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Omah Buruh (Jembatan Buruh) : 노조연합이 불법 점거한 다리

명랑쾌활 2018. 3. 19. 11:44

한국의 공업단지가 서울의 구로공단에서 안산-시화 공단으로, 또 인천으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갔듯, 인도네시아도 수도 자카르타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공단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자카르타 동쪽에 인접한 버까시 Bekasi 군은 다시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자카르타에 인접한 서부는 주거 신도시로, 서부는 공단으로 개발됐다.

지도 캡쳐에 표시한대로, 서부 버까시에는 다섯 곳의 공단이 있다.

이 중 자바베카 공단은 삼성과 LG가 있기 때문에 연관 하청 한국 기업들이 많고, 현대 공단에도 한국 기업들이 많은 편이다.


그 중 MM2100 공단과 에집 EJIP (East Jakarta Industrial Park) 공단을 이어주는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MM 공단이 있는 찌비뚱 Cibitung 지역과 에집 공단이 있는 찌까랑 Cikarang 지역을 나누는 강이 있다.

그 강을 넘을 수 있는 다리가 드물어 (인니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출퇴근길을 한참 돌아가야 했던 내게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2017년 8월 경, 두 공단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쁜 마음으로 다리를 지나는데, 다리가 왠지 방금 지은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나는 다리 옆에도 똑같은 모양의 다리가 하나 더 있었고, 그 위에 판자집 같은 것이 보였다.
다리 너머 강 위에는 배를 이어 만든 부교도 보였다.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다들 즘바딴 뿌뚜스 Jembatan Putus (끊어진 다리), 즘바딴 부루 Jembatan Buruh (노동자 다리), 오마 부루 Omah Buruh (노동자의 집) 등등 다리를 지칭하는 말은 알지만,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외국인에게 얘기하기 꺼려져서 안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 출처 : https://lippocikarang.wordpress.com/tag/kawasan-industri-cikarang/ >

2008년 당시, 이 곳에는 아직까지 배를 이어서 만든 다리 밖에 없었다.


< 출처 : pasangmata.detik.com >

즘바딴 라낏 찌까랑 Jembatan Rakit Cikarang (jembatan 다리, rakit 뗏목, 부교) 이라고, 꽤 유명한 명물이었다.

이 다리가 아닌 다른 길로 강 건너편에 가려면, 최소 10km 이상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통행료를 지불하고 이 다리를 이용했다.


< 출처 : https://lippocikarang.wordpress.com/tag/kawasan-industri-cikarang/ >

2010년 10월 경, 홍수가 났을 당시.


이렇게 홍수가 나면, 빙 돌아서 깔리말랑 길로 가야 했다.


< 출처 : https://lippocikarang.wordpress.com/tag/kawasan-industri-cikarang/ >

2008년 11월 경 에집 공단에서 바라 본 다리 풍경.

이 당시 이미 다리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워진 다리가 찌까랑 에집 공단에서는 이미 2008년에 이어졌지만, 찌비뚱 MM 공단쪽에서는 2013년이 되어서도 아직까지 다리를 잇는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


2010년 경, 에집 공단에 있던 Kymco 라는 회사가 폐업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해고 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 천막 농성을 하다 쫓겨나 다른 장소를 찾았고, 2011년 2월 경, 끊어진 다리 끝에 천막을 치고 불법 점거했다. (하단 사진 속 화살표)


2013년 경 사진.


이어지지 않은 다리는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강 위이기 때문에 관할도 애매하다.

그리고 한 쪽이 끊어진 다리의 끝을 점거하고 있다면, 점거한 쪽에서는 방어가 용이하다.

아마도 해고 노동자들도 그런 이유에서 저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고, 공단 측에서도 '일단은' 우습게 보고 소홀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싶다.

공단측은 몇 번의 철거 시도를 했지만, 금속노조 연맹에서 시위를 하며 막아 번번히 실패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FSPMI (Federasi Serikat Pekerja Metal Indonesia 인도네시아 금속노조 연맹)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인니 전국 노조 연합 중 가장 또라이들이 모인 집단이다.
이들이 시위를 하면, 대상이 된 회사의 정문을 닫아도 때려 부수고 들어가 설비며 기물을 파괴하기로 악명이 높다.
또한, 세를 불리기 위해서 금속 분야가 아닌 회사의 근로자들도 거리낌 없이 받아 노조비를 착취하고 있다.


* 참고로 난 노조 반대자가 아니다.

하지만, 인니의 노조연합은 끔찍하게 경멸한다.

인니의 노조 운동은 철저한 비즈니스다.

한국과 달리 인니의 노조 운동에는 자기 희생도, 정의도 없다.

분신은 커녕, 단식이나 고공 크레인 농성하는 것도 본 적 없다.

목적은 오로지 돈이며, 그 수단은 다수가 몰려가 소수를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거다.

절대로 자신을 위험에 몰아 넣거나, 혼자 용감하게 맞서는 일 따위는 없다.

시위 협박을 통해 사측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면, 노조 본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은 협상이 끝난 후, 사측으로부터 '차비'를 뜯어 가는 놈들이다.

단 한 놈이라도, '나는 이런 거 받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새끼 못봤다.

당연하다는듯 썩소를 날리며 낼름 받아 챙긴다.


문제는 다리의 양쪽 끝이 이어지고 나서도, 금속노조 측은 철수하지 않고 버틴다는 거다.

공단이 고발하여 법원에서도 퇴거하다록 판결을 내렸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전기까지 끌어다 쓰고, 확장 개축까지 하며 버티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 곳을 오마 부루 Omah Buruh, 즉 노동자의 집이라고 명명했다. (Omah 는 자와어로 집이라는 뜻이다.)

<오마 부루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omahburuh/>


금속노조측도 자신들의 다리 점거 행위가 불법이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금속노조 뿐 만이 아니라 버카시 지역 노동자들의 상징과 같은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펼치며, 퇴거 명령에 불복하고 있다.
또한, 이 곳 오마 부루가 해고된 노동자들의 재취업 교육, 정보 교환 및 세미나 등을 여는 등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오마 부루가 이전할 수 있는 건물을 제공해달라고 오히려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가입자들에게 걷는 회비는 어디다 쌈을 싸 쳐드셨는지 의문이다.)

2017년 9월 경, 금속노조는 오마 부루 인근의 공단 부지에 '오마 부루 2'를 세우겠다고 밤 중에 몰래 시도했다가, 공단 경비원들에게 발각되어 쫓겨났다.
금속노조 우두머리는 자기 개인 SNS를 통해 '그 지역이 공단 소유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되려 화를 냈다고 한다.


<출처 : www.komasiana.com>

부교 너머로 보이는 오마 부루


당신들이 다리를 점거한 탓에 많은 근로자들이 위험한 부교를 이용해서 출퇴근 할 수 밖에 없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금속노조의 대변인은, 이 모든 것이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정부 탓이며, 이로 인해 위험한 부교를 이용하는 노동자들이 안타깝다는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여줬다.

(원래 인니 노조놈들은 지들이 공장 다 때려부숴 놓고는, "공장이 부서진 건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은 회사 탓이다" 라고 하는 뻔뻔한 놈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아니, 인니 경찰들은 그럼 뭐하나?' 라는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다.

한국인이라면 왜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는가 의아하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인니의 공권력은 한국과 개념이 약간 다른 거 같다.

법 질서 확립과 원만한 분쟁 해결 사이에서, 한국의 공권력은 법 질서 확립이 우선하지만, 인니 공권력은 원만한 분쟁 해결에 비중을 둔다.

...되게 점잖게 표현한 거고, 직설적으로 말해 인니 공권력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주의다.

노조연합이 몰려와서 공장 다 때려 부숴도, 인근 주민들에게만 피해 주지 말라는 식으로 옆에서 멀거니 보고만 있는 놈들이 바로 인니 경찰들이다.

중재한답시고 양쪽 대표 불러서는, 일 커져봐야 회사도 손해이니 적당히 넘어가자고 어르는 게 관할 파출소장이라는 놈이 하는 짓이다.

아, 물론 그러고 나서 '수고비'는 당연히 챙겨간다.


2017년 10월 경, 오마 부루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


자동차들도 떡하니 주차되어 있다.

남의 다리를 불법 점거하는 놈들 치고는 경제적 여유가 꽤 되는 모양이다. (인니는 승용차에 붙는 세금이 매우 비싸서 아직은 사치품에 속한다.)


원래대로라면, 오마 부루 다리를 건너 주욱 직진해서, 사거리로 이어져야 했다.


아스팔트 포장까지 마친 이 길은 막혀 버렸다.


2017년 11월 경, 불어난 강물에 부교가 떠내려 갔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쓸모가 없어져서 방치되어 있다가, 결국 사라졌다.


열 받은 공단 측에서 오마 부루 입구 쪽에 안내판을 세웠다.

<이 땅은 에집 공단 소유입니다.>

그 밑에는 등기 번호까지 명시를 했다. ㅋㅋ


왠 일로 경찰들이 저리 나왔나 했더니...

(쟤네들 저렇게 떼거리로 나와봐야 조또 없다. 노조 쪽수가 더 많으면 깨갱이다.)


며칠 후, 금속노조에서 에집 공단 표지판 앞쪽에 떡하니 자기들 표지판을 세웠다.

<이 길을 이용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뻔뻔스러움도 이 정도면 감탄스럽다.

인니 사람들은 확실히 정의나 양심, 수치심의 개념이 한국 사람과 다른가 보다. ㅎㅎ


개통된지 반년, 이제 개통 소식이 많이 알려져서, 통행량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체가 가끔 발생한다.

원래 편도 2차선이어야 하는 길을 왕복 2차선으로 나눠 사용하느라 복잡해진 길을 보면서, 이런 바보같은 일이 뻔히 벌어지는 인니라는 나라가 새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