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자기개발서의 함정

명랑쾌활 2016. 1. 16. 12:24

자기개발서가 무조건 쓰레기라는 건 아니지만, 오용되는 경우가 많아 보여 몇 자 적어 봅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99%가 쓰레기라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저 개인적으로는요.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1. 자기개발서를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개발하는 행위로 착각한다.

자신은 그 책을 읽어서 최소한 인식이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실행에 옮기지 않았어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착각한다.

심지어 그 내용대로 하지 않는걸 타인이 지적하면, 그 책도 안읽어 봤으면서 지적한다고 무시한다.

이른바 인식이 개선의 첫걸음이자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인데, 인식은 인식일 뿐이다.

자기개발서의 목적은 사회관계에서의 긍정적인 효과인데, 이는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나온다.

 

2.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는 인간은 당연히 이럴 것이다라는 전제를 너무 가볍게 규정한다.

'일반적인' 인간이나 상황을 전제로 의견을 피력한다.

'일반적'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이면서도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다수의 인간이라면 통계를 통해 일정한 경향을 도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이 맺는 사회관계란, 다수의 인간들 총합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다수의 인간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제각각 맺는 관계의 총합'이다.

(비유하자면, 동전 던지기 10번의 결과치 확률이 아니라, 각각의 동전이 앞뒤가 나올 각각의 확률이다.)

개개인의 인간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인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반응하는 인간 따위는 없다.

각각의 인간을 대면했을 때의 대외적인 상황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 심리상태, 건강 상태, 가족의 상황 등등 계산할 수 없는 변수는 무수히 많다.

심지어 '불'같이 그 성격이 비교적 명확한 매개체조차도 겨울이냐 여름이냐 상황에 따라 긍정적일수도 부정적일수도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이러이러하게 바뀌면 주변이 이렇게 바뀔 것이라는 자기개발서의 논리는 전제부터가 틀릴 가능성이 높다.

 

3. 자기개발서를 읽는 자체가 '긍정적인 마음가짐'를 전제로 한다.

비판적인 마음가짐이라면 굳이 자기개발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비판하려고 자기개발서를 읽는 건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개발서는 써먹으려고 읽는 '실용서적'이다.)

즉, 자기개발서를 탐독하는 사람은 이미 그 책의 내용을 전부든 일부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이해와 통찰은 오직 자신의 사유에서 나온다.

자기개발서는 타인이 사유한 결과일 뿐이다.

물론 타인의 사유에 대한 긍정적인 공감도 자신의 사유를 풍부하게 한다.

하지만 공감은 공감일 뿐, 비판이 있어야 한다.

비판이 없는 공감은 맹신일 뿐이다.

맹신은 자기 스스로 사유했다는 착각과 안심을 주기 때문에, 차라리 생각이 없는 것보다 더 고약하다.

자기개발서는 자신과 타인, 인간에 대한 겸허한 이해와 통찰을 방해한다.

 

 

물론 좋은 자기개발서도 있습니다. (많다고는 할 수 없네요.)

저 같은 경우, 스티븐 코비의 <신뢰의 속도>가 아주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막연히' 좋은 거라고 느끼지만 모호하고 추상적인 신뢰라는 개념의 가치가, 왜 좋은 것인가를 명확하고 실제적으로 풀어내더군요.

"이러면 좋습니다"라고 하는게 아니라, "이건 이래서 좋은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라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좋았구요.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따지면, <신뢰의 속도>는 자기개발서가 아니라 인문서적 범주에 포함되지 않나 싶습니다.

(뭐 사실 '자기개발서'라는 분류명 자체가 웃기는 표현이죠. 뭘 개발을 해요. ㅋㅋ)

 

위에 썼다시피, 비판적 자세로 자기개발서를 읽으라는 말 자체가 모순의 여지가 있으니 애매합니다.

자기개발서 나름의 긍정적인 가치도 있어요.

굳이 설명하자면, 자기개발서는 인문학과 사회학, 심리학의 다이제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 각 분야의 책들을 일일이 읽는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개발서는 효율적이고 '당장 쓸모있는' 좋은 가공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공품은 가공품일 뿐입니다.

케찹은 케찹일뿐 토마토가 아닙니다.

쓸모 때문에 읽었다면 잘 쓰면 됩니다.

감자튀김에 맛있게 찍어 먹었으면 된겁니다.

그게 무조건 옳은 양 맹신하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뭣보다도 자기개발서를 읽는 따위로, 자신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아졌다고 착각할 뿐이지요.

인간은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에서 안정을 느끼는 동시에, 타인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에서 독립적 개체로서의 자기 존재를 확신(자존감 -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느낌)하기 때문에, 그리 쉽사리 타인의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감자튀김 맛있게 찍어 드시는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