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당연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어요.

명랑쾌활 2017. 4. 10. 10:25

1.

인니 생활 초창기에 인터넷 사용을 했었습니다.

처음 두달은 고지서가 문제없이 왔고, 제대로 납부했습니다.

삼개월째 되던 때 고지서가 안왔습니다.

저도 아직 한국물이 들어있던 때라 뭐 알아서 오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달 말이 되자 인터넷이 뚝 끊기더군요.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따졌더니,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서 끊겼다고 합니다.

고지서가 안와서 그런건데 어쩌란 거냐고 따졌지만 귓등으로도 안듣고 요금을 내야 개통이 된다고만 하더군요.

뭐 방법이 없지요.

전화상으로 불러주는 계좌와 요금 및 연체료(!)를 받아 적어, 다음날 은행에 가서 납부했고, 다시 전화를 하고 나서야 인터넷을 다시 열어주더군요.

그 후로, 고지서가 오든 말든 그냥 매월 5일 경에 은행에 가서 인터넷 요금을 납부했습니다.

실제로도 고지서는 몇 달에 한 번 씩 오다말다 했습니다.

아예 안오는 거보다 더 이상하더군요. =_=


2.

최근 이사를 했습니다.

인터넷이야 아예 고지서 기대도 안합니다.

매월 20일 경에 알아서 납부합니다.

이번에는 수도세와 관리비 고지서가 문제네요.

첫달은 등록한 이메일로 떡하니 날아 오길레, 인니도 점점 발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달부터는 역시나 감감 무소식이더군요.

인터넷은 매월 정액이니 별 문제 없지만, 수도세는 사용량에 따라 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고지서가 와야 합니다.

인니 생활 초창기 때는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관리원이 집집마다 고지서를 보내줬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아파트 입구의 관리사무실에 들러서 물어보면 금액을 알려줘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은 관리 사무실이 주택단지 내에 있지 않고 꽤 먼 곳에 있어서 매월 가서 확인하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첫 납부로부터 만 한달 반이 지나니 불안합니다.

연체됐으니 돈 내라고 확인하기 전에 다짜고짜 끊어버릴 거거든요.

관리사무실에 전화하니, 처음만 자기쪽이 관리했었고, 이미 제 거주지에 해당하는 사무실로 업무이관을 했다고 합니다.

해당 사무실로 다시 전화하니, 제 고객번호,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메일로 고지서가 날아 왔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무실로 업무이관 되면서 담당자가 깜빡 한 거겠지만, 물론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고요.



예전에도 글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요, 인니는 아직까지도 시장 서비스 대부분이 공급자 위주인듯 합니다.

아니면 한국이 너무 사용자 위주던가요.

그 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부득이 한국 기준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네요.

어쨌든,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산다는 건 많이 다릅니다.

당연하기 때문에 생각은 커녕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국 가서 친구들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이상해졌다는 소리 많이 듣고, 스스로도 예전과는 다르다고 느낍니다.

친구가 뭔가 얘기하다 보면, 가끔 이런 반문을 하거든요.

"음? 그게 왜 당연하지?"


그러다 저러다 어쩌다 보니, 대개의 오해나 다툼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인식조차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가령, 배우자가 식사 후 설겆이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다툼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매일 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이지요.)

뭐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 싶겠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도 많은 반면에 행복한 일도 많습니다.

인간은 인식하는 만큼만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