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지브리 전시회 The World of Ghibli Jakarta

명랑쾌활 2017. 11. 4. 11:20

지브리 전시회 보러 퍼시픽 플레이스에 갔다.

인니 고급 쇼핑몰들을 볼 때 마다 왜 이리 비효율적인 구조로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층의 매장 위치 안내도도 눈에 잘 뜨이질 않아 어딜 찾아가기도 힘들다.

어딜 가든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하니 운동하기에는 좋은 구조이긴 하다.


한국 브랜드 <비비고>도 전면 좋은 위치에 입점해 있었다.

횟집이었다면 더 잘 어울렸을듯한 인테리어다.

CJ가 동남아시아에 오픈한 유일한 한식 사업 매장이라는데,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이런 비싼 곳에 테스트 매장이라니, 대기업은 확실히 돈이 썩어 넘친다.


저 문으로 들어왔더니 경비원이 여긴 출구라면서 입구쪽으로 통해서 들어오랜다.


저 멀리 행사장 입구가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표를 예약했냐고 묻는다.
없다고 했더니, 한 쪽을 가리키며 그리 가서 현장티켓을 구입하라고 한다.


현장 티켓을 구입하는 곳은 아까 들어갔다 쫓겨났던 출구 바로 옆이다.
게다가, 테이블 중앙의 분리대를 기준으로 오른편 테이블에서 이름과 이메일 주소, 연락처 등을 입력하고 입장료를 지불한 후, 표를 받아 왼편 테이블쪽에 다시 줄을 서서 그 표를 입장권과 바꾸는 시스템이다.
그냥 전부 다 일괄적으로 처리하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그건 인니식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일거리를 쪼개서 한 개라도 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고객이 1분이라도 더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게 인니식 스타일이다.
행사 질서 통제 시스템에 일가견 있는 일본도 인니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이상, 인니식 병신같은 시스템을 따르는 게 진정한 현지화다.

입장권 가격은 1인 35만 루피아, 한국돈으로 3만원이 조금 넘었다.
비싼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인니는 뭐 행사 했다 하면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무질서해서 가보기 꺼려진다.
비싸면 아무래도 사람이 적을테니, 보다 쾌적하게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은 맞았지만, 후회하게 된다.


어느 고아원에서 단체 방문 왔다.


전시회장 들어가기 전에 설치된 포토존

저런 걸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겠지만, 의외로 거의 모든 사람이 찍는다.


일정한 통로를 따라 전반부 - 후반부 - 기념품 매장 3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구역을 일방통행으로 지나도록 하는 구조였다.

전반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에 대한 소개, 지브리의 작품들 설명이 사진이나 그림, 콘티 등과 함께 글로 설명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반부는 사진 촬영 금지인데, 요소요소에 배치된 진행요원들이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니인들은 표정이 부드러운데, 이 곳의 진행요원들은 사명감에 가득찬 딱딱한 얼굴로 관람객들을 마치 '잠재적 좀도둑'을 보듯, 관람객들의 동작을 (특히 손을) 주의 깊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업무 교육 받을 때, 절대로 안된다고 심하게 강조해서 가르쳤을 거다.

한국인들도 너무 강조가 심하면 다른 건 생각하지도 않고 강조한 것만 집중하는 면이 있지만, 인니인들은 더욱 두드러진다.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이어지는 통로에 라퓨타 모형이 매달려 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 찍어도 된다고 인심 쓰듯, 사진촬용 허가 안내판이 떡~ 붙어 있었다.


전시장 후반부인 지브리 작품 내용 관련 모형 세트장

이게 전시회의 메인이고, 이게 사실 전시회 전부다. =_=


아마도 라퓨타에 나왔던 것 같은 비행선 주변에 가오나시가 어슬렁 어슬렁 돌아 다닌다.

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


붉은 돼지 세트

어디서 대충 구해왔는지, 건축에 쓰이는 모래 중에도 질이 안좋은 걸 갖다 놨다.


아마도 센과 치히로 여관?


라퓨타에 나왔던 잠자리 비행기와...


라퓨타 지킴이 로봇


요것도 센과 치히로인듯?


가끔 창피함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될 때가 있다.


<추억의 마니> 배경


<마녀 배달부 키키> 배경을 재현한 곳에서 사진 찍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이때부터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이게 3만원 내고 줄 서서 사진 찍을 만한 건가?


인니인들은 대범하다.

아이가 빗자루를 들고 이런 저런 뻘짓들을 하는 동안, 부모도 딱히 이래라 저래라 재촉하지 않고,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도 딱히 뭐라 하지 않는다.

진행요원도 주머니에 손까지 찔러 넣고 웃으며 보고 있다.


내 자식, 남 자식 딱히 구분 없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쁘게 볼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남의 자식한테는 빨리 빨리 하라고 눈치 주고, 자기 자식한테는 할 거 다하라고 한다면 나쁜 거겠지만.


코다마가 나오는 거 보면 <모노노케 히메>의 숲인듯


<토토로>에 나오는 사츠키 아빠 서재


내부도 매우 디테일하게 꾸몄다.


실제 오래된 일본책이다.
하긴, 이건 모형으로 만드는 게 돈이 더 들겠다.


이건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온 집인듯


역시나 가장 인기가 많은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세트

본전 생각 나서라도 이건 꼭 찍어야 한다는 쓰잘데기 없는 의지가 생겼다. =_=


중국계로 보이는 저 핑크색 미니스커트 여성분 정말 끝내줬다.

혼자서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진지하게 포즈를 바꿔가며 10여 장 정도 찍더니,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이는 남자 '일행'을 불러 두세 장 정도 더 찍었다. (아마도 연인일 것 같지만 그렇게 낙인 찍으려니 남자에게 괜히 미안해서 일행이라고 함)

다시 말해 최소 열 세 가지 이상의 다른 포즈를 취했다는 얘기고, 그 모든 사진은 본인이 중심이었다.

진짜 마지못해 나와 어색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 찍는 남자를 보며 왠지 모를 애달픔을 느낀 건, 나 뿐 만이 아니었을 거다.

여성분 얼굴을 봤을 때, 정말 뜬금없이 '여진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난 여진족을 본 적이 없다. ^ㅇ^


이 일본인 꼬마가 귀여움으로 눈을 닦아 주었다.


고양이 버스 표지판에 '쟈카루타'라고 쓰여 있는 센스! ㅋㅋ


1인당 3만원씩이나 들여서 줄이나 서고 있는 사람들

아니, 3만원이나 하니까 그나마 줄 길이가 저 정도겠지.


사츠키가 동생 업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뭘 좀 아는 팀이다.


앞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심상해 보이겠지만, 사실 아이 엄마가 밑에서 안아 올려주고 있는 상황이다.

간단한 받침대 하나 비치해두면 될 거 같은데, 주최측이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고객 불편보다 사실성을 중시한 건지.

전자라고 생각한다.


한국 같으면 진행요원이 관리자에게 건의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인니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체적으로 인니인은 주어진 임무에 대한 범위를 상당히 좁게 한정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너는 고양이 버스를 맡아. 관람객들 질서 유지하고, 사진 찍어 달라고 하면 찍어 줘."라고 지시한다면, 한국인은 '고양이 버스를 맡는다'를 염두하는 반면, 인니인들은 질서 유지와 사진 촬영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기 보다 일장일단이 있다.

일일이 지시를 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문제가 생길 리스크는 적다.

제대로 된 관리자에게는 딱히 어느 쪽이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라, 관리 방식을 다르게 적용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변태 성

뭔가 핥으려는 진취적 의지가 느껴지는 혀가 참 마음에 든다.

옆의 여성이 자리를 뜨면 찍으려고 했으나, 계속 포즈를 바꿔가며 한참을 찍을 기세라 그냥 찍었다.


뒷부분도 디테일하다.


<나우시카>에 나오는 벌레

앞부분 촉수 같은 것이 정말로 움직였다. 그것도 따로따로.

촉수를 흐믈흐믈하고 번질번질하게 만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응?) 


뽀뇨 포토존 앞에서 상당히 진지하게 포즈를 잡고 단체 사진을 찍던 사람들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를 연상하게 만드는 뽀뇨


인니 사람들은 사진 찍을 때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뻣뻣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국 사람과 많이 다른 점은, 사진 찍히는 것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 살 적에는 몰랐는데, 외국에 나와 보니 유독 한국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유별나다.


전시장 후반부는 이게 다다. =_=

3만원이 아까워 빠짐없이 다 찍었다.

그만한 값어치가 되는 행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파가 너무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리 비싸게 받지 않았나 싶다.


기념품 코너로 이어져 있다.


마쿠로쿠로스케 동전지갑 2만원!!


지지 백팩 10만원!! 유후~


토토로 백팩 약 8만5천원!!


플라스틱 서류철 4천원!! (일반 제품은 200~300원임. 홍보용을 공짜로 나눠주는 곳도 있음.)


정식 로열티 오리지널 캐릭터 상품의 무형적 가치를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기회였다.

기념품마저 안산다면 3만원 입장료가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거 같아, 1만5천원 짜리 토토로 핸드폰고리를 하나 샀다.

멍청한 선택에 걸맞는 정신나간 마무리였다고 생각하니 흐믓하다.


아까 고아원 아이들이 앉아 있었던, 출구 맞은편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인니인들로 구성된 그룹이 지브리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불렀다.

일본 문화 관련 행사에 자주 초청되어 JPOP을 부르는, 나름 유명한 전문밴드라고 한다.



지브리 전시회 관람 소감 :

가끔 이렇게 멍청한 짓을 끼얹어 줘야, 자기가 꽤 괜찮은 줄 아는 자존이 되게 현명한 줄 아는 자만으로 불타오르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3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한 건 적절하게 멍청한 짓이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