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운전기사의 입장에 대한 이해

명랑쾌활 2018. 2. 13. 19:15

운전기사라니,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없는 한국인이라면 왠지 사치의 상징 같아 보일 겁니다.

인건비가 싸니까 '편하라고' 운전기사도 고용해서 왕 노릇하고 산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필요에 따른 선택입니다.

대중 교통이 한국에 비해 매우 열악하고, 치안이 불안한 곳이 많기 때문에 부득이 자가용을 사용해야 하는데, 교통 사고가 났을 경우, 외국인에게 극도로 불리하게 몰고 가는 후진성 때문에 자가 운전의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전기사를 고용합니다.

그런 운전기사에 대해, 그 중에서도 한국인 담당 회사 운전기사 입장에서 생각해 본 바를 글로 써봅니다.

인니 교민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겠지요. ^^



1. 기사의 근무 시간은 기본적으로 가장 길다

운전기사는 태우는 사람이 출근하기 전에 출근해서, 퇴근한 후에 퇴근할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직업이다.

한국인이 지독하게 일 많이 한다지만, 한국인이 그렇게 독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담당 기사도 늦을 수 밖에 없다.

회식이나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마시고 밤 늦게 들어가는 피곤함을 토로하지만, 기사는 그런 한국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난 후에야 퇴근한다.

출퇴근 말고는 하는 일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기 시간도 업무시간이다.

중국집 배달부가 배달이 없어서 대기하는 것을 노는 거라고 간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2. 기사에게 휴식은 업무의 일환이다.

운행하지 않을 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사는 탑승자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피곤해서 조는 일이 있다면 치명적이다.

전날 헛짓거리 하지 말고 일찍 잤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 할 수도 있다.

일찍 잤어도 졸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전날 뭐 했느냐가 아니라, 그때 그때 피곤을 풀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다.

기사와 탑승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

퇴근 후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왔을 때, 기사가 알아서 한국식당 앞으로 차를 대지 않으면 화를 내는 한국인이 간혹 있다.

'아랫사람'을 자기가 일일이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자존심 상해하는 거다.

기사도 사람이다.

탑승자가 밥을 먹을 시간이면 기사도 밥을 먹을 시간이다.

전화 한 통 해주는 것으로 기사가 밥도 좀 느긋하게 먹고, 효과적으로 쉴 수 있다.


3. 매일 퇴근이 몇 시일지 모른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다.

기사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고, 퇴근 후의 사생활이 있고, 할 일이 있다.

그 날의 스케줄을 대략적으로라도 미리 알려주면 막연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4. 기사 월급 시세는 기사가 가장 잘 안다.

월급 싸게 후려쳐서 기사 고용한 사람 중에는 간혹 기사가 월급 시세를 잘 몰라서 속는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는 업무 특성상, 다채로운 지역에서 온 다른 소속의 기사들과 같이 대기하는 시간이 흔하다.

서로 월급 얼마인지 정보 나누는 건 힘들여 조사할 필요도 없다.

몰라서 속는 게 아니라 어지간하면 그냥 다니는 거다.

그리고 기사는 한국인 씀씀이를 회사 직원들 중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기사를 속이려 어설픈 수작 부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많이 주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섭섭치 않게는 줄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한다.

어차피 업무 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적정한 기준이라는 건 없다.


5. 인니의 기사는 운전을 잘 해서 뽑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기사 하려면, 기본적으로 운전을 '잘' 해야 한다.

인니에서는 기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인 평균 수준 만큼도 못하는 기사가 흔하다.

운전 잘 하는 기사를 두게 됐다면 운 좋다고 고마워 할 일이다.

한국의 기사에 비교를 하니까, 운전 못한다고 열통이 터지는 거다.

눈높이와 기대를 낮추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6. 기사가 일부러 느리게 가는 게 아니다.

한국인 끼리 비교해도 운전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이 있고, 빠른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빠르다'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니인들의 '빠르다'는 개념도 다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운전이 빠르고 거친 이유는 아마도 경쟁이 당연한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한국인과 인니인의 '빠르다'의 기준은 차이가 많이 난다.

기사는 어느 정도가 한국인 탑승자가 만족할 만 한 속도인지 알 수 없다. (같은 한국인 끼리도 모른다.)

빠르게 가면 좋지만, 얼마만큼 빨리 가야 할지 모른다.

빠를수록 사고의 위험성도 커진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빠르면서도 안전한' 속도로 달리는 것인데, 한국인 탑승자 기준에서 보면 답답할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속도로 주행하지만, 탑승자가 급하다고 빨리 가달라고 하면 당연히 서둘러 달릴 거다.

그러다 보니, 탑승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하고 미친듯이' 극단적으로 빨리 가는 경우도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적당히'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빨리 가달라고 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빠르게 가려니 벌어지는 일이다.

탑승자가 이해해야 할 일이다.

기사 문화가 발달하지 않고, 아는 사람 끼리 서로 서로 태워주는 식인 한국에서는 '운전대 잡은 사람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와 달라서 답답해도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런 마음을 기사에게도 적용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