣집이 아니고서야, 고양이 따위를 위한 먹이를 따로 돈 주고 살리가 없다.


겁쟁이 막내 흰둥이가 뒤늦게 끼어들어 보려 하지만, 포지션도 잘못 선정했고, 힘도 약하다.

야생의 세계에서 끼니는 생존의 근본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다들 먹고 나니까 허겁지겁 먹는다.

이런 녀석 꼭 있다.

보살펴 주는 존재가 없으면 죽을 거 같은 녀석.

하지만, 겁이 많다는 건 조심성이 강하다는 뜻이고, 야생에서 생존하는데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보살펴 주는 존재가 없더라도 이 녀석이 다른 녀석들 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용감하게 살든, 겁쟁이로 살든,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사느냐'만 중요하다.

어떻게든 자립 시기까지 생존한다면, 이런 녀석이 생존력이 더 강해질 거다.

조심성으로 허기를 참는다는 건 좋은 능력이다.


어미 고양이도 자기 먹을 게 넉넉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그리 심하게 새끼들을 쫓지 않는다.

먹을 게 부족했다면 젖이 안나오기 때문에, 진즉 가차없이 발길질로 밀어냈을 거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혼자 살만큼 키워줬고, 새끼야 또 낳으면 되니까.


저녁 시간이 되어 사무실에 나 혼자 남게 되면, 저렇게 문앞 신발털개 위에 와글와글 늘어져 잔다.


못보던 녀석이 하나 굴러들어 왔다.

우리 어미 고양이에게 물려 죽기라도 할까봐 일단 사무실 안에 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니 고양이들은 그렇게 텃세가 심하지 않다.

성인 수컷이 자기 구역에 들어온 성인 수컷에게만 지롤한다.


새끼다운 경계심이다.


이제 좀 기가 사는듯 보여, 밖으로 내보내줬다.

본의 아니게 길을 잃어 여기 온 거고, 지금 어미가 애타게 찾고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어미에게 버림 받았다면, 먹을 거 찾기 막막하면 다시 이 곳으로 오겠지.


어미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새끼들만 남았다.

이제 어미가 안보여도 잘 찾지 않는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하는 건 만국 공통의 본능인가 보다.


공장 현장 한 바퀴 돌고 온 사이에 이 눔덜이 내 자리를 꿰차고 자빠졌다. ㅎㅎ


어제 내보냈던 새끼 고양이가 지 동생을 데려 왔다.

어미에게 다른 일이 생긴 모양이다.


둘 다 겁이 많다.


원래 있던 고양이들 구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옮겨 놨다.

이 당시만 해도, 같은 구역에 두면 어미 고양이가 물어 죽이는 줄 알았다.

지금이라면 지들끼리 알아서 서열 정리하라고 그냥 같은 구역에 풀어 놓을 거다. ㅎㅎ


다음날 와보니, 한 놈은 사라졌다.


둘 다 상태가 안좋지만, 그나마 좀 나은 형 고양이가 사라졌다.

이 녀석은 아무래도 힘들 거 같다.

열대지방이라도 밤에는 추운데, 체온을 나눌 대상 없이 혼자 버티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추위와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병에 걸려 죽기 십상이다.


오랜만에 또 온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

새끼 고양이가 애비 고양이 밥 먹는데 얼쩡 거리면 호되게 처맞기 때문에, 애비 고양이 밥만 따로 떨어뜨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