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군생활이든 회사생활이든 업무 외 업무가 힘들다.

명랑쾌활 2023. 1. 8. 21:41

군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군생활의 힘든 점을 상상해 본다면, 군사훈련이나 행군, 화생방, 체벌에 가까운 체력단련 등을 떠올릴 겁니다.

아닙니다.

군생활의 힘든 점은 바로,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일과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입니다.

(군사훈련이나 행군 등은 보통 일과시간에 합니다.)

일과시간 중에는 각자 계급과 병과에 맞게 역할을 수행하면 됩니다만, 자유시간(사실은 정비시간)에는 위아래 서열이 존재하는 집단 안에서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인 부딪힘 속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으며, 사사로운 많은 욕망들이 여과 없이 펼쳐지는 상황입니다.

쓸데 없는 (없다고 느끼는) 일들로 매일 빡세게 굴려대는 상황에, 20대 초반의 인성 덜 여물기로는 매한가지인 것들을 계급으로 나눠서 상급자에게 맘대로 할 권리를 던져 줬으니, 하급자에게 인성 바닥 드러낼 건 뻔합니다.

제 경험으로도, 인성의 밑바닥이 10가지가 있다면 그 중 예닐곱 가지는 군대에서 겪었을 정도입니다.

 

 

회사 역시 정말 힘든 건 업무 아니라, 업무 외의 해야 할 일들입니다.

어느 날 회식 때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투자금 대부분을 댄 큰 사장은 삼겹살을 시켜다 놓고는 오후에 있었던 주간회의 때 질책했던 사항들을 다시 또 질책하기 시작합니다.

5분 정도 얘기하다가 잔을 내밀길레 모두들 건배를 했습니다.

서두는 건배사 비슷했던 큰 사장의 말은 이런 저런 얘기를 지나 또 다시 질책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두들 잔을 든 채로 계속 그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몇 분 간 이어진 질책은 잘 구워진 삼겹살이 접시에 담겨 상에 놓여지면서 마무리 되고, 혼자 잔을 든 손을 테이블 위에 내려 뒀던 큰사장은 다시 손을 들어 건배를 합니다.

모두 잔을 비우고, 삼겹살을 한 점씩 집어 먹습니다.

뭔가 미진했나 봅니다. 큰 사장은 다시 질책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좀 깁니다.

삼겹살은 식어 굳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집어 먹을 수 없습니다.

10여 분을 얘기하고 나서야 드디어 끝났습니다.

큰 사장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다들 알아 들었으리라 믿고, 회식이니 다들 맛있게들 많이 먹자."라고 다시 건배를 합니다.

하지만 큰 사장은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질책을 합니다.

모두들 입맛까지 떨어져서 내키지 않는데, 가뜩이나 삼겹살은 식다 못해 딱딱해졌습니다.

큰 사장은 고기가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다들 왜 안먹냐고, 한 사람 한 사람 지적해가며 빨리 먹으라고 인자하게 권합니다.

그러던 중에도 중간중간 소소한 질책은 계속 됩니다.

듣다 못한 작은 사장이 그만 좀 하라고 합니다.

큰 사장이 한 질책의 대부분이 작은 사장 무능하다 깔아 뭉개는 내용이라, 직원들 앞에서 면 다 팔리면서 참고 참던 작은 사장이 결국 폭발한 거지요.

둘이 옥신각신 하는 중에 직원들은 일단 자리를 피했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 들어왔는데, 작은 사장은 이제 술이고 뭐고 일절 안먹겠답니다.

큰 사장의 건배 술잔은 이제 다 제게로 옵니다.

 

분위기 더럽게 엉망이었던 회식이 파하고, 작은 사장을 위시한 직원들은 차를 탄 큰 사장에게 배웅의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모두 귀가하려는데, 작은 사장이 맥주 한 잔 더 하자며 붙잡습니다.

삐져서 술을 안마시고 있었으니 부족하겠지요.

내일은 내일의 업무가 있는데, 직원들 전부 과음 숙취로 겔겔거리느니 차라리 한 명만 감당하는 편이 낫습니다.

집은 제가 제일 멀지만, 부하 직원에게 미루고 튀는 것도 모양새 안좋은 일이죠.

적당한 핑계로 다 보내고 제가 총대를 맸습니다.

알콜 부족한 자기만 마시면 될 걸, 작은 사장은 마실 때마다 저에게 꼭꼭 술을 들이밀면서 넋두리를 시작합니다.

초반의 자기 힘들다는 얘기는 신변 잡기를 지나 골프를 쳤는데 첫번째 홀에서는 파를 했다가, 두번째 홀에서는 보기를 하고 ...... 마지막 홀에서는 보기로 막았는다는 얘기로 흘러 갑니다.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대신 술은 머리 꼭대기 까지 오른 작은 사장이 3차 가자는 거 겨우 정리하고 차를 태워 보냈습니다.

귀가하는 길, 속 아프고 머리 띵한 것보다, 이런 일도 내 월급값에 들어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더 괴롭습니다.

 

회사 업무야 일이니까 힘들고 자시고 없습니다.

업무가 아닌 일이 힘듭니다.

이력이 붙다 보면 어지간한 경우는 그냥 이것도 일이다~ 하고 넘기는데, 그러기 힘든 일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군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군생활은 끝이 있지만,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는 한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억울하면 사장해야죠. ㅎㅎ

 

<출처 : facebook.com/yakchik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